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조기퇴직 탓 비뚤어진 시각
인력난 심한 기업은 "그나마 외국인 덕"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을 다니면 도둑이나 마찬가지) 등 일자리와 관련한 신조어가 입에 오르내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정년퇴직이 점점 앞당겨지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일자리 홍역을 앓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일자리가 모자란 데 대한 비난의 화살을 엉뚱하게 우리나라에서 일을 하는 이주민들에게로 쏘고 있다. 일자리 부족이 마치 이주민들의 탓인 것처럼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제 김해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이주노동자들이 한 이주민 관련 단체에서 업무 교육을 받고 있다.

지난 23일 낯선 외모의 이주민 일행이 가게 앞을 지나가자 동상동의 한 상인은 "이주민들이 한국 사람들 일자리를 다 뺏는다. 우리나라 돈이 다 외국으로 나간다. 이주민들이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부원동에서 외식업을 하고 있는 전 모(62) 씨도 "음식점에서 중국인이나 조선족을 고용해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자식을 다 키운 뒤 돈을 벌려고 나선 한국 주부들이 음식점에서 일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주민들이 늘면서 한국인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줄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이주민들은 내국인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청년들은 일자리 부족 현상을 겪고 있지만, 거꾸로 제조업·건설업 등 산업 현장에서는 인력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외식업의 경우 이주민 여성들 때문에 일자리 경쟁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대부분 산업의 경우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사람이 없어서 못 쓴다는 게 경제계, 이주민 관련단체의 설명이다. 특히 기업체 관계자들은 "이주민들이 없으면 공장 가동 자체가 힘들다"고 말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외국인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의 외국인 취업자 85만 2천 명 중 기능원, 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가 전체의 42%, 단순노무 종사자가 29.2%로 나타났다. 이런 직종은 내국인들이 일하기 꺼려하는 이른바 '3D' 업종이다. 한 이주민 관련단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한다는 게 부끄러워서 일하려 들지 않는다. 그 자리를 외국인들이 대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민들의 임금이 싸기 때문에 내국인을 고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힘든 일자리 자체를 원하지 않는 내국인들이 많아서라는 의견도 많다. 김해외국인인력지원센터 관계자는 "추가·야간 수당을 포함한 이주민 임금은 평균 200만 원~250만 원선이다. 이주민들 중에는 300만 원이 넘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림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김 모(57) 씨는 "내국인이나 이주민이나 일하는 것도 같고 돈을 주는 것도 같다. 요즘은 외국인이라고 돈을 안 주거나 법적 수당보다 적게 주고 고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도 각 사업장들은 내국인을 우선 고용하도록 돼 있다. 이주민을 고용하고자 하는 사업장은 반드시 노동부로부터 고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각 사업장은 노동부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내국인을 고용하려는 노력을 1개월 이상 벌인 뒤 내국인이 1년 이상 채용이 안됐을 경우에 인력부족확인서를 발급받는다. 이후 사업장에서 원하는 이주민 구인요건을 기재한 뒤 정부·공공기관을 통해 이주민을 고용할 수 있다.

김 씨는 "요즘 학생들은 다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 졸업자들 중에 누가 3D 업종에 종사하려 하겠나. 인터넷 등 여러 방법을 통해 구인 광고를 냈지만 공장에서 일을 하겠다는 한국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면서 "누군가는 해야 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이주민들"이라고 덧붙였다.

이주민들도 같은 말을 했다. 내국인들은 힘든 일을 안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은 살렘(38·파키스탄) 씨는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한국인들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이 꺼리는 야근이나 주말 근무도 이주민들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뺏는다는 생각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내국인들 사이에는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이에 대해 이주민 관련단체에서는 이주민과 내국인으로 구별하지 말고 김해 발전을 위해 서로 상생하는 관계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 박 모(45) 씨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때 독일 광산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 파견돼 외화를 벌어오지 않았나. 우리가 그랬듯이 이주민들도 현재 적재적소에서 활용되고 있다"며 "똑같이 외지에서 고생했던 시기가 있었던 만큼 이주민들을 편견 없이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