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장수 운명 타고난 송임의 아들
겨드랑이 비늘 날로 커지며 힘자랑
아내는 아이가 해 입을까 노심초사
"날음산 못 용마를 죽여야 한대요"
용마 잡은 뒤 아들의 비늘 잘라내


참다 못한 송임의 아내는 아기를 안고 담안마을 시댁을 찾아갔다. 하소연을 들은 어머니는 며느리를 불티재 돌부처 앞에 데리고 갔다.

"이 불상은 네 남편의 힘을 꺾어 보려고 모신 것이다. 너도 여기 와서 정성을 들여 보거라."

송임의 아내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부처님께 지성으로 빌면 겨드랑이에 비늘이 돋은 우리 아기도 살펴주실까요?"

며느리의 말을 들은 송임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아기의 옷을 헤집고 살펴보니 겨드랑이에 반짝이는 비늘이 돋아 있었다. 남다른 힘을 가진 아들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였는데 손자까지 아기장수의 운명을 타고 태어나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송임의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아기를 안고 돌아온 송임의 아내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전해 내려오는 아기장수의 이야기대로라면 아기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나라를 뒤엎고 새로 세우려고 할 것이니 우환덩어리였다. 송임의 아내는 아기의 겨드랑이를 남이 보지 못하도록 천으로 꽁꽁 동여맸다. 그리고 불티재에 돌부처를 세워 남편의 힘을 다스리도록 한 도승을 찾아나섰다. 여러 날을 헤매고 다닌 끝에 도승을 만난 송임의 아내는 아기를 살릴 방도를 간청했다. 도승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도승은 아기가 태어난 고모실 입구에 두 기의 석탑을 세우라고 하더니, 날음산고개 아래 못에 용마가 있다고 했다.

"그 못을 메워 버리거나 용마를 잡아야 한다네. 용마의 기운까지 꺾어야 장수의 기운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야."

▲ 그림=김기영 화가

날음산고개 아래 못이라면 남편이 수시로 목욕을 하는 곳이었다. 남편 송임이라면 능히 용마를 잡을 수 있을 것이지만, 도무지 집에 붙어 있지 않으니 말을 꺼낼 기회가 없었다. 더구나 송임은 아기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 마치 소 닭 보듯 하고 있었다.

송임의 아내는 아득하기만 했다. 못을 메워 버리고 싶었지만 쉬운 일도 아니었다. 날음산고개 아래 큰 못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 못에서 물을 끌어다 마을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데 둘레가 이천 척이나 되었다. 그렇게 크고 오래된 못을 메우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아기는 점점 자라기 시작했고, 겨드랑이의 비늘도 조금씩 자랐다.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송임의 아내는 석탑 세우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는 황소와 힘을 겨루었고, 거침없이 먹고 자라는 것이 장마철 풀 자라는 것과 같았다. 

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그 무렵, 송임은 의령 씨름판을 장치고 함안 씨름판으로 가고 있었다. 봇짐을 지고 고갯길을 설렁설렁 걷던 중에 날이 저물어 송임은 주막에 들어갔다. 동이에 국밥을 말아오게 해서 다 먹고, 술도 동이째 마셨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가다 말고 송임은 걸음을 멈췄다. 몸집이 아담하고 곱상하게 생긴 도령이 손톱으로 굵은 참나무를 쪼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던 것이다.

힘이라면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던 송임이었다. 그러나 손톱으로 통나무를 쪼개는 일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호기심이 동해 성큼성큼 도령에게 다가갔다. 도령은 송임을 힐끔 쳐다보고는 태연히 손톱으로 참나무를 쪼개 아궁이에 던져넣기를 계속했다. 송임은 손톱으로 장작을 쪼개고 있는 납작하고 작은 도령의 손과 두툼하고 크기가 솥뚜껑 만한 자기 손을 비교해 보았다.

"조막손이 하는 일을 내가 못하랴."

크게 헛기침을 하고는 참나무 한 토막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손톱으로 쪼개 보려고 힘을 주었다. 그러나 손톱만 빠질 듯이 아플 뿐 참나무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머쓱해진 송임은 방에 들어가 목침을 베고 누웠다. 그러나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후다닥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도령은 다른 방의 아궁이에 불을 넣고 있었다. 입성은 남루했지만 두 눈과 얼굴에 야릇한 광채를 띠고 있었다. 김해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송임은 힘 좀 쓰는 것 같으니 어디 한 번 겨뤄보지 않겠느냐고 말을 걸었다.

"보다시피 할 일이 많습니다."

도령은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더니 주막집 뒤로 갔다. 태산처럼 높이 쌓여 있는 나무더미 앞에서 슬쩍 뒤꿈치를 구르니 도령의 몸이 어느새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도령은 한 아름 통나무를 어깨에 걸치더니 휙 몸을 날려 다른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기 시작했다. 그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하릴없이 마당을 서성이다 송임은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뒤척이고 있으려니 도령이 들어왔다.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은 도령은 다른 손님이 베고 있는 목침을 손톱으로 절반으로 쪼개 베고 누웠다. 그리고는 곧 잠이 들어버렸다. 

송임은 멀뚱멀뚱 도령을 쳐다보았다. 아기처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자는 모습이 엄청나게 먹고 마신 뒤 지붕이 들썩거릴 정도로 코를 고는 자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놈일까. 얼마나 힘이 센 놈일까."

송임은 참지 못하고 도령을 흔들어 깨워 물었다. 

"저는 지리산에서 왔습니다. 갈 곳이 없어 여기 몸을 의탁하고 밥이나 얻어먹고 있지요. 이름이란 것이 있긴 한데 부끄러워 감히 들먹이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빤히 쳐다보는데 그 눈길이 차분하고 두려움이 없었다. 이놈 봐라 싶어 송임은 힘껏 도령의 가슴을 밀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써도 도령은 한 치도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다는 듯 이맛살만 살짝 찌푸렸다.   

"내 여태 여러 씨름판을 돌아다녔지만 자네 같은 장사는 처음일세."

그리고 그만한 힘을 가졌으면 이렇게 허드렛일이나 거들고 지낼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령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지리산에서 두 형님과 함께 도적질을 해먹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소를 팔고 돌아가는 사람을 쫓아 돈을 빼앗으려 하는데 제사에 쓸 돈이라며 내놓지를 않더라고요. 하여 제가 제사에 쓸 만큼만 남겨두고 내놓으라 하니까, 두 형님께서는 모조리 다 빼앗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화를 내면서 형님들을 멀리 집어던져 버렸습니다. 그때 큰형님은 백두산까지 날아갔고 작은형님은 한라산까지 날아가 버렸습니다. 제사에 쓸 돈은 남겨두라고 한 저에게는 인정을 베풀어서 여기 함안까지만 던져줄 테니, 조용히 살라고 하더군요. 그때 떨어지면서 바위를 짚었는데 이렇게 손이 납작해져 버렸습니다. 장사께서도 어쭙잖은 힘 가지고 으스대지 말고 집에 가서 농사나 지으시지요."

그렇게 말한 도령은 다시 잠들어버렸다. 그러나 송임은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새벽 무렵 깜빡 잠이 들었다 깬 송임은 부랴부랴 도령을 찾았다. 그러나 주모는 고개만 흔들었다.

"그렇게 힘 좋은 도령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수? 하지만 내 일을 거들어 주는 사람은 저 영감탱이 뿐이라오."

주모가 가리키는 아궁이 앞에는 부지깽이 드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듯한 늙은이가 앉아 있었다. 송임은 황급히 집 뒤로 보았다. 태산같이 높던 나무더미 대신에 궁색하기 짝이 없는 장작개비만 몇 아름 쌓여 있었다. 힘을 함부로 쓰고 다니는 자신에게 하늘이 불호령을 내린 것을 깨달은 송임은 씨름판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김해 집으로 길을 잡았다.

고모실이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고른 송임은 골짜기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내려갔다. 골짜기 중간 개울에서 윗저고리를 다 벗고 겨드랑이를 천으로 감싼 아이 하나가 한 손으로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리고 가재를 잡고 있었다. 송임이 기척을 하자 아이는 한 손으로 밀어젖힌 바위를 놓지도 않고 쳐다보았다. 송임은 깜짝 놀랐다. 몇 년 동안 들며날며 얼굴만 보아온 바로 자기 아들이었다.

송임은 비로소 아들을 안아 보았다. 그리고 겨드랑이를 감싼 천을 들춰보았다. 아이의 겨드랑이에는 반짝이는 비늘이 선명하게 돋아 있었다. 송임은 너무나 놀라 아이를 꼭 껴안았다.

"애비가 너무 무심하였구나."

송임은 아이를 안고 부랴부랴 골짜기를 내려왔다. 고모실 입구에 도착하자 전에 보이지 않던 두 개의 석탑이 동쪽과 서쪽에 나란히 서 있었다.
 

"저 탑은 어머니께서 세우신 거랍니다. 아버지께서 오시면 용마를 잡아주실 거라고 하셨어요."

천진난만한 아이의 말에 송임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내가 용마를 잡아주고 말고. 너는 아무 걱정 말거라."

서둘러 집으로 간 송임은 아내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밖으로 나돌며 힘자랑을 하고 다니는 사이에 아이는 벌써 여섯 살이 되어 있었다. 송임은 아내에게 아기를 맡기고 날음산고개 아래 못으로 달려갔다. 옷을 벗어던지고 고요한 못물을 노려보았다. 어느 때 들었던 말 울음소리를 기억해냈다. 그러고 보니 꼭 아이가 태어나던 무렵이었다.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마음껏 헤엄을 치던 그 못에 용마가 있었다니. 

송임은 곧 못에 뛰어들었다. 크게 숨을 머금고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물 위로 솟구치기를 거듭하면서 용마를 찾았다. 못물은 금세 진흙탕이 되었다. 이리저리 못을 휘젓고 다니기를 얼마나 했을까. 어디선가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살펴보았다. 진흙탕이 된 못 저쪽에서 말 한 마리가 퍼덕거리고 있었다.  

힘껏 헤엄을 쳐 다가간 송임은 용마에 올라탔다. 주먹을 휘둘러 콧잔등을 내리쳤다. 펄펄 날뛰는 용마와 씨름하기를 한 식경, 마침내 송임은 용마를 못가로 끌어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용마가 숨을 거둔 것을 보고 송임은 무릎을 꿇고 절한 뒤 불에 태웠다.

"아들을 살리고자 너를 죽였으니 나를 용서하거라."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아이를 안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송임은 아이의 겨드랑이를 싸매고 있는 천을 풀었다. 선명하게 돋은 비늘이 날개처럼 하늘로 뻗어 있었다. 송임은 아이의 몸을 묶고 눈을 가린 뒤 그 비늘을 칼로 도려냈다. 송임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송임은 실존했던 인물로 성품이 순수하고 도량이 크며, 또 병서에 통달한 장사였다고 한다. 나라에 전쟁이 없으니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두루 유람하며 지냈는데, 이 활달하고 의협심이 강한 인물의 품행이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진례 송장군'에 대한 여러 종류의 설화가 만들어진 듯하다. 또 아기장수의 힘을 다스리기 위해 세웠다는 두 개의 석탑 중 하나는 지금도 고모실에 남아 있다.




김해뉴스
조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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