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서관에는 어린 왕자가 살고 있습니다."
 
외동 뜨란채아파트 관리동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그림책 삽화가 여러 장 붙어 있다. 무슨 그림책일까 살펴 보다 보니 어느새 뜨란채작은도서관이다. 도서관 실내를 둘러보면 어디에서나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다. 어린 왕자는 어린이들이 편하게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지켜보며 웃고 있다. 어린 왕자는 바오밥나무 옆에 서 있다. 바오밥나무 둥치는 동굴이다. 동굴 안에는 조용히 책에 빠져 있는 어린이들이 있다. 바오밥나무 그림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이번에는 책으로 가득한 다락방이다. 다락방에서는 도서관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뜨란채도서관은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소혹성 B612호다.

▲ 뜨란채작은도서관 과학실험 수업을 마친 어린이들이 어린 왕자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동화 '어린 왕자' 모티브 실내공간 꾸며
2009년 7월 개관 후 동네 사랑방 꾸준
방학땐 청소년 재능기부 프로그램 운영


뜨란채도서관은 2009년 7월 10일 개관했다. 당시 입주자대표회와 이외식 전 회장이 도서관 개관을 위해 적극 나섰다. 도서관은 처음부터 입주민과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해 독서실로 사용되던 공간에 들어섰다. 입주자대표회가 나서서 그 공간을 작은도서관으로 바꿔 개관했다. 입주민들은 모두 자녀들이 책 읽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쓰고 있다. 이희조 현 회장도 도서관 운영을 성심껏 후원한다. 조경래 전 관리소장, 안동환 현 관리소장도 도서관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입주자대표회는 도서관의 전기세를 모두 지원하고 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개관한 도서관이니 만큼 실내공사를 할 때도 신경을 많이 썼다. 당시 인테리어를 맡은 이민 씨는 경남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후배들과 함께 의견을 모아 도서관을 꾸몄다. 이 씨는 "어린이들이 많이 오는 도서관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후배들과 밤샘작업을 하며 토론을 많이 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하던 후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로 개념을 잡고 꽃과 나무 그림을 도서관 곳곳에 그려 넣었다. 자연친화적, 예술적 공간 속에서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내외동에서 실내장식업을 그는 뜨란채도서관 외에도 김해의 작은도서관 4곳의 작업을 맡기도 했다.
 
뜨란채도서관에는 운영위원 11명이 있다. 이경희 관장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올해부터 관장을 맡았다. 그에 앞서 관장을 맡았던 오시연 전 관장은 운영위원으로 계속 활동한다. 그리고 정명희 총무와 신양자, 구경녀, 김애경, 이금화, 오우임, 윤미라, 박선영, 피영희 운영위원이 도서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관장은 "모든 운영위원들이 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운영위원들의 남편들도 두 팔 걷고 나서 돕는다고 한다.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도서관의 든든한 우군이다.
 
도서관이 개관할 때부터 일해 온 김은숙 사서는 문헌정보학과 출신이다. 그는 "도서관에서 아파트의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보았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아이들도 도서관에 계속 온다"며 "다른 도시들의 경우 작은도서관 수는 많을지 몰라도 김해만큼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 김해의 작은도서관은 자체적으로 다양한 문화·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도서관에서는 방학 때마다 과학, 미술 등 여러 주제로 청소년 재능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도서관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어린 동생들을 위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도서관을 방문한 날은 마침 청소년 재능기부로 과학실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 명 두 명 도서관에 들어와 책을 읽던 초등학생들은 "얘들아 수업하자"는 김영섭·방재휘(김해서중2) 군의 말에 벌떡 일어나 토론방으로 들어갔다. 이날 수업은 김 군이 이끌고 방 군은 보조를 맡았다. 다른 날 방 군이 수업을 할 때는 김 군이 보조를 맡는다. 방 군의 어머니 이현진 씨는 토론방 한쪽에서 수업 재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날 수업 주제는 '정전기'. 김 군은 "정전기를 통해 일상생활 속의 과학현상을 알아보는 내용이다. 과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알려주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업"이라고 설명했다. 봉명초등학교 3학년인 안세민, 김지원 어린이는 "풍선으로 정전기를 만들었다. 풍선을 대니까 머리카락이 붕 떴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박찬민(9) 군은 "한자 만화가 30권 정도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읽어서 지금 거의 다 읽었다. 도서관에 하루에 3번이나 온다"고 자랑했다. 김소윤(9) 양은 "아빠가 내준 숙제를 하고 있다. 찬민이랑 다른 아이들을 만나 놀 수 있고,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고, 수업도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박시은(10) 양은 "작은도서관이 진짜 좋다. 어제도 오고 그제도 왔다. 매일 엄마한테 도서관에 가면 안 되는지 물어볼 정도이다. 지금은 방학이라서 시간이 날 때마다 들른다. 친구들이랑 놀기도 하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방학숙제도 작은도서관에 와서 다 했다. 특히 독서 감상문 쓰기 숙제는 도서관이 있어 하기 쉬웠다"며 도서관 자랑을 이어갔다.
 
한참 도서관 이야기를 하던 박 양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집이 이사를 가게 됐다. 지금보다 큰 집이기는 하지만, 엄마 말로는 거기에는 작은도서관이 없다고 한다. 너무 아쉽다." 작은도서관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환경인지 박 양은 잘 알고 있었다. 뜨란채도서관은 그에게 어린 왕자의 소혹성 B612호처럼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