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을 통칭 '작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유독 시를 쓰는 사람은 '시인'이라고 한다.
사람 인(人)이라는 글자가 붙는 것이다. 왜 그럴까. 눈에 보이는 사물과 현상을 넘어 그 본질을 찾아내는 일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시인은 인간의 회로애락을 담아내는 언어를 길어내고 빚어내는 사람들이다. 김해에서 활동하는 시동인 '포엠하우스'를
<김해뉴스> '공간'에 초대했다. 포엠하우스는 사무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 모임 장소도 없다. 그들의 공간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시' 그 자체가 공간이며, 시를 매개로 모이는 회원들의 마음이 또한 공간이며,
그들이 한결같이 사랑하는 김해의 모든 것이 공간이다. 포엠 동인들의 시선은 늘 세상을 향해 열려 있고, 그 중심에는 김해가 있다.
그래서 그들이 엮어낸 시의 씨줄과 날줄에는 김해의 자연과 사람들이 박혀 있다. 그것이 그들을 이 지면에 초대한 까닭이다.

2000년 겨울 동인 6명 의기투합 창립식
사무실이나 공식 모임장소 따로 없어도
김해의 모든 공간과 자연과 사람들이
세상과의 소통과 본질 향한 대화의 통로
"순수한 시 정신과 김해의 모든 것 닿아"


'아파트 옆 가로수 밑에/ 할머니 대여섯분 여생을 팔고 있다/ 상추 파 감자 등 텃밭에서 키운 푸성귀/ 다 팔아 봤자 푼돈 몇 닢인데/ 뙤약볕에 주름진 하루를 펴놓고 있다/ "아이고 또 왔능교"/ 웃음 얹어 파는 단골도 있고/ "할머니 내일은 풋고추 좀 주세요"/ 미리 주문해 즐거움 안기는 고객도 있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바글거리는 새벽장이나/ 닷새 걸러 열리는 오일장도 있지만, 집 가까이 오후 느긋하게 열리는 골목장/ 반값에 반찬 장만하는 재미도 쏠쏠한데다/ 인정까지 봉지에 가득 담아 주니/ 비 안 오면 일 년 내내 장이 선다' 동인시집 12집 <여행>에 수록된 이병관 동인의 시 '매일 서는 장' 전문이다. 어느 아파트의 소소한 일상풍경을 담은 시다. '김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지만, 김해 사람들은 이 시에서 부원동 새벽시장의 기억, 원도심이 종일 북적이는 김해오일장까지 찾아내 마음으로 읽는다.

2001년 11월 10일, 포엠하우스 창립 1주년 기념 낭송회 '시가 있는 가을, 그리고 강'이 열렸다. 그날 행사에 참석한 포엠하우스 동인들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작은 인쇄물을 하나씩 받았다. A4용지 크기의 노란색 종이에는 앞면과 뒷면을 각각 3등분해 경과 설명, 행사 차례, 창립 선언문, 모시는 글 등이 실려 있었다. 14년 전에 만들어진 이 작은 인쇄물에는 포엠하우스의 지난 역사의 한 장면이 차분하게 담겨 있었다.

포엠하우스의 창립선언문은 이러하다. '사람은 문화를 향유함에 따라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 이곳 김해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지닌 문화의 도시이다. 이에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포엠하우스는 시를 통하여 인간의 잠자는 영혼을 일깨우고 가야인의 피 속에 깃들어 있는 가야의 얼을 되살려 시민문화의 창달을 위한 등불이 되고자 하는 창립정신을 선언한다.'

▲ 포엠하우스 동인들이 음식점에 모여 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시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모인 동인들은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포엠하우스 동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인쇄물을 보았을 때 '이걸 여태 이렇게 고이 간직하고 있다니' 하는 적잖은 감동이 밀려왔다. 그 자리에 모인 동인들 모두의 눈길이 일제히 인쇄물로 쏠렸다. 작은 인쇄물 하나는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주기에 충분했다.

박종대 동인은 "김해중학교로 발령 받아 왔을 때 거제의 정행두 시인도 김해중학교로 왔다. 당시 김해에는 시인 동인모임이나 시 전문지가 없었다. 정 시인과 동인모임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종복, 안다혜, 송규호 시인이 합류했다. 다섯 시인이 의기투합해 시동인 하나 해보자고 마음을 보았다. 정 시인이 '포엠하우스'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포엠하우스의 태동 과정을 설명했다.

초대회장은 안종복 시인이 맡았다. 창립식 직전에 강순옥 씨가 가입해 여섯 명의 동인으로 출발한 포엠하우스는 2000년 11월 15일 은하사 다원에서 창립식을 가졌다. 다원의 벽면에는 회원들의 시를 인쇄한 A4 크기의 한지도 나란히 붙였다. 그럴듯한 시화액자 하나 걸리지 않았지만 창립식은 소박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렇게 출발한 포엠하우스는 이병관(당시 칠암도서관 관장) 시인을 만났다. 이병관은 이후 많은 시인들을 포섭(?)했다. 그의 인품에 먼저 감동한 시인들이 잇따라 가입했다. 동인들은 시를 쓰는 한편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야유회나 전국 각 지역의 문학기행도 매년 다녀왔다.

2001년 9월 신어산 자락에서는 시 낭송회 '신어산의 가을 그리고 한 편의 시'를 개최했다. 김해에 그럴듯한 문학행사가 없었던 당시에 시낭송회는 큰 화제를 모았다. 동인들은 물론이고 당시 이병관이 이끌고 있던 '샘시동인'과 시민들이 찾아와 가을 신어산에서 시의 향기에 흠뻑 취했다. 이후에도 포엠하우스가 시 낭송회를 열거나 동인지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 인근 도시의 시인들과 시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참석했다. 행사를 할 때면 모든 동인들이 직접 의자를 날라 객석을 정리하고 무대도 직접 꾸몄다. 그런 행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김해에서는 놀랍고 신기하고 재미난 일이었다. 가락의 중사도 찻집 '강변마당', 생림면의 무척산관광예술원, 상동면의 '남새밭' 등에서 행사를 할 때면 그 집을 찾은 손님들도 구경을 하곤 했다.

포엠하우스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는 전국의 여러 시인들이 참여하면서 '천포문학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던 적도 있다. 모임이 커지면서 동인들이 활동하는 지역이 방대해지고 바빠지다 보니 창립 동인들이 한두 명씩 빠졌다. 그래서 다시 김해를 중심으로 하는 포엠하우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현재 포엠하우스 회장을 맡고 있는 이병관은 "포엠 동인시집 준비호로 2001년에 <그릇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내가 칠암도서관 관장으로 재직했고, 김미경 동인이 김해시 공무원이어서 시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릇 이야기>는 시청 인쇄실에서 찍었다. 순수하게 시를 좋아하는 마음을 담은 동인지였다. 그런 열정으로 초창기 시절에는 습작, 토론, 비평 모임을 많이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포엠은 순수한 시 정신으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 김해의 모든 것이 포엠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포엠 창립때부터 8년간 총무를 맡았던 박종대 동인은 "포엠하우스와 관련한 아주 작은 인쇄물에서 방명록까지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다가 후임총무였던 김진대 동인에게 전달해주던 기억이 난다. 모임 날짜만 정해져도 기분이 좋았다. 동인들은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직업도 다르지만, 시는 우리 생활의 활력소이다. 내가 김해에 뿌리내리고 살게 된, 김해에 정붙이게 된 계기가 포엠하우스"라며 웃었다.

우영옥 동인은 "포엠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와 포엠은 생활의 중심이 됐다. 동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삶을 통해 시를 더 잘 알게 됐다. 동인들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동인들과 시를 뿌리치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시인으로 이름이 나는 것보다 동인들과 함께 시를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 출신으로 김해에 연고가 없었던 김진대 동인은  자신이 김해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데에는 포엠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그는 "동인 중에서 제일 막내이다. 다른 동인들은 나에게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같은 존재들"이라고 고마워했다.

이복희 동인은 "2000년 초반 김해예술제에서 김해문협과 포엠의 시화전이 나란히 열렸다. 그때 안다혜 시인의 권유로 포엠에 가입했다. 포엠이 있었기에 시를 계속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미희 동인은 "전업주부로 혼자서 글을 써왔다. <문학 21>로 등단해 김해문협에 먼저 가입하고, 이병관 동인 소개로 포엠에 가입했다. 외톨이로 시를 써오다가 동인 활동을 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 포엠에서는 1년에 10편씩 시를 발표해야 한다. 나태해질 수가 없다. 나의 시 창작에서 포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유행두 동인은 "포엠에서 시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들, 열정이 가득한 동인들을 만났다. 시는 순간적인 포착이 중요한데 영감이 잘 찾아와 주지 않더라. 포엠과 함께 하며 시인으로서 안에 가지고 있었던 시, 쓰고 싶었던 시를 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정보암 동인은 "동인이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동인들이 좋아서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엠의 편집을 맡고 있는 양민주 동인은 "동인들도 좋고, 그들과 함께 기울이는 술잔도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2000년에 시작한 포엠은 그동안 김해의 시 문단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지금까지 발간한 동인시집이 말해주듯이 포엠 동인들의 가슴에는 김해의 자연과 사람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동인들의 인터뷰에서 공통된 말은 하나였다. "포엠하우스는 우리가 시인으로서 김해에 뿌리내리고 살게 한 김해문학의 시원이다." 미처 만나지 못한 동인들도 아마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포엠하우스 그 자체가 시"라고. 

≫ 포엠하우스가 펴낸 시집
<그릇 이야기>(준비호·2001), <시가 있는 가을 그리고 강>(2002), <하늘포구>(천포문학회 창간호·2003), <팽나무 혼자 소리하다>(2004), <그 숲 속에 꿈이 있었네>(천포문학회 2집·2006), <꼬마새 붉은머리오목눈이>(천포문학회 3집·2007), <세상 속에 갇히다>(2008), <그러게 말씀입니다>(2009), <불치병>(2010), <몌별>(2011), <하루가 지나면 더 가까워지는>(2012),<웃음소리>(2013), <여행>(2014).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