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살림살이 중에 '함지'가 있다. 함지는 쓰임새를 딱히 정해두지 않고, 여러 가지 일에 두루 사용했다. 곡물이나 음식을 담아 두기도 하고, 식구가 많은 집에서는 여름에 함지에 밥을 푼 다음에 밥그릇에 담기도 한다. 떡가루를 버무리거나 반죽할 때도 쓰고, 김장소나 깍두기를 버무릴 때도 쓰고, 논밭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참을 나를 때도 사용했다. 쓰임새가 다양했기에 집집마다 다양한 크기의 함지를 만들어두고 사용했다. 또 무겁고 단단하게 만들어둔 함지는 한 집에서 대를 물리면서 사용했다. 전통살림살이인 함지를 주제로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 태호상(43) 씨를 만났다. 


어머니의 삶과 가족사랑 담겨 있는 함지
고향에 대한 향수와 예술적 세계 키워드

가상과 실제 이미지에 대한 물음 바탕
입체와 공간의 문제 다루는 작업 천착
수채화 색감과 서양화 질감의 작품활동


태호상은 진영의 아파트에서 매일 화실로 출근한다. 화실은 진영과 맞붙어있는 창원시 대산면 가술길 1번길 16에 있다. 학원으로 사용하던 곳을 화실로 꾸몄기에 작품을 진열한 방, 인두와 다리미 등 그의 고향집에서 쓰던 옛 물건들을 모아둔 방, 그림을 그리는 방 등이 따로 있다. 태호상은 "화실을 옮긴지 얼마 안 돼 아직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아직 비어있는 방들까지 다 정리하고 나면 전용 갤러리를 하나 만들어도 될 것 같았다.

그는 경남 의령군 화정면 상이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누나를 일곱 두고서야 제가 태어났죠. 아들 하나로는 불안해서 혹시나 기대를 하면서 동생을 낳았는데 다행히 아들이었대요." 애지중지 귀여움을 받았겠다고 했더니 그가 겸연쩍게 웃었다. "이 누나 저 누나 등으로 업혀서, 바닥에 발 한번 안 디디고 자랐을 정도로 사랑을 듬뿍 받았지요. 원기소도 나만 먹고…. 제 고향은 그야말로 '완벽한 시골'이었어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검정고무신을 신었고, 마산으로 이사를 와서야 아스팔트길을 처음 봤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미술시간에 태극기 그림을 그렸는데, 선생님이 '그림 한번 그려보자'며 지도를 해주셨어요. 예쁜 미술선생님이셨는데, 그 선생님을 따라 군 대회, 도 대회에도 나가곤 했지요. 수업이 끝난 후 남아서 그림을 그리다가 지치면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기도 했어요. 그때 담요를 덮어주시던 선생님의 손길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시절 그림을 열심히 그렸어요."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시골에만 있으면 안 되겠다"며 마산으로 이사를 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방학 때 처음으로 미술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고등학생 형과 누나들이 다니던 작은 화실 같은 학원이었어요. 제 또래도 몇 있었구요. 다함께 그림을 그리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예고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부모님 반대로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했어요."

▲ 전통 살림살이인 함지를 주제로 입체적인 수채화를 그리는 태호상 화가가 그의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병찬 기자 kbc@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가던 무렵, 그는 다시 한 번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씀드렸으나 또 반대에 부딪혔다. "저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어요. 10여일 정도 강력하게 반발했죠. 부모님께서 '그럼 석 달 정도만 학원에 다녀봐라, 원장 선생님이 소질이 없다고 하면 그만둔다는 조건이다'라며 학원으로 보내줬어요. 원장님이 참 좋은 분이셨어요. 어머님과 의논을 하신 후 집안형편까지 생각해서 학원비도 반만 받으셨어요. 이제야 말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보자 싶었지요. 그런데 제가 워낙 놀기를 좋아해서 가끔 농땡이도 치곤했어요. 그랬더니 석 달이 지난 후, 원장님께서 '소질이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말았지 뭡니까.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이대로 끝내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들었어요. 한 달만 더 시간을 달라고 싹싹 빌어서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한 달 동안 결석 한 번 안 하고 열심히 다니면서 그림에 열중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 원장님은 이번에는 극찬을 하셨어요. 눈물을 펑펑 쏟았지요."

그러나 노는 걸 좋아했던 그는 고 3때 또 잠깐 한눈을 팔았고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군대도 다녀오고 4수 끝에 대학에 입학했다. "힘들었던 시절이었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요. 지금까지의 제 인생 중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석 달 조건으로 처음 저를 받아주셨던 전병수 원장님께서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7년 여 지도해주셨어요. 지금도 수채화가로 활동하고 계신데, 제게는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자주 찾아뵙고 있어요. 아무튼 4수, 그때의 힘들었던 경험이 이후 제 인생에 가장 큰 밑거름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시골의 풍경과 낡고 오래된 사물에 매료됐다. "우리 전통, 시골의 삶, 할머니들의 얼굴표정,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유학도 꿈꿨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28세 때, 부모님은 이미 칠순을 넘기셨죠. 연로한 부모님을 두고 유학을 떠나기가 두려워서 포기했어요." 졸업 후에 그는 색채와 형태를 자신 있게 다룰 수 있을 때까지 기본기에 충실하며 평면작업을 했고, 5년쯤 지난 후에는 평면에 가까운 콜라주 작업을 시도했다. "2007년부터 가상과 실제 이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입체와 공간의 문제를 다루는 콜라주 작업을 시도했어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평면작업과 입체작업을 병행하는 작업을 했어요. 2013년부터 평면의 한계를 절감하고, 이제까지의 구속을 과감히 벗어던졌지요."

▲ 함지와 해바라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
그는 함지를 작품 속으로 가져왔다. "10여 년 전 고향 집에서 우연히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함지를 보았어요. 그 함지를 보는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요. 함지에서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삶이 느껴지더군요. 어머니들은 자식의 입신양명과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앙을 저마다 마음에 간직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어머니는 곧 여사제입니다. 함지에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 긴 세월 동안 새겨집니다. 모성의 고향인거지요, 그리고 함지를 보면서 자란 저에게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는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그의 수채화는 색감이 풍부하고, 서양화 같은 질감을 느끼게 하며 입체적이다. 그리고 그림의 바탕에는 늘 함지가 함께 한다. 작업은 함지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 실제 합판을 패널 위에 오려붙이면서 시작된다. 오일 컬러로 명암을 처리하면 함지를 그대로 패널에 옮겨놓은 것 같다. 표현할 사물을 한지로 콜라주 작업을 해 양감을 처리하고, 다시 수채화 전문지로 입체감을 준다. 그 위에 수채물감을 칠한다. 필요한 부분에는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그의 수채화가 다른 작가의 작품과 다른 특징은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함지 위에는 마른 해바라기가 그려지기도 하고, 휴대폰 고리와 자동차, 정화수도 그려진다. "옛것을 상징하는 함지는 오랜 세월 우리 선조들이 믿었던 토속신앙을 상징합니다. 함지 이미지에 중첩된 사물들은 우리네 전통적인 금줄을 대신하는 이미지들이죠. 과거와 현재의 소통이라는 뜻도 있고, 여러 가지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소비향락과 과도한 욕구충족을 경계하는 상징적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그가 함지를 주제로 작품을 하는 것은 함지가 점점 잊혀져가는 옛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결함, 그리움까지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포용력을 함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작품을 설명하던 그의 앞에는 내내 함지가 놓여 있었다. 그 함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사용했던 함지입니다.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했지요. 저한테 온 지는 10년쯤 됐습니다. 작업실 옮길 때 가장 먼저 들고 나오고, 가장 먼저 제 자리에 놓아두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이 함지가 얼마나 오래됐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런 함지가 제 작품의 중심에 있습니다." 

≫태호상
한국미술협회 회원, 경남수채화협회 회원, 경남전업작가협회 회원. 경남청년미술상 수상, 한국수채화공모전 특별상 수상 및 입선 4회 등 수상 다수. 성산미술대전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경남여성미술대전운영위원, 개천미술대전심사위원 역임. 마산미술청년작가회 회장·마산미술협회 서양화 분과위원장 역임. 수채화 개인전 7회, 부스 개인전 2회, 초대 및 단체전 다수.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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