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통일된 후 옛 동독 지역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1,000가지 합법적인 세금 트릭'이었다. 자본주의 물결에 휩싸인 옛 동독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금에 대해 꼭 알아야 했다. 배급받아온 비누만 사용하다가 상품 진열대에서 무슨 비누를 고를 것인가 고민하는 것 외에도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자동차 운전면허 예상문제집'이다. 대한민국에서 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 중에서 이 책을 안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베스트셀러가 가장 좋은 책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는 위에서 예를 든 두 가지 경우처럼 그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사회의 모습을 비춰주는 겨울과도 같은 것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며 출판비평가로 활동 중인 한기호 씨가 '베스트셀러 30년'을 펴냈다.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 동안 탄생한 베스트셀러를 해마다 10권씩 소개하며, 그 책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한 씨는 1982년 출판계에 입문해 1983년부터 창작과비평사(현 창비)로 옮긴 뒤 만 15년 동안 현장 영업자로 일했다.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가 그의 노력 끝에 탄생했다. 그는 우리 출판계 최초로 출판 마케팅 분야를 개척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10년 단위로 구분한 시대의 흐름을 이렇게 표현한다. '1980년대-이념의 시대이자 불의 시대, 시의 시대이자 대하소설의 시대', '1990년대-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수위가 고조되던 시대', '2000년대-절대고독의 개인이 발견되는 여정의 시대'.
 
책은 10년 단위로 전체적인 흐름을 설명하며 당시 사회 분위기와 출판계의 현실을 짚어주고, 다시 매해마다 10권씩의 베스트셀러를 소개한다. 그래서 이 책 속에는 300권의 베스트셀러가 담겨 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문화서적)과 이동철의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현암사)이 1981년에 등장했다. 1981년 후반에 책으로 출간한 김홍신의 장편소설 '인간시장'(행림출판)은 다음 권이 나올 때마다 서점 입구에 '인간시장 ○권 입하'라고 선전 문구를 붙일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1982년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갑인출판사), 크리슈나무르티의 '자기로부터의 혁명', 1984년 김지하의 시집 '황토'(풀빛), 1985년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동녘).
 
1980년대를 더듬는 것만도 숨이 가쁘다. 책의 소개가 간단하다고 그냥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각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짚어주는 저자의 의견을 읽다보면, 그 당시 사회 분위기가 연상된다. 문학서를 비롯해 실용서, 처세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책들을 읽었는지 제목만 봐도 우리가 그 당시 어떤 모습으로 사회를 살아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키워드를 하나하나 들추어보느라 그렇다.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면, 지난 30년 동안 탄생한 300권의 책 중에 내가 읽은 책이 얼마나 있나 살펴보는 그런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 목록도 아니고, 여기에 소개된 책을 안 읽었다고 해서 독서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한기호 씨도 책에 썼지만 어떤 평론가는 베스트셀러를 '평상시에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사서 읽는 책'이라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30년/ 교보문고/ 464p/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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