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에 TV에서 '국악한마당'을 우연히 보았어요. 전통음악에 관심이 생겼지요.
그러다가 한 자동차 광고를 보았는데, 사물놀이패가 나오더군요. 땀방울을 튀기면서 신들린 듯 사물을 치더라고요.
뭐기에 저렇게 신명나게 치나, 저 땀방울은 뭔가, 나도 저렇게 땀흘려보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친구들이 '서태지와 아이들' 책받침을 가지고 다닐 때 저는 잡지나 신문에서 오려낸 사물놀이패 사진을 들고 다녔지요."
이 별난 중학생은 자라서 전통타악을 연주하는 국악인이 되었다. 김해토박이 전통타악인 이수금(42) 씨를 만났다. 

방송 '국악한마당' 본 뒤 전통음악 관심
사물놀이패 나오는 광고 보며 가슴 쿵쾅
대학 땐 아침에 장구연습 하려 신문배달

남원 '임실필봉굿' 전수관에서 조교생활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에 다시 진학
전주시립국악단 1년 생활 후 김해 귀향

학생·직장인들 가르치며 국악교육 전념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참 인생"


이수금이 풍물을 가르치는 김해시 건강가정지원센터 3층 '풍물교실'로 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제법 널찍한 방이 나온다. 한쪽 벽의 진열대에 장구며 북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이수금은 김해 토박이이다. "합성초등학교, 중앙여자중학교, 김해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중학교 때는 국어를 좋아했어요. 국어담당이었던 안혜경 선생님이 우리나라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지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었어요. 그러면서 우리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중학생 때는 장구실습 음악시간이 있었다. 학교에는 장구가 딱 한 대 있었다. 애가 타도록 그 장구를 쳐보고 싶었지만 학생들은 만져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연습을 한 뒤 시험을 쳤는데 그가 전교에서 1등을 했다. 진학상담을 할 때면 선생님들이 '남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데 관심 두지 말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랐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엄마한테 국악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제 생각이 뚜렷하니까 엄마가 교육청에 문의를 했어요. 그때 교육청 직원이 '딸한테 그런 거 시키면 집안 망한다. 공부시켜라'고 했대요." 그는 말끝에 웃음을 지었다. "저는 그런 학교가 없나보다 하고는 김해여고에 입학했어요. 1학년 때 담임인 유창영 선생님을 존경했어요. 진학상담 때 국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어요.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는 국악으로 대학을 간 학생이 없다.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군요. 존경하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럼 길이 없나 보다' 생각했지요. 고3 때 공부에 흥미를 잃자 성적이 뚝 떨어지더군요. 졸업을 하면 장구를 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습니다."

이수금은 고3 때 김해실내체육관에서 마당놀이 패의 공연을 접했다. "북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심장이 두근두근 하더군요. 그 다음에는 혼자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부산문화회관까지 가서 '소태산대종사' 창극을 보았어요. 서면에서 버스를 갈아탔어요. 흥분했던지 버스비 내는 것도 잊어버렸지 뭐예요. 공연 보는 동안 심장이 터질 듯 했어요. 웅장한 세트며 국악 노래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어요."

▲ "중학생 때 장구로 국악 전통타악을 처음 접한 후 오직 이 길만을 걸어왔습니다." 이수금 씨가 꽹과리를 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병찬 기자 kbc@
그는 부산 성심외국어전문대 영어과로 진학했다. 낮에는 장구를 쳐야 해서 야간으로 진학했다. 그리고 김해문화원에 가서 장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문화원에는 이명식(현 김해오광대 단장), 정용근, 강재수 등 풍물을 가르치고 배우는 많은 '아저씨'들이 있었다. 어린 이수금이 장구를 배우겠다고 찾아가면 '아이고 수금이 왔나' 하면서 짜장면도 사주었다. 그는 강재수 선생에게 장구를 배웠다. 강재수는 "어른들은 10번을 가르쳐도 안 되는데, 수금이는 세 번만 같이 치면 된다"며 칭찬도 많이 해주었다. "요령을 모르고 치던 시절이라 손가락에서 피도 나고 굳은살도 생기곤 했어요. 시간만 나면 어르신들을 찾아가 배우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하루 종일 치고…."

이수금은 그때 새벽에 신문 배달을 했다. "목적은 일찍 일어나는 거였어요. 신문 배달이 끝나면 자전거에 장구를 싣고 문화원에 가서 아침에 신나게 장구를 쳤어요. 성심전문대를 졸업하고 나면 다시 국악 관련 대학에 진학해서 국악을 배우려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도 모았죠. '이것이 나의 길이다'는 생각을 다져갔어요."

전문대 재학 시절 그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도 보러 다녔다. 2학년 겨울방학 때는 김해에서 함께 장구를 치던 언니들과 전북 남원의 '임실필봉굿' 전수관에 가서 1주일 과정의 연수를 했다. 1주일 배운 뒤 연수생들이 모여 전통판굿을 재현했다. 한바탕 놀이판이 끝난 뒤 모닥불을 피워놓고 막걸리 한 잔으로 땀을 식혔다. "바로 이거야, 이게 내 삶이야 하는 생각으로 온 마음이 꽉 찼죠. 함께 왔던 언니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저는 집에 전화를 했어요. '1주일 더 있다 가야겠다'고요. 1주일 더 머무르는 동안 더 깊이 있게 배웠지요. 그렇게 2주일이 지난 뒤 집에 가는 길에 해인사에 들렀어요. 이명식 선생님이 '해인사에 북을 기막히게 치는 스님이 있다'고 말씀하신 게 생각나서 그 소리를 들으러 갔지요. 그런데 시간을 잘못 알아서 그 북소리를 못 들었지 뭡니까. 거기까지 가서 기가 막힌다는 북소리를 못 들었으니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지요."

이수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이 사람 참 못 말리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들 저한테 그런 말을 했지요. 저의 '애살'을 어떻게 말리겠냐고요. 남들이 만류하는 소리는 한 귀로 흘리고, 제가 생각한대로 한발씩 걸어갔어요. 전문대를 졸업한 뒤에는 오로지 대학에 가서 국악을 전공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죠. 틈틈이 국어와 영어는 공부를 해왔던 터였고요. 남원전수관에 갔을 때 만났던 양순용(중요무형문화재 임실필봉굿 11-마호)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전수관에서 1년간 조교로 일하면서 선생님의 아들에게서 입시지도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에 장학생으로 합격했어요."

이수금은 한국음악학과 재학 4년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만큼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사물, 풍물만 알고 있다가 국악관현악 수업을 들으니 환상적이더군요. 모든 악기가 합주를 위해 조율을 할 때는 심장이 다 두근거리더라고요." 인터뷰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슴이 뛰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그는 알까. 그의 삶은 줄곧 심장이 쿵쾅거리며 보내오는 신호를 따라 걸어온 듯 했다.

"대학시절 우리 과 학생들은 전국 각 공연단체에 뽑혀 다니며 공연무대에서 뛰었어요. 졸업한 뒤에는 전주시립국악단에 취직도 했어요. 1년 만에 관두고 김해로 돌아왔습니다."

고향 김해가 그리웠던 것일까. 그는 2000년에 김해로 돌아왔다. 울산, 창원, 김해 등 경남지역에서 전통 타악 강사로 활동하면서 공연도 했다. 예술강사 국악 부문 시험에도 합격했다. 그가 처음 장구를 배웠던 김해문화원에서 2003년부터 국악강사도 맡았다. "김해를 중심으로 한 경남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후진 양성을 하면서 공연도 하고 마음껏 풍물도 치니 행복합니다."

이수금은 대곡초등학교, 구지초등학교, 김해제일고등학교, 김해문화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해의 직장인풍물패 '한벌'의 지도강사로도 활동한다. '한벌'은 가야문화축제와 평생학습축제에서 공연을 하고, 겨울에는 김해 곳곳을 돌며 지신밟기도 한다.

"국악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부러워요. 저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배우고 싶을 때 마음껏 배울 수 있으니까요. 김해에 국악관현악단이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배우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애송이 국악관현악단'을 만들어 활동하다 보면 훌륭한 국악관현악단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국악을 배우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이수금은 국악 꿈나무들을 위한 말을 남겼다. "심장이 떨리고 심장이 이끄는 곳으로 자신을 던지고 끝까지 걸어가 보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어요. 그것이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길이죠." 이 말은 이수금이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다시 들려주는 말처럼 들렸다. 그와의 인터뷰에서는 마지막 순간에도 '두근거리고, 쿵쾅거리고, 떨리는 심장'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 이수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소속 국악강사. 김해문화원 문화학교 (풍물반, 사물놀이반) 강사. 중요 무형문화재 제 11-마호 '임실필봉굿' 이수자. 전주 시립국악단 단원(1994). 제 17회 전라북도 전국 고수대회 신인부 최우수상. 마산 가고파 국악경연대회 사물놀이 최우수상. 이광수 민족음악원 사물놀이 수료. 국립 남도국악원 마스터 클래스 연수(타악). 양순용, 이광수, 김덕수, 이영광, 이성근, 김규형, 김청만, 정화영 사사.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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