▲ 망천마을의 자랑인 수령 700년짜리 이팝나무.
4월에 쌀밥 같은 꽃 가득 피면 풍년 예고
어려울 때 청년들이 피땀으로 마을 일궈
울고 웃고 삶을 바친 조상 이야기들 소중

우리 바래내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 마을의 이름은 망천입니다. 한자로는 바랄 망(望), 내 천(川)이고, 우리말로 바래내마을이라고 합니다. 사실 배고픈 시절을 지나랴, 자식 낳아 키우랴 정신없이 살아온다고 우리 마을이 얼마나 멋진 마을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번 바래내마을 이야기사업을 하면서 지난 30~40년 동안 몰랐던 우리 마을의 이야기들을 알게 됐습니다. 그와 더불어 마을 곳곳에 녹아있는 지난 삶도 돌아보게 됐지요. 그럼 우리 마을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 마을의 최고 자랑인 이팝나무를 빼놓을 수 없겠죠. 이 나무는 수령이 무려 700년이 넘은 천연기념물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나무 앞에서 동네로 쭉 내려오는 개천이 있었죠. 30여 년 전에 복개를 해서 지금은 차도 다닐 만큼 도로가 넓어졌어요. 이팝나무는 물이 있는 곳에 심는 게 좋다고 해서 고려시대의 지혜로운 조상님들이 이곳에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4월이 되면 이팝나무에 쌀밥 같은 꽃들이 가득 피어납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팝나무 꽃이 만개하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시들하면 흉년이 든다고 했지요. 쌀밥이 귀하던 시절 쌀밥 같이 뽀얗게 핀 이팝나무 꽃만 봐도 사람들의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팝나무 앞에는 깊은 우물 하나가 있었어요. 그 우물은 사람들이 여섯, 일곱, 여덟 바가지 물을 퍼내도 조금만 지나면 물이 차오르던, 그 당시에는 정말 고마운 우물이었어요. 한 겨울에는 뜨끈한 물이 나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여름에는 정신이 번쩍 들만큼 시원한 물이 났지요. 그 시절에는 우물을 냉장고로 사용하기도 했답니다.

요즘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한국전쟁 전후만 해도 정말 배고픈 시절이었어요. 그래도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쯤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나은 걸까요. 우리 어머니 시절만 해도 죽은 아이를 업고 동냥을 하러 다녔다고 해요. 아이가 죽은 것을 알면서도 애 하나라도 업으면 동냥이 잘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니, 얼마나 가난한 시절이었는지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죠.

전쟁 직후에도 흔히 보릿고개라고 하는 가난이 이어졌습니다. 전쟁이 나고 윗지방에서 다 피난을 와서 망천마을도 사람이 미어터질 정도였어요. 제가 다니던 이북초등학교 운동장에는 피난민들이 천막을 치고 살았던데다 늘어난 학생 수에 비해 교실이 모자라 뒷산에 올라가 수업을 들었죠.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배고픈 아이들이 부드러운 나무껍질, 진달래, 목화 열매로 배를 채우고는 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먹을 게 없는데, 더 많은 아이들이 달려드니 그 나무껍질도 귀할 때였습니다. 실을 뽑는 목화 열매인 다래를 훔쳐 먹다가 목화밭 주인에게 혼났던 기억도 납니다. 그 때는 그 다래가 얼마나 달콤했던지 매번 혼나면서도 다래 서리를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 어려운 시기를 넘기니깐 조금씩 먹고 살만해진 것 같아요. 마을에 흐르는 하천으로 비가 올 때마다 근처 집이 잠기고 작은 채가 떠내려가는 일들이 수십 해 반복됐답니다. 그러다 둑을 쌓게 되고, 겨울마다 이엉을 올리던 초가 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죠. 마을 뒤쪽에 있는 신천저수지도 우리 청년들이 피땀을 흘려 만든 거랍니다. 기계도 없을 당시에 큰 나무를 올렸다 들었다 하면서 그 넓은 저수지 땅을 다 다졌어요. 큰길 낼 때도, 도로 보수할 때도, 둑 쌓을 때도 지금은 다 할아버지가 된 마을 청년들이 나섰어요. 그렇게 힘들게 일한 보상이 돈도 아니고 밀가루 한 포대였지만, 그것으로 국수를 말아먹으면 또 금방 행복해지는 시절이었죠.

20여 년 전부터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마을 모습이 참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라면 마을 수호신에게 마을의 평안을 비는 당산제입니다. 마을 당산나무에서 정월대보름 전에 한 달 동안 제사를 지냈어요. 제사를 맡은 제관은 한 달 동안 몸을 깨끗이 하고 제사를 지내야 해서 다 제관을 안하려고 하는 바람에 무당이 대나무를 흔들어서 제사 지낼 집을 꼽기도 했어요. 요즘은 그게 간소화돼서 사나흘 마을 이장이 맡아서 하고 있죠. 예나 지금이나 마을 사람들이 건강하고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앞으로 우리 세대가 떠나면 또 이 마을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이 잘 안되네요. 얼마 남지 않은 추억의 장소들이 허물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고요. 지금껏 이어져 온 전통이 앞으로 계속되길 바라고, 이 마을에서 울고 웃고 땀 흘리며 살았던 조상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주길 바라봅니다.  

정리=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 이 기사는 김해여성복지회가 '2014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 교육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바래내 마을 이야기'를 통해 기록한 자료와 박춘식 노인회장의 옛 이야기를 모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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