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기르고 담근 각종 장아찌 반찬들
끝맛 매콤하고 달착지근한 된장찌개
어느것 한 가지인들 정성 없는 게 없어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차림에 고개 끄덕
서쪽 하늘에서 어스름 저녁빛이 스멀스멀 밀려올 때면 놀던 동네 꼬마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뜀박질로 집에 도착해 보면 구수한 밥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손 씻고 와라." 엄마는 잔소리를 했다. 대충 손을 씻고 식탁에 앉으면 김이 나는 고슬고슬한 잡곡밥과 새콤하게 잘 익은 김치 한 포기, 각종 나물 반찬들이 한가득이었다. 마지막으로 두부가 비죽이 고개를 내민 된장찌개 뚝배기가 식탁 한가운데에 놓이면 비로소 저녁 밥상이 완성됐다. 우리는 이런 밥상의 밥과 반찬을 '집밥'이라 부른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을 때가 있다. 그러나 성에 차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럴 때면 소박하더라도 '집밥'이 무척 먹고 싶어진다.
김해대학교 유아교육과 고영희(55) 학과장은 '집밥'이 생각날 때마다 상동면 묵방리 '예원'을 찾는다고 한다.
김해 시내에서 삼방동 가야컨트리클럽을 지나 상동면으로 접어든 뒤 묵방리로 향했다. 가파른 도로를 한참 오르자 한적한 묵방마을회관이 나타났다. 다시 회관 앞 도로를 5분 정도 더 달리자 '예원'이란 간판을 단 집 한 채가 등장했다. 마당에 낙엽이 수북한 건물이었다. 자그마한 연못에서는 물풀 사이에 숨어있던 물고기들이 손님을 반기며 얼굴을 내밀었다. 마당 저 편에서 졸졸졸 계곡물 소리도 들려왔다.
고 학과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예원을 자랑했다. "친정엄마의 손끝이 그리울 때면 늘 이 곳을 찾아요. 이 곳의 음식에는 정이 듬뿍 묻어 있어요."
고 학과장은 특이한 과정을 거쳐 유치원 교사가 됐다. 그는 한때 고교 교사였다. 교사 생활 2년째 되던 해에 유치원 교사였던 친구의 일을 돕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1988년부터 울산에서 3년 간 유치원 교사로 활동하다 1991년에 경주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울산에 있을 때는 원아가 40명밖에 안 됐어요. 원아들을 모으기 위해 한 겨울에 집집마다를 찾아다니며 유치원 안내장을 돌렸지요. 3년 만에 원아는 120명으로 늘었어요. 그때 발에 동상이 걸렸는데, 10여 년이나 지나서야 나았지요."
고 학과장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예원 집밥'이 차려졌다. 마늘쫑, 매실, 다래잎, 돼지감자, 참외, 곰취, 비비추 장아찌 등이 소박한 도자기 그릇에 담겨 나왔다. 장아찌는 홍 사장과 그의 어머니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홍 사장은 "봄나물과 매실 등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간장과 물, 설탕, 식초를 배합해 4~5번 끓이는 과정을 반복해 장아찌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물과 된장찌개를 비롯한 각종 반찬들이 장아찌 사이사이에 놓였다. 모두가 홍 사장의 손을 직접 거친 것들이었다. 홍 사장은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마련한 것들이다. 장아찌에는 조미료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밥은 흑미로 지은 것이었다. 밥에다 곰취 장아찌를 돌돌 말아 한 숟갈 떠먹었다. 쌉싸름한 곰취 향이 입 안을 가득 메우더니 새콤달콤한 맛이 혀를 감쌌다. 곰취는 잎에 비타민C와 알카로이드 성분이 있다고 한다. 항염증 작용을 해 기침과 가래를 없애고 감기 예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참외와 매실 장아찌도 맛을 봤다. 아삭한 식감과 함께 달착지근한 맛이 침샘을 자극했다. 된장찌개는 뒤끝이 매콤했다. 고 학과장은 "음식이 맛깔스럽고 정갈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고 학과장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고 원장은 다시 태어나도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유치원 교사는 그냥 아이들을 잘 웃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유치원 교사는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대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천직'이라고 해야겠지요."
식사를 끝낸 뒤 커피를 주문했다. 식사 후의 아메리카노 한 잔은 2천 원이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고 학과장은 김해대학교 유아교육과에 대한 자랑을 덧붙였다. 이 대학의 유아교육과는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시행한 '2014년 교원양성기관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
이 대학 유아교육과는 2010년에 설립됐고, 올해 2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들은 100% 취업에 성공했다.
고 학과장은 김해동부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급식 봉사 활동을 할 계획을 갖고 있기도 했다. "얼마 전 학술제 때 받은 쌀 20㎏ 11포대를 삼안동주민센터에 기증했어요. 학생들이 나눔의 즐거움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예원은 오리불고기도 참 맛있어요. 다음에는 학생들과 함께 오시지요."
▶예원 /상동면 장척로 112(묵방리 701). 055-323-4220. 예원집밥 1인 1만 원(주문은 2인 이상), 오리·닭백숙 1마리 4만 5천 원, 청둥오리불고기 1마리 3만 5천 원. 식사 후 커피 및 음료 2천 원부터.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