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진영 봉하마을에 바우라는 총각이 있었다. 바우는 키가 작고 얼굴이 못생겼지만 영리하고 부지런한데다 손재주가 좋았다. 바우는 부모 형제도 없이 혼자 살았는데 스무 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 들었다. 마을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 중매를 서려 했지만 바우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만 저었다.
 
바우는 몰래 마음에 담아둔 처자가 있었다. 처자는 봉하에서 개천 건너에 있는 오리방마을에 사는 연이였다. 오리방에 일하러 갔다가 새참을 이고 온 연이를 본 바우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열세 살이라고 했지만 자태며 말씨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이름 그대로 한 송이 연꽃이었다.
 
연이가 열여섯 살이 되면 색시로 삼기로 작정한 바우는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힘겹게 살아가는 연이를 돕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슬그머니 쌀가마니나 나뭇짐을 가져다 놓았고, 청년들을 모아 다 허물어져가는 초가에 갈대를 엮어 이엉을 얹어주었다. 옷감을 마련해주거나 손재주를 부려 절구나 방망이, 소쿠리 같은 것들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바우는 연이가 성숙해가는 것을 지켜보느라 제 나이 먹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연이의 마음은 달랐다. 바우의 보살핌이 고맙기는 했지만 바우 색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오리방에 이사 오기 전까지 연이는 즐비한 기와집과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넘쳐나던 서라벌에서 살았다. 서라벌에서 연이는 대륙국(中國), 왜(倭), 아라사 사람들과 그들이 가져온 갖가지 진기한 물건들을 보았다. 한밤중에 옷 보퉁이 하나만 달랑 들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리방에 와서 살게 되었지만 언젠가는 서라벌에서처럼 커다란 기와집에서 하인을 부리면서 살고 싶었다.
 
연이는 바우의 마음을 알아차리자 몹시 난감했다. 바우를 만날 때마다 되도록 쌀쌀맞게 대하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비쳤지만 바우의 마음은 바위처럼 움쩍도 하지 않았다.
 
"못 생기고 키 작은 게 흠은 아니지. 옛날엔 어떤 호사를 부리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사람이란 분수를 알아야 하는 법이라고."
 
바우와 연이가 밀고 당기는 사이가 된 것을 알아차린 봉하 사람들은 은근히 바우 편을 들었다. 그러나 오리방 사람들은 못 생기고 가진 것도 없는 바우가 인물 좋고 자태 좋은데다 글도 잘 하고 솜씨가 빼어난 연이를 탐내다니, 언감생심이라고 수군거렸다.

▲ 그림 = 범지 박정식
오리방마을 연이 맘에 둔 봉하 총각 바우
야속하게 떠난 여인 그리워하며 미쳐가
자왕골 자암 스님이 동굴에 가두고 막아

"돌문을 열고 연이에게 가려고 합니다"
"마음의 정과 망치로 열어야 할 것이야"
불상 새긴 뒤 앙상한 모습으로 세상 떠나
 
 

처지가 곤궁하기는 해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색시감이 바로 연이라는 오리방 사람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연이에 대한 소문은 멀리 김해와 밀양에까지 퍼져 있었다. 누구 집 아들이 연이를 찍어 두었다는 둥, 누구 집 아들이 은밀히 매파를 보냈다는 둥 소문도 심심찮게 나돌았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바우는 몹시 괴로웠다. 가을에 왔다가 봄이 되면 북쪽으로 날아가 버리는 오리처럼 연이가 언제 남의 색시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남몰래 속을 태우던 바우는 마을 뒤 자왕골에 있는 절로 올라갔다. 자왕골에는 옛날 왕의 아들이 지은 자암(子庵)이라는 절이 있었다. 바우는 연이를 색시로 맞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처 앞에 엎드려 간절히 빌었다. 밥도 먹지 않고 지극정성 빌기를 며칠, 자암의 주지스님이 바우에게 사연을 물었다. 바우는 연이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인연이란 전생의 업이 수없이 얽히고 얽혀 맺어지는 것이다. 연이라는 처자와 그대의 이번 생에서의 인연은 곧 끝이 날 것이다."
 
바우는 업이니 인연이니 하면서 몇 년 동안 공을 들인 연이를 잃게 될 거라는 스님이 야속하기만 했다.

"연이를 색시로 맞을 방도를 알려주십시오. 저는 못 생기고 키도 작고 가진 것도 없지만 연이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습니다."

간절한 바우의 간청에도 스님은 고개만 저었다.

"쯧쯧. 제 처지를 알면서 어찌 아닌 인연을 탐낸단 말인고. 천 년이나 지난 뒤면 혹 모를까."

바우는 스님을 원망하며 자암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곧장 연이의 집으로 달려갔다. 바우는 연이 아버지에게 당장 혼례를 치르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동안 우리 부녀 살펴준 은공을 생각하면 나도 그러고 싶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네."

연이 아버지가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대륙국 상인들이 타고 온 배가 강창포구까지 들어온 것이 한 달 전이라고 했다. 연이는 그들에게 스스로 몸을 팔아 많은 돈을 받고, 그 돈을 아버지에게 남기고 어제 저녁 배를 타고 떠나버렸다는 것이었다.

바우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시는 연이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바우는 연이를 부르며 울퉁불퉁한 바위가 즐비한 자왕골을 내달렸다. 봉화산(자암산) 꼭대기 사자바위까지 한달음에 올랐다. 사자바위에서 멀리 들판과 산 너머를 바라보았다. 바우는 연이를 부르며 목을 놓아 울었다. 바우의 울음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아래쪽 부엉이바위에서는 밤새도록 부엉이들이 떼를 지어 울었다.

그렇게 사흘을 울다가 바우는 사자바위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바우의 몸은 사자바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바우가 막 떨어지려는 찰나에 자암의 주지스님이 지팡이로 바우의 목덜미를 꿰어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바우는 스님을 원망하며 다시 뛰어내리려고 했다. 연이가 없는 세상은 살고 싶지 않았다.

스님은 혀를 끌끌 차면서 바우를 자암으로 데리고 갔다. 바우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러나 밤낮으로 염불을 외고 기도를 해도 연이를 향한 그리움은 줄어들지 않았다. 꿈속이라도 좋으니 딱 한 번만이라도 연이를 보고 싶었다.

바우는 날이면 날마다 사자바위와 부엉이바위를 오가며 연이를 생각했다. 오리방까지 달려가서 연이가 없는 집을 서성이기도 했고, 논두렁과 밭두렁을 헤매고 다니며 연이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들판의 모든 것, 숲의 모든 것이 연이를 생각나게 했다. 바우는 점점 야위어갔다. 그렇잖아도 못 생긴 얼굴은 뼈만 앙상해서 더욱 보기 흉해졌다. 사람들을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연이 생각뿐이었다. 사람들은 바우가 연이 때문에 미쳐버렸다고 혀를 찼다.

보다 못한 스님은 바우를 부엉이바위 옆에 있는 동굴에 집어넣고 입구를 큰 돌로 막아버렸다.

"닿지 않는 인연을 억지로 맺으려 하면 또 업을 쌓게 되는 법이다. 거기서 옴짝 말고 돌문을 깨고 나올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해라."

동굴에 갇힌 바우는 짐승처럼 동굴 벽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바우는 스님이 넣어주는 음식과 물을 먹지 않았다. 며칠을 돌처럼 앉아 있던 바우는 마침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혼미한 가운데서 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방에 시중이 늘어서 있고, 아름다운 음악과 향기가 넘쳐나는 곳에 연이가 있었다. 호화로운 비단으로 몸을 감싼 연이를 보자 바우는 너무나 기뻤다.

"연이야! 연이야!"

바우는 연이를 부르며 달려갔다. 그러나 제 목소리에 놀라 눈을 뜨고 보니 사방이 꽉 막힌 동굴이었다. 너무도 허망한 꿈이었다. 그렇지만 꿈속에서 연이를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바우에게는 희망이 생겼다. 바우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이 꿈길을 열었고, 꿈길을 따라 연이에게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꿈길 밖에 길이 없다면 꿈길로 가리라."

바우는 마침 음식을 가져온 스님에게 정과 망치를 부탁했다.

"무엇에 쓰려고 그러느냐?"

"저 돌문을 열고 연이에게 가려고 합니다."

"저 돌문은 정과 망치로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정과 마음의 망치로 열어야 할 것이니라."

스님은 쯧쯧 혀를 차더니 정과 망치를 가져다주었다.

"그 돌에 부처를 새기며 마음을 다잡아 보도록 해라."

그날부터 바우는 돌에 부처를 새기기 시작했다. 스님은 연이를 생각하는 번뇌에서 벗어나라고 했지만 바우는 연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부처를 새겼다. 쩡쩡 돌 깨는 소리가 동굴을 넘어 부엉이바위와 자왕골을 흔들었다. 바우는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연이에게 가는 길을 열어주십시오."

바우는 날마다 돌을 쪼기만 할 뿐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손이 터지고 발이 갈라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낮에는 돌을 쪼고 밤이 되면 잠을 청했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연이를 볼 수 있었다. 연이는 꿈밖에서처럼 냉담했다. 바우를 보면 멀리 달아나려고만 했고 때때로 소리도 질렀다. 그러나 바우는 꿈에서나마 연이를 볼 수 있게 해 준 부처님께 감사했다. 그래서 눈을 뜨면 다시 지극한 마음으로 돌을 쪼아 불상을 새겼다.

한편 연이는 우여곡절을 거쳐 대륙국 황실의 비(妃)가 되어 있었다. 황제는 젊었고 부족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멀리 봉하마을 바우가 꿈속을 찾아들기 시작했다. 못생기고 키가 작은데다 바싹 여윈 모습으로 나타난 바우에게 연이는 미안했지만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잠이 들기만 하면 바우가 나타나 함께 지내기를 원하니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바우를 만나지 않으려면 잠을 자지 않는 도리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밤이 되면 어김없이 잠이 쏟아졌다. 연이는 밤마다 바우에게 시달렸다. 달래도 보고 화도 내 보았지만 바우는 듣지 않았다. 마침내 연이는 병이 들고 말았다. 병이 깊어지자 연이는 황제에게 바우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황제는 멀리 바다 건너 김해 봉하마을로 은밀히 사람을 보냈다. 황제의 사신을 맞은 자암의 스님은 바우의 안타까운 사연을 말해주었다. 사신은 부엉이바위 옆 동굴로 가서 동굴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을 굴러 떨어뜨렸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바우가 정과 망치를 든 채로 숨이 끊어져 있었다. 동굴 앞에 굴러떨어진 돌에는 바우가 새긴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
 
황제의 사신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바우의 애달픈 이야기를 전했다. 황제는 바우를 가엾게 여기고 연이로 하여금 제사를 잘 지내주도록 했다. 그러자 연이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이후 바우는 연이의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굴러떨어진 듯한 바위에 새겨져 있는 봉화산 마애불에 얽힌 이 설화는 당나라 황후의 꿈속을 드나들던 신라 청년의 이야기로 채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봉화산 마애불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불이며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고 밝혀져 있다. 그렇다면 이 설화는 북송(北宋)시대 황제와 고려 청년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설화에서 역사적 연대의 전후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김해뉴스
조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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