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게 깔린 지난 9일 오후 8시 30분. 구산동의 한 컨테이너에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먼저 온 사람들은 나중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추운 날씨에 몸이라도 녹이라"며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가족인 양 서로의 대소사를 훤히 꿰고 있는 이들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 사이에 모인 사람은 열 명으로 늘었다.
 
"이제 갑시다."

시계바늘이 오후 9시를 가리키자, 이들은 일제히 벽에 걸려 있던 형광색 조끼를 챙겨 입고 차량에 올랐다. 차량은 방범등을 깜박이며 북부동 일대를 구석구석 돌기 시작했다. 대원들의 시선은 공원, 학교 앞, 상가 등 어둠 속을 밝히는 불빛을 따라갔다. 수상한 낌새가 보이거나 청소년들이 몰려 있으면 일일이 내려 확인하고 선도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북부동의 밤을 밝히는 '북부동 자율방범대'였다.

▲ 1995년부터 20년간 북부동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밤마다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는 '북부동 자율방범대' 대원들.
"마을 지키자" 주민 뜻 모아 발족
회원 60여 명 20년간 한결같이 봉사
선도활동 벌이다 봉변당한 경험도
동네청소 등 행사에도 자발적 참여

북부동 자율방범대는 20년 전인 1995년 발족했다. 당시 구산동을 비롯한 북부동 일대는 청소년 본드 흡입, 폭행 사건 등이 빈번한 우범지대였다. 구산동이 개발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주민들은 '우리 동네를 스스로 지키자'는 마음으로 자율방범대를 만들게 됐다. 처음에는 차량도 없이 매일 걸어서 구산동 일대를 돌다 범위를 북부동 전체로 확대했다. 지금은 김해시에서 지원받은 차량으로 방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외의 활동은 대원들이 회비를 모아 펼쳐가고 있다.
 
북부동 자율방범대에서 활동하는 대원은 60여 명. 발족 이후 20년 동안 함께 일해 온 초기대원들부터 들어온 지 두 달도 채 안 된 신입대원들까지 다양하다. 부부 방범대원도 4쌍이나 된다.

북부동 자율방범대 대원들은 조를 짜 월~금 오후 9시~10시 30분에 북부동 전체를 돌며 방범 활동을 벌인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나 비가 오는 여름은 물론 공휴일이나 명절에도 활동을 빼먹지 않는다. 방범 활동을 하는지 안하는지 표시가 잘 나지 않은 일이지만, 이들이 꿋꿋하게 20년 가까이 이어온 봉사 덕분에 북부동의 밤거리는 많이 바뀌었다.

방범대 창립대원인 연인자(60) 씨는 "처음에는 거리에 비행 청소년들이 많았다. 주민들이 직접 나선 덕에 거리가 많이 바뀌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제 방범 활동 봉사를 하는 게 삶의 일부가 됐다. 앞으로도 힘 닿는 데까지 하고 싶다"며 웃었다.

활동을 오래하다 보니 별별 사건들도 많았다고 한다. 무리 지어 담배를 피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학생이 벌써부터 담배를 피면 안 된다"고 훈계를 했다가 "당신이 뭔데? 나한테 담배 한 개비라도 사준 적 있냐"며 오히려 욕을 들었던 일은 허다하다. 아들에게 폭행을 당해 방범대 초소로 뛰어 온 어르신은 물론 어둑한 공원에서 패싸움을 벌이던 청소년들도 있었다. 성폭행 후 도주하던 남성을 뒤쫓았던 일도 있었다.

북부동 자율방범대는 방범 활동 이외에도 동네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일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기양(52) 사무국장은 "경찰 지구대나 주민센터에서 도움을 요청받거나 함께 봉사할 때도 많다. 금연구역 확대 홍보캠페인이나 동네 청소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류상으로 장애인 등급이 낮거나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역 복지단체에 연결해준 사례도 많았다고 한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많다. 방범대 류진원 대장은 "열심히 하지만 시의 지원이 많이 부족하다. 대원들의 사비로 마련한 컨테이너 초소도 15년이나 돼 비가 새고 곳곳이 썩고 있다. 회비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날씨가 추워서 공원에 사람들도 없을 때나 공휴일에는 하루 이틀 쯤 쉬어도 되지 않나"라고 묻자, 한 방범대원은 오히려 나무라듯 대답했다. "날씨가 춥거나 빨간 날이라고 밥을 안 먹나요?" 밥을 먹듯 숨을 쉬듯 삶의 일부가 돼 버린 이들의 방범 활동 봉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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