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추고 싶었던 어린 소녀는 무용학원 창문가에 서서 예쁘게 춤추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발레를 시작한 그 소녀에게 선생님들은 어깨선이 곱다며 한국무용을 권했다. 한국무용가 이정숙(45) 씨. 그는 매일 춤을 추고 있다. 김해무용협회 지부장이자, 연예술단 단장 이정숙 씨를 만났다. 

춤추고 싶어 발레를 시작한 소녀
"넌 어깨선이 참 곱구나"
그에게 한국무용은 운명이었다

대학 졸업 후 창작무용단에 들어갔지만
전통춤 추고 싶은 마음 점점 커져
결국 승무와 살풀이 세계로 발을 디뎠다

"정중동 표현이 곧 한국춤이고
그 중의 최고가 승무이니
승무 추는 걸 보면 춤 실력 알 수 있어"


▲ '정(靜) 속에 동(動)이 꿈틀거리고, 동 속에 정이 있는 것. 정중동(靜中動)을 표현하는 것이 한국춤입니다. 이정숙이 연무용학원에서 춤연습을 하고 있다. 김병찬 기자 kbc@

이정숙이 단장을 맡고 있는 연예술단의 단원들이 춤을 추는 연무용학원은 동상동 722-4에 있다. 입구 오른쪽에는 탈의실이 있고, 그 앞에는 북이며 장구 등이 놓여 있다. 한쪽 벽면이 모두 거울이라 실내는 훨씬 넓게 보인다.

이정숙은 1970년 서울 신당동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가족은 부산으로 이사했다. 대상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나 학예발표회 때 무대 위에서 예쁘게 춤을 추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성격은 남자애 같았지만, 부채춤을 추는 친구들이 너무 예뻐서 나도 그 속에 끼어 함께 춤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용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워서 복도에서 창문 너머로 들여다보기도 했죠. 부모님께 울면서 떼도 써봤지만, 무용학원은 못 다녔어요."

낙동여중에 입학했을 때 무용교사가 1학년생들을 몇 명 뽑아서 처음으로 학교 무용부를 만들었다. 무용교사는 이정숙을 보더니 "다리가 길구나, 무용하면 잘 하겠다"며 무용부에 합류시켰다. "막상 학교 무용부원으로 뽑히고 나니까, 부모님께서는 '그러면 한번 해보라'는 정도로 물러서셨죠. 무용부에서는 발레를 배웠어요. 부산예고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께서 공부를 해야 한다며 반대하셨어요. 결국 무용의 꿈을 접어야 했어요."

그는 혜화여고에 진학했다. "입학한 뒤 무용시간에 선생님이 '무용 해 본 사람 있냐'고 물으시더군요. 저를 보면서 '무용 하면 잘 할 수 있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춤을 추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다른 건 아무 것도 필요 없다, 그저 춤을 출 수 있도록, 무용학원에만 보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어머니도 은근히 제 편이 되어주셨어요. 결국 아버지도 '그렇게 춤이 좋으냐, 그렇게 하고 싶으냐'며 제 마음을 알아주셨답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차혜정무용학원이었습니다."

그는 무용학원에서 다시 발레를 시작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저에게 '너는 어깨선도 동작선도 한국무용이 어울리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때 제 키가 168㎝였는데, 당시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발레리나들에 비해 큰 키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무용으로 전공을 바꾸었습니다."

딸이 본격적으로 무용을 하자 어머니는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무용대회에 나가면 작품비니 의상비니 하는 게 필요해요. 처음 대회에 나갔을 때였어요.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는데, 차혜정 선생님이 저를 특별히 많이 배려해주셨죠. 나중에 통상적인 비용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 든 것을 알고, 어머니가 선생님께 따로 전화를 드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셨어요. 그 비용도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따로 모아 마련한 돈이었답니다."

두 번째 대회에 나갔을 때, 아버지가 대회장에 오셨다. 무대에서 무용하는 딸을 아버지가 제대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내 딸이 무용을 하는구나, 참 이쁘다, 잘 한다'고 그때 저를 인정하셨나 봐요. 그 뒤론 대회에 나갈 때 직접 운전해 차도 태워주시곤 하셨어요. 저는, 그런가보다 했어요. 아버지도 저도 좀 무뚝뚝한 성격이었거든요. 무뚝뚝한 두 사람 사이에서 어머니가 고생을 좀 하셨지요."

어머니는 딸의 머리를 아침마다 빗겨 주었다. "고 3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가 머리를 빗겨 주셨어요. 긴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정수리 근처에서 단단하게 한 번 묶고, 다시 땋아내려 끝을 묶고. 돌돌 말아 올려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스타일을 늘 어머니가 해주셨죠. 어머니는 '결국 이리 될 것을, 좀 더 일찍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시킬 걸 그랬다'는 말도 하셨어요. 항상 저를 돌봐주셨던 어머니가 계셨기에 오늘의 제가 있는 거죠."

그는 1989년 동아대학교 무용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 동아리 '순수체육연구회'에 가입했다. '왜 체육을 해야 하나', '왜 무용을 해야 하나' 하는 식으로 신체활동의 기본적인 탐구를 하는 동아리였다. 그런데 학과 교수들이 이 동아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교수님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동아리에서 빠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다지 열성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에요. 대학 3학년 때는 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면서도 수업을 한 번도 안 빠졌어요. 학생회에서 어떤 일을 하든 수업시간이 되면 강의실로, 연습실로 갔지요. '어떤 경우에도 수업은 절대 안 빠진다. 그것이 학생의 본분'이라는 게 제 생각이었고, 다른 학생회 간부들도 결국 '네 말이 맞다'고 인정했죠. 졸업할 때 교수님들한테서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을 들으며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말을 들었지요."

대학 4학년 때 김은이 교수가 만든 김은이무용단의 작품 '바람의 넋' 무대에 섰다. 이 작품은 부산무용제에서 1등, 전국무용제에서 2등을 했다. 소설가 오정희의 중편소설 '바람의 넋'을 창작한국무용으로 만든 작품으로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무용수들이 맨발로 무대에 선 것도 주목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부산시립무용단으로 가고 싶었으나, 김 교수의 권유로 김 교수가 이끄는 '짓무용단'에 남아 활동했다. 결혼을 하고 첫 아들을 낳고 몸을 추스른 다음 무대에 서기도 했다.

"짓무용단은 창작무용을 했는데, 저는 전통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갔지요. 이매방, 한영숙 선생님의 승무와 살풀이 등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선배들을 따라 이매방 연수회에 갔어요. 이매방 선생님의 아내인 김명자 선생님이 범일동에서 '이매방무용학원'을 열고 있는데, 그 학원에서 승무와 살풀이를 본격으로 배웠지요."

승무와 살풀이 이야기로 접어들자 이정숙의 눈에는 빛이, 목소리에는 열기가 더해졌다. "승무는 우리나라 전통춤 가운데 최고예요. 승무를 배우면 모든 춤의 자세가 한 단계 올라간다고 할까요, 승무를 잘 추는 사람은 다른 춤도 잘 추게 됩니다. 승무 추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춤 실력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매방 선생님은 한국춤을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하셨어요." 이매방은 '여자 같은 요염함과 애절함, 슬픔과 원통함이 정(靜)이라면 남성적인 박력을 통해 발산하는 것을 동(動)'이란 말을 자주 했다. 이정숙은 승무 이야기를 계속 펼쳐나갔다. "정 속에 동이 꿈틀거리고, 동 속에 정이 있는 것.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한국춤이고, 그 중 최고가 승무이지요. 승무를 춰보니까 힘이 들더군요. 동작 속에 힘이 있어야 하고, 선도 좋아야 하고, 느낌도 잘 표현해야 합니다. 동작이 느린 부분은 얼핏 보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움직임이 없는 게 아니에요. 멈춘 듯 보이는 몸짓 속에서도 여전히 동작선은 움직이고 있어요. 승무를 추면 기분이 좋아요. 다른 춤을 열 번 추는 것보다 승무 한번 추는 게 낫지요. '진짜 춤'을 춘 것 같아요. 살풀이는 여성스럽고, 단아하고, 아름답지요. 분위기, 한, 감정선을 드러내는 게 중요해요. 승무와 살풀이는 매일 연습해도 부족해요."

그는 2000년에 김해에서 '이정숙무용교실'을 열었고, 2003년에 김해로 이사를 왔다. 2년 후쯤 김해무용협회에도 가입했다. 김해사람, 김해무용인이 된 것이다. 현재는 김해무용협회 지부장으로, 또 연예술단 단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예술강사로 경남 전 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시댁이 있는 남해의 학교에 갈 때면 시댁에 들러 인사도 드리고 반찬도 더러 얻어오곤 한다. 동료 춤꾼들과 승무와 살풀이를 연습하는 건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

"김해무용협회에서 이매방 선생님의 제자인 최창덕 선생을 모셔 여름이면 살풀이, 겨울에는 승무 연수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4년여 동안 최창덕 선생이 매주 한 차례씩 김해까지 내려왔지요. 김해의 강옥영 선생을 비롯해, 김해와 부산 창원 등 인근도시에서 한국무용가들이 김해로 와서 최창덕 선생을 모시고 살풀이와 승무를 추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17일, 18일에는 김해문화원에서 승무 특강도 엽니다."

이정숙은 주부의 역할, 예술강사의 활동을 뺀 시간은 오로지 춤 연습에 전념한다고 말했다. 춤을 출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했던 그는 이제 마음껏 춤을 춘다. 그리고 매순간 자신의 춤을 생각한다. "아름다운 선을 살리면서 의미전달을 하는,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춤을 추고 싶어요." 

≫ 이정숙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전수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무용예술강사, 김해무용협회 지부장, 연예술단 단장.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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