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동시장 중심 이주민 밀집지 상가
구제옷 등 상품의 질·다양성 떨어져

내동 등 신도심에선 내국인들 '힐끔'
"내 돈 내고 물건 사는데 … 편한 데로"


5년간 동상동에서 여성복 가게를 운영해온 최 모(52) 씨는 최근 점포 앞에 '임대'라고 적은 종이를 붙였다. 그는 "처음에는 내국인과 이주민 모두 몰려 장사가 잘 됐다. 점점 사람이 오지 않더니 요즘은 가게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어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외국인거리로 알려진 동상동, 서상동 일대는 주말이면 이주민(외국인 주민)들로 북적인다. 이들을 위한 나라별 음식점과 슈퍼마켓은 온종일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있는 옷가게들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장사가 안돼 임대로 내놓거나 문을 닫은 옷가게들도 적지 않다. 이주민들은 동상동, 서상동의 옷가게를 잘 이용하지 않고 옷을 사러 부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해이주자의집'의 수베디 여거라즈 대표는 "옷을 구매하러 부산으로 가는 이주민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민들은 왜 가까운 동상동·서상동을 놔두고 먼 부산으로 옷을 사러 가는 것일까. 내국인 상인들은 "이주민들이 김해에서 돈을 벌면서도 김해에서 돈을 쓰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 네팔 출신 이주민들이 서상동의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고 있다. 이주민들은 김해보다는 부산에서 옷을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상동·서상동에는 중고옷인 '구제' 제품을 파는 가게가 많다. 유명상표는 아니더라도 품질과 가격이 비교적 괜찮은 이른바 '보세' 제품을 파는 가게는 적다고 한다. 이때문에 이주민들은 중고옷보다는 새옷을 고르러 부산 서면이나 사상으로 간다는 이야기였다.

3년 전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 트리(28) 씨는 "유학생 등 젊은 이주민들은 동상동에서 옷을 사지 않는다. 동상동에서 파는 옷들은 중고옷이어서 유행에 뒤처진다. 부산 서면에 가면 옷가게가 밀집돼 있어 종류가 다양하다"면서 "동상동에도 보세 옷가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동상동에서 남성용 보세 옷가게를 개업한 김 모(32) 씨는 "옷가게를 찾는 이주민들은 많지만 보세 옷가게가 별로 없어 점포를 열게 됐다. 몇 개월 사이에 단골이 많이 생겼다"면서 "연예인 사진을 가져와 같은 스타일로 골라달라는 이주민들도 있었고, '소개팅'을 나간다면서 옷을 추천해달라는 이주민들도 있었다. 옷에 돈을 많이 쓰는 이주민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이주민 관련단체에서 근무하는 장 모(32) 씨는 "업무와 근무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평균 임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은 대략 월 180만 원을 받는다. 300만 원까지 받는 사람도 있다"면서 "이주민들이 값싼 중고옷만 입는다거나 돈이 없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민들은 돈을 벌면 대부분을 모국에 보내지만 소비도 많이 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20~3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처럼 외모와 옷에 관심이 많다. 그들을 노동자라는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물론 싼 중고옷을 좋아하는 이주민들도 있다. 3년 전 네팔에서 온 람하(35) 씨는 "중고옷은 싼값에 구입할 수 있어서 좋다. 평소에 입기보다 공장에서 일할 때나 집에 있을 때 편하게 입는다. 그래서 디자인이나 재질은 따지지 않는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주민들은 왜 괜찮은 옷을 파는 내외동이나 삼계동, 또는 장유로 가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이주민들은 내국인들의 불편한 시선 때문에 가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6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르디(34·여) 씨가 대표적 경우다. 그는 내국인들의 시선 때문에 쇼핑을 하기 힘들어 옷을 살 때마다 경전철을 타고 부산으로 향한다고 했다. 아르디 씨는 "내외동, 삼계동 등에 가면 한국인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동상동 밖으로 나가기 불편하다"면서 "서면, 남포동에서는 이주민들이 쇼핑해도 한국인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옷 종류도 다양해서 자주 간다"고 말했다. 트리 씨도 "서면에 가면 점원들이 이주민들에게 눈치를 주지 않고 친절하게 대한다. 편안하게 쇼핑할 수 있어 좋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이주민들이 쇼핑하러 내외동 등에 오는 게 불편하다는 내국인들이 있었다. 내동에 사는 이 모(43) 씨는 "동상동에는 이주민들이 쇼핑할 공간이 많다고 들었다. 꼭 내동까지 올 필요는 없지 않느냐. 내동까지 이주민들이 득실거리면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베디 대표는 "동상동에서 옷을 사려다 맞는 게 없어 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부산에 갔더니 크기나 종류가 다양했다. 쇼핑을 하러 부산에 가는 이주민들이 많다. 돈은 김해에서 벌고 소비는 부산에서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주민들 때문에 동상동 상권이 망했다고 주장하는 상인들이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동상동에도 이주민들이 제대로 소비할 수 있는 가게들이 생기면 상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서 "다른 지역의 한국인들이 이주민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이들도 김해 발전에 기여하는 주민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정혜민 기자 jhm@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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