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첫차를 타고 학교에 가 도자기를 만들던 소년이 있었다. 그는 지금 도예가가 되어 있다.
부산공예학교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도자기를 구웠던 도예가 임영택(46). 젊은날에는 공방을 닫는 아픔도 있었고, 새로운 공방을 열기 위해 돈벌이로 시작한 일에서 좌절도 겪었다. 그러나 그 어떤 어려움도 도자기를 향한 그의 꿈과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임영택의 '태경도예'를 방문했다. 

▲ "기본이 중요합니다. 열심히 익혀온 기본. 그것이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임영택이 물레에 앉아 도자기를 빚고 있다. 박나래 skfoqk
손재주 좋아 놀잇감 직접 만들었던 소년
부산공예학교 도자과 지원 후 도예의 길
 2009년 태경도예 열고 작품 더욱 매진
현대적 감각의 가야토기로 맥 잇는 작업
"가장 중요한 건 기본, 무엇이든 그렇듯"

임영택의 '태경도예'는 진례면 진례로 311번길 83-8, 시례리 상촌마을의 마을회관 옆에 있다. 태경도예에서는 모내기를 하고 벼이삭이 익어가고 추수를 하는 상촌마을의 풍경이 훤히 보인다고 한다.

태경도예로 들어서니 도자기 차 주전자 수십 개가 천정 아래 벽면 가로 막대에 죽 걸려 있다. 예쁘고 앙증맞은 차 주전자들. 이 풍경 하나를 똑 떼어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루가 있고, 그 오른편에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다실 겸 전시장이, 왼편에는 작업장이 있다. 전시장에는 임영택의  작품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안쪽에는 자그마한 작품보관소가 있다.

임영택은 부산 송도에서 4녀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가족은 해운대구 재송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는 공부보다 노는 게 더 좋았다. 그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며 웃었다. "동네에 문방구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동네 훈장이 공부를 가르쳤어요. 과외였죠. 동네아이들은 하교하면 거기서 공부를 했지만 저는 늘 도망가서 놀았어요. 형은 공부를 잘했죠. 제가 어렸을 때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죽을 뻔 했던 막내아들이라 그랬는지 아버지, 어머니는 크게 간섭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셨지요. 그래서 개구쟁이로 자랐어요. 형에 비하면 저는 문제아였죠, 뭐."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놀잇감을 직접 만들었다. "돈 주고 장난감을 산 적은 없었어요. 칼싸움을 할 때는 나무를 깎아 칼을 만들었고, 총싸움을 할 때는 딱총을 만들었죠. 찰흙으로 구슬을 만든 뒤 하나는 땅에 놓고 위에서 또 하나를 떨어뜨려 깨뜨리는 놀이도 했구요. 친구들과 수영강까지 나가 물고기도 잡았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다가 얼음이 깨져 죽을 뻔 하기도 했어요."

그는 그러나 어머니의 주문대로 성실하게 살았다고 한다. "공부는 안 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때 결석 한 번 안하고 학교를 다녔어요. 중학교 시절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성실했으니 어쩌면 그 점이 좋은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다'며 부산공예학교 진학을 권했어요. 목칠, 도자기, 사진디자인, 디자인, 회화 등의 분야가 있었어요. 도자기가 재미있을 것 같아 도자과에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지요."

부산공예학교 입학 후 임영택은 자신이 쓸 작업도구를 직접 만들었는데, 사용하기 편하도록 조금씩 변형을 시켰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본 선배가 "나중에 도자기 특별활동반에 들어오라"고 권유했다. 특별활동반에서는 정규수업이 시작되기 전인 오전 6시부터 연습을 했다. 해운대구 재송동의 집에서 동구 초량동에 있는 학교까지는 먼 거리였다. 그는 아랑곳없이 새벽 4시 30분 첫차를 타고 등교했다. 학교에 도착하면 5시 30분. 그는 누구보다 먼저 특별활동반실에 도착해 도자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3년 동안 학교를 다녔다. 특별활동반에는 처음엔 1학년 16명이 가입했지만, 1학기가 지나자 대여섯 명만 남았다.

그는 기능경기대회를 목표로 열심히 도자기를 만들었다. "학교 대표가 곧 부산 대표였죠. 고3 때 부산 대표로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나갔어요. 학교에서는 1, 2위를 다투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그 대회에선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죠." 그는 세상은 넓고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실습을 1회 졸업생인 유영찬 선배의 '세얼도예'로 나갔어요. 학교에서는 전통도예를 배웠는데, 선배는 전통에 변화를 주어 창의적인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현대적인 도예의 세계를 보았고, 자기 세계를 가진 선배를 만난 거지요. 졸업 후에는 진학보다 취업이 하고 싶었어요. 유 선배의 감각에 매료되어서 더 배우고 싶기도 했구요." 그는 세얼도예에서 군대 가기 전 1년, 갔다 와서 1년 해서 도합 2년을 배웠다.

임영택은 공병대에 입대했다. "신병 때였어요. 공사 도중 거푸집이 터져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는데, 제가 혼자서 몸으로 그걸 버티어낸 적이 있었어요. 고참들이 기특하게 보았던지 저를 서로 데려가려 하고 기술도 가르쳐주곤 했지요. 덕분에 전기와 용접을 뺀 나머지 건축기술을 모두 배웠습니다. 제가 만약 도자기를 안했으면 목공예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도자기를 전시해 둔 이 나무진열대도 제가 직접 짰습니다." 그가 짠 진열대는 매끈하고 튼튼했다.

제대를 하고 나서 보니 도자기업계가 분업화되어 있었다. 그는 세얼도예에서 가마담당으로 일했다. 물레작업을 안 하니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24세 때 부모의 도움을 받아 재송동에 자신의 공방을 열었다. 그런데 도자기를 만들 줄만 알았지 그걸 어떻게 팔아야 할지를 몰랐다. "만드는 것 못지않게 파는 것도 중요한데, 도자기를 팔아야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건데…. 공방이 어려워질 즈음 아버지, 어머니가 빚을 얻어 공방을 열어 주신 걸 알았어요. 4년 만에 공방을 접고 돈을 돌려드렸습니다."

그는 다시 2회 선배가 운영하던 부산의 명공방에 취직했다. 도자기를 만들기도 했고 판매도 해보았다. "백화점에서 도자기 판매 행사를 했을 때 판매와 영업을 맡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팔 수 있는지를 조금씩 배워나갔죠. 매장에서 고객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고객들의 의견을 반영해 도자기를 만들어보기도 했고요. 지금도 저는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반영해서 도자기를 만듭니다."

만드는 기술과 파는 방법을 알고 난 그는 다시 공방을 열 계획을 세웠다. 자금을 모으기 위해 형님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외환위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공병대 시절의 경험을 살려 종합설비 회사에도 다녔다. 그러다가 학교 동문들이 여럿 작업하고 있는 진례에서 도자기 일을 다시 시작했다. 8년 여 동안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일을 했다. 진례로 이사를 간 건 2001년인데, 2007년까지는 남의 공방에서 일을 했다. 그 후에는 작은 작업장을 열어 가마도 없이 반제품 만드는 일도 했다.

임영택은 마침내 2009년 현재의 자리에 태경도예를 열었다. "도예공방을 열었다고 해서 바로 알려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힘들었지요. 하지만 힘이 들수록 열정이 다시 피어났어요. 그 열정이 저를 버티게 해주었어요."

두 번의 고배 끝에 그는 2010년 경남기능경기대회 도자기 부분에서 동메달을 땄다. 도자기로 받은 최초의 상이었다. 그 상을 계기로 전국대회에서도 상을 받았다. 여러 대회에 작품을 출품할 때마다 상을 받았다. 2014년에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내보낼 후배들을 양성했고, 우수한 성적을 거둔 공로를 인정받아 경남도지사 표창장도 받았다.

그는 2011년부터 현대적 가야토기로 김해시공예품대전, 경남공예품대전, 경남관광기념품공모전 등 여러 대회에서 입상했다. 그가 만든 가야토기풍 차 주전자는 굽, 주전자받침, 주전자가 모두 한 몸체이다. 각각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물레성형을 할 때 그렇게 만든 것이다. "성형을 할 때 허리 살을 두껍게 해 두었다가 그걸 당겨내 작품을 완성하는 거지요."

임영택은 현대 가야토기를 만들고 있다. 가야토기를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락고도인 김해에서 지금의 가야토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야를 알리고 김해를 알리는 작업이자, 가야토기의 맥을 이어가는 길이라 믿고 있다. 

그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는 물레에 앉아서 손가는 대로 만듭니다. 따로 디자인을 하지는 않아요. 물레를 돌리면서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실패하면 다시 해보고요.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려면 기본을 철저히 배우고 또 익혀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열심히 익혀온 기본. 그것이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임영택/태경도예 운영. 김해도예협회·경남공예조합·예얼도예가 회원. 경남기능경기대회 동상·금상 2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우수상·동상, 김해시공예품대전 특별상·동상·장려상, 경남공예품대전 특선·은상2회, 대한민국공예품대전 입선2회·특선. 2014 경상남도 도지사 표창장. 2013 울산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2014 경남기능경기대회 기술위원, 2014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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