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나가 멀리 도시에서 일하다 휴가를 맞아 고향에 돌아오면 꼭 책 몇 권을 사들고 왔다. 그 책들은 고스란히 책장에 꽃혔다. 시골의 기나긴 겨울에는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었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알지 못했다. 하루는 따끈한 아랫목에 누워 어머니가 구워준 고구마, 감자를 먹고 있었다. 그러다 누나가 두고 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문학부터 역사, 철학까지 읽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아랫목에서 책 읽는 재미가 나를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책 속의 글들은 나를 위로하며 삶의 방향을 찾아가도록 소중한 것들을 채워주었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 탓에 책을 접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 목마르고 갈망할 때 책에 집착하는 심리적 마술에 걸려 있다. 하지만 본래 책 읽기는 그렇지 않다. 자연스럽게 손에 잡히게 하는 것이다.
 
경북 칠곡군에 있던 학상리마을회관은 북카페도서관으로 바뀌었다. 60대 이상 어르신들이 글을 배우고 시를 짓고 연극을 익히는 곳이 됐다. 인문학과 도서관은 거창한 게 아니라 어르신들의 삶 그 자체였고 생활이었다. 책 읽기 운동을 가장 먼저 시도한 영국에서 도서관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쓸 데 없는 것들을 고귀한 것들로 만들어가는 도서관은 우리 근처에 있다. 동네도서관은 청소년, 어르신, 여성, 어린이들이 어우러지는 인문학 공간이요 지혜의 놀이터다. 동네도서관에서는 책냄새 외에 사람 냄새가 난다. 도서관에 물음의 답은 없지만 의미는 있다. 겨울에는 도서관에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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