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로댕미술관 전경.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 책의 저자들이 투표를 했다. '여행전문 작가들이 뽑은 세계 최고의 도시와 최악의 도시는 어딜까?' 하는 질문이었다. 물론 2011년도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전화번호판을 누르느라 지문이 닳을 정도로 총동원이 요구되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처럼 엄청나게 중요한 그런 어마어마한 투표는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차 마시다가 '우리 한번 해볼까' 하는 심심풀이 정도의 투표였을 것이다. 아무튼. 인터넷이 지금 같지 않던 시절. 한때는 젊은 배낭여행자들의 바이블이었던 론리플래닛의 그 최고의 여행전문가들이 뽑은 세계 최악의 도시는? 그렇다. 프랑스 파리다. 으음. 그렇다면 최고의 도시는? 최고의 여행전문가들이 뽑은 최고의 도시는? 그곳도 역시 파리다. 최고와 최악 모두를 파리가 차지했다. 글쎄. 큰 의미 없는 그냥 심심풀이 인기투표였으니 심각하게 이어지는 상세한 설명도 없다. 파리 시민 또한 그런 순위에 별 관심도 없을 터이니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도 왜냐고 열내며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론리플래닛에 실려, 우연히 본 글이긴 하지만 실제로 투표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
파리다. 지하철을 타고 로댕미술관을 찾아가는 길이다.

방금 떠나온 런던에 비해 파리의 지하철은 지저분하다. 낙서에, 차창 밖으로 바퀴 굴림 소음도 심하다. 말쑥한 부산의 지하철과도 큰 차이가 있다. 오래 전 첫 여행 때, 이곳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 당하고 생각해 보니 뻔한 수법이었다. 복잡한 전동차에 오르는 손님을 밀어서 도와주는 척 하면서 주머니 속 지갑을 빼고는 뒤로 빠지는. 전동차 문은 금세 닫히고 그러고 나면 '빠이빠이'다. 아무튼 닫힌 전동차 안에서 빤히 그를 보았다. 그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차창 밖 용의자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 파리는 좀도둑들의 천국이다. 하지만 파리의 지하철은 파리 시내를 여행하는 여행자에게도 없어서는 안되는 정말 천국이다. 파리의 지하철 노선은 시내의 곳곳으로 그물망처럼 용의주도하게 깔려 있다. 어지간한 곳은 지하철만으로 쉽게 다 찾아 갈 수 있다. 명성이 높은 런던의 지하철도 파리엔 못 미친다. 파리에서 지하철 이외 현지어에 서툰 여행자로선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바렌느역에 내렸다. 승차권을 출구 밖에 버린다. 앞서가는 원주민을 슬쩍 따라 해본 것이다. 쓰고 버린 승차권이 출구 밖에 흩뿌려져 있다. 처음 봤을 땐 어이없고 지저분했는데 보다 보니 익숙해진다. 물론 마로니에 잎이 아니라 포도 위를 같은 노란색으로 뒹굴어도 정취는 없다.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내렸다 그쳤다 하는 가랑비에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한다. 전에 와본 길이라 낯익다. 파리엔 많은 미술관이 있다. 한 번씩만 방문한다고 해도 몇 날 며칠이 걸릴지 여행자로선 무망한 숫자다. 하지만 난 아직 가보지 못한 많고도 많은 미술관을 또 다음으로 미뤄두고 로댕미술관을 찾아간다. 로댕미술관은 가도 또 좋다. 바렌느가를 따라 가는 길. 미술관 입구가 나타나기도 전에 표를 사기위해 길게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이 먼저 보인다.
 
▲ (위) 청동시대 / (아래) 발자크상
19세기 후반 무렵 파리 화단에서의 성공의 길은 프랑스 국립 미술 아카데미인 에콜 데 보자르를 나오고, 젊은 미술가의 등용문인 살롱 전에 입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 좋게 살아남는 몇몇은 프랑스 학사원인 엥스티튀 드 프랑스의 빛나는 회원이 되었다. '에콜 데 보자르' '살롱' '엥스티튀 드 프랑스' 이 셋은 새로운 바람이 세상을 바꿔버린 20세기 초반까지도 프랑스 보수 화단을 유지하는 부동의 3각 편대였다. 로댕은 운 좋게도 에콜 데 보자르 대신 프티 에콜만을 나왔다.(예술가에게 출발점에서 비주류에 속한다는 것은 비록 그가 그것을 스스로 원했든 아니면 아니든 결과적으론 늘 행운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머물던 그를 파리에서 유명하게 만든 것은 1877년 살롱 전에 출품한 '청동시대'다. 180㎝의 실물 크기인 조각상은 실제 사람에게서 본을 떴다는 혐의를 받았고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지는 스캔들은 그를 곧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이미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던 회화에 비해, 조각은 공공장소에 전시가 되어야 한다든지 하는 장르가 가진 속성 때문에 과거의 답습에 머물고 있었다. 로댕은 이제 스스로 새로운 바람이 되었다.
 
로댕미술관은 1730년 부유한 자본가였던 페랑 드 모라의 집으로 건축되었다. 7에이커라니 2만8천300여 ㎡에 이르는 말 그대로 거대한 저택이다. 건축 당시 최고의 건축가를 동원했고 이미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으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모라는 그 호화로운 저택에서의 생활을 겨우 2년 누리고 죽었다. 그후 비롱 공작의 소유가 되었다.(지금도 비롱저택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그후 여러 손을 거쳐 1904년부터는 임대 형식으로 예술가들의 창작실로 이용되었다. 입주자들 중에는 장 콕토, 앙리 마티스, 이사도라 덩컨,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있었다. 로댕도 옮겨와 세상을 떠나던 1917년까지 작업실로 썼다. 그리고 2년 뒤 로댕으로부터 일괄 기증받은 그의 작품과 수집품들을 전시하는 로댕미술관으로 1919년 재탄생했다.
 
정문을 통과하면 앞에 아름다운 저택이 보인다. 미술관 본관이다. 하지만 실내로 바로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관람객의 발걸음은 오른쪽으로 굽어져 정원으로 옮겨간다. 거기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하도 눈에 익어, 처음 보는 사람도 이미 여러 번 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생각하는 사람'은 그러나 너무나 유명해 안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생각하는 사람'을 지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소설가 '발자크'상이 있다. 잘 알고 있듯 설치 여부를 두고 파리 시민들을 찬반으로 갈라 들썩이게 했던, 하지만 오늘날은 놀라운 단순성과 강렬한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20세기 현대 조각의 비조라 부르는 작품이다. 반대쪽 그러니까 미술관 건물 왼쪽으로 '칼레의 시민'이 바닥에 놓여 전시돼 있다. 100년 전쟁 동안 영국인들에게 포위된 칼레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 여섯 명의 영웅을 기리는 작품이다.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혹은 우습도록 가식적인 역사 기념물에 익숙한 눈에, 겁에 질리고 고뇌하고 혹은 비통해 하는 칼레 시민들의 모습이 새롭고 신기하다. 영웅이라 부르는 인물들의 진정한 인간적 모습을 표현한 로댕보다는 그런 조각을 공공의 장소에 설치한 프랑스 사람들의 문화적 힘이 무겁게 느껴진다. 작품 뒤쪽의 담벼락은 투명한 재료를 써서 길을 가는 사람들도 창을 통해 볼 수 있게 배려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잘 알려진 '지옥의 문'이 있다. '지옥의 문'은 1880년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30년간 작업했지만 끝내 미완으로 남은 작품이다. '지옥의 문' 꼭대기 중앙에 악령 '세 그림자'와 그 아래의 '생각하는 사람'이 별개의 큰 작품으로 정원에 전시돼 있다. 여름이면 장미꽃으로 아름다운 정원에 오늘은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미술관 실내로 들어가려다 뒤돌아본다. 그야말로 조각 정원이다. 멀리서부터 구름이 벗겨지며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있었다.


■ 오귀스트 로댕(1840∼1917. Rene Francois Auguste Rodin) ───────

프랑스 조각가. 파리 출신인 그는 에콜 데 보자르의 입학이 좌절된 후 조각가의 조수 등으로 20여년을 지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청동시대'를 제작하며 조각가로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2년간의 이탈리아 여행 중 미켈란젤로와 도나텔로의 조각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발자크' 등이 있다. 미켈란젤로 이후의 최대의 거장으로 추앙 받으며, 사실적 묘사와 표현주의적 기법 등으로 근대 조각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조각가로 평가 받는다.


■ 로댕 미술관(Musee Rodin) ───────

·주소:Hotel Biron, 77 rue de Varenne, 75007 Paris
·전화:(1) 47 05 01-34
·개관시간: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
·입장료:6유로, 정원 관람권 1유로
·찾기:메트로 13번선 Varenne역에서 하차
·버스:69, 82, 87, 92번
·교외선(RER):Invalides 역에서 하차
·http://www.musee-rodin.fr
 





윤봉한 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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