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귀금속 일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예쁘고 신기하기만 했지요. 그 시절에는 반지 하나도 흔치 않았잖아요? 귀금속을 직접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습니다. 예전에는 주물에서부터 광을 내는 것까지, 처음부터 마지막 과정까지 한 사람이 다 할 수 있도록 했었지요. 그렇게 배웠습니다." 분성로 329에서 귀금속판매장인 '순금당'을 운영하는 귀금속 가공기능사 임만석(58) 씨가 도제 시절의 일을 회상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귀금속 분야에서 일을 해왔다는 김 씨의 기술자 인생을 만나봤다.

임만석은 부산 구포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친척이 운영하던 금방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친척은 구포의 번화가에서 '백옥당'이라는 귀금속가게를 열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을 한번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하셨고, 친척도 일을 배우러 오라고 하셨죠. 별 고민 없이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에는 귀금속 분야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한다. "요즘은 대학에 관련학과도 생겼지만 그때는 흔하지 않았지요. 더구나 저는 어린 나이였으니 일찍 시작한 셈이지요."
 

▲ "한창 일할 때는 손가락의 지문도 다 닳아 없어지곤 했지요. 불에 데기도 하구요." 임만석 씨의 삶은 그의 손에 더 잘 나타나 있다. 박나래 skfoqkr@
중학교 졸업 후 친척 금방에서 일 배워
모든 과정 혼자 가능한 기술자로 성장
동상동 번화가에 25세때 개인점포 열어

2009년 경남기능경기대회 첫 출전
처음 본 펜던트 디자인 도면 되레 공부
동메달 수상 후 2010년엔 금메달 따내

"나의 손길이 닿은 귀금속과 장식들이
 다른 이의 몸에서 빛날 때 큰 보람"

반지나 목걸이 등의 귀금속을 만들자면 주물, 주조, 금형, 왁스작업, 땜질, 광내기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요즘은 각 과정별로 전문화 작업이 이뤄지지만, 당시에는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다 해낼 수 있어야 '기술자' 대우를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백옥당에도 기술자가 있었어요. 그 기술자에게서 3년 정도 일을 배웠지요."
 
임만석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귀금속을 오래, 그리고 자세히 보았다. "백옥당에서 본 귀금속은 예쁘고 신기했습니다. 요즘에는 여성들이 반지나 목걸이를 많이 착용하고 다니지만, 그 시절만 해도 금반지를 끼고 다니는 사람조차 쉽게 볼 수 없었습니다. 고가였으니까요. 그런 물건들을 직접 만져보고, 또 제가 직접 만들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게 그저 좋았습니다."
 
임만석은 일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종일 앉아서 일을 해야 했다. 3년 정도 배우고 나자 혼자서 모든 과정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됐다. 하지만 힘이 들어서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귀금속이 아닌 다른 분야의 일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 그는 회사에 취직도 해보았다. "몇 달간 회사생활을 해봤어요. 그런데 회사는 각 부서별로 관계가 복잡하잖아요. 상사와 부하직원 체계도 있고. 기왕 배운 일이 낫겠다 싶어 다시 귀금속 쪽으로 돌아왔지요."
 
그 무렵 김해에서 귀금속 기술자를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동상동시장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정금당'이었다. 그는 20세 때 정금당의 기술자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다른 가게로 한 번 더 옮겼다가 25세 때 자신의 가게인 '순금당'을 열었다. "기술자 생활을 하면서 번 돈으로 가게를 열었지요. 동상동은 그 당시 김해 최고의 번화가였습니다. 동상동시장 안에 자리를 잡은 뒤론 줄곧 원도심을 떠나지 않았어요. 지금이 세 번째 자리에요."
 
순금당이라는 이름은 직접 지었다. "그냥 순박하게 지은 이름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름이 좀 이상한가요? 워낙 세련된 이름이 많아서요." 전혀 이상하지 않고 괜찮은 이름이라고 했더니, 그는 "그 당시에도 괜찮은 이름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 귀금속 부문 공예 기능경기대회에서 디자인 도면대로 정확하게 만들어 낸 펜던트.
임만석은 2009년 경남기능경기대회에 처음 나섰다. "그런 대회에 나갈 생각이 없었는데, 아내가 계속 나가보라고 권하는 거예요." 그의 아내 최영옥 씨는 2012년 화훼장식 부문 경남최고장인으로 선정된 꽃꽂이계의 유명인사이다. 남편의 가게를 장식하기 위해 꽃꽂이를 시작했던 그는 2008년 제43회 전국 기능경기대회 화훼장식 부문에서 1위인 금상을 받았고, 이후 각종 전국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최영옥으로서는 섬세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남편도 대회에 나가 실력을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내가 거의 1년간 '대회에 나가보라'고 계속 꼬드기더라구요. 창원산업인력공단 직원까지 와서 '왜 대회에 안 나가느냐, 한 번 나가보라'고 하고…." 그래서 못이긴 척 대회에 나갔느냐고 물었다. "못이긴 척이 아니라 못 이겨서 대회에 나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경남기능경기대회 귀금속 공예 부분에 나간 임만석은 펜던트 모양의 디자인 도면과 똑같은 형태를 만들어내라는 과제를 받았다. 보석으로 장식하기 전의 펜던트 기본형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도면은 처음 봤지요. 어떤 식으로 대회를 치르는지도 모르고 나간 거니까요. 가로, 세로 높이를 똑같이 만들고 제시된 모양을 그대로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런 건 디자인 도면을 많이 봐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임만석은 펜던트 디자인 도면을 보여주었다. 수많은 선이 그려진 복잡한 모양과 세부지시가 있는 도면은 뭐가 뭔지 짐작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는 그 도면대로 만든 펜던트 형태를 보여주었다. 펜던트를 도면 위에 올려놓자, 도면의 선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펜던트 아래로 튀어나온 도면의 선은 한 곳도 없었다. 별과 나비를 응용한 형태, 사각형 속에 다시 오각형,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디자인 도면이었다. 똑같이 만들어 낸 펜던트 형태는 진주빛이 은은했다. 그 위에 보석으로 장식을 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 임만석 씨가 팔찌의 줄을 고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래는 금이나 은 등을 녹이는 도가니.
"대회는 사흘간 치러집니다. 하루 만에 다 할 수가 없어요. 은으로 형태를 만들고 표면을 사포로 매끈하게 다듬은 뒤 열처리와 약품처리 과정을 서너 번 하면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집니다. 대회에 나가서야 알았는데, 대학에서 귀금속 과정을 배우는 젊은 학생들은 하루 17시간씩 꼬박 앉아서 하나씩 만든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는 못하지요. 가게에서 장사도 해야 하고…. 하지만 학생들은 우리처럼 혼자서 하나의 귀금속을 완전하게 만들지는 못하지요."
 
임만석은 대회에 나가는 바람에 거꾸로 공부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디자인 도면을 처음 받았을 때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금쟁이 세월이 얼마인데 이것 하나 못 만들어서야'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회에 나간다는 건 남들은 어떻게 만드는가도 보고, 새로운 기술도 익히고, 또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그런 기쁨이 있습니다. 사실 그게 제일 좋았습니다."
 
그는 처음 나간 2009년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동메달을 따고 나니까 이 정도밖에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로운 분야를 접하고 나니 재미도 있고 더 잘 만들어보고 싶었지요. 진주의 귀금속공예가 정진석 씨를 만나러 진주까지 가서 배웠어요. 도면 해독을 잘 해서 척 보면 만들어질 형태를 안다는 부산의 이성호 선생도 소개받아 배웠지요."
 
임만석은 2010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이후 계속 대회에 참가했고, 2013년에 은메달을 받은 것 말고는 금메달을 계속 받았다. "전국대회에서 큰 상을 아직 못 받았어요. 올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참가해보려고 합니다."
 
그의 손에는 보이는 상처는 물론 아물고 난 뒤라 보이지 않는 상처도 함께 있었다. "엄지손가락에는 굳은살이 생기고 한창 일할 때는 손가락의 지문도 다 닳아 없어지곤 하지요. 불에 데기도 하구요. 차라리 살이 타버리면 상처가 빨리 아물어요." 얼마나 뜨거울까 하는 상상에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순금당 안쪽에는 저울, 도가니, 열기구와 각종 기구들이 놓인 작업대가 있었다. 그는 손님이 맡기고 간 팔찌를 고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군가가 소중한 약속을 담아 선물했을 그 팔찌는 세월이 흐르면서 줄이 끊어져 있었다. 그는 팔찌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고치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고쳐진 팔찌는 처음의 소중한 약속을 다시 빛내며 주인의 손목에 채워질 것이었다.
 
인터뷰 내내 '나는 특별히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던 그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제 손길이 간 귀금속이 다른 사람의 몸에서 아름답게 빛날 때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그것이 그가 평생 이 길을 걷고 있는 까닭일 것일 테지.

≫임만석
귀금속 가공 기능사. 경남기능경기대회 귀금속 공예 부문 2009년 동메달, 2010년 금메달, 2011년 금메달, 2012년 금메달, 2013년 은메달, 2014년 금메달.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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