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안전기준 웃도는 측정치 온 종일
최고 79데시벨 기록해 귀 찢어지는 소음
비행기 이·착륙 때 옆 사람 말도 안들려
"우린 자포자기했지만 밀양 그건 아니죠"


"쿠르릉!" 비행기 한 대가 불암동 주택가의 하늘 위를 지나갔다. 엄청난 소음에 고개가 저절로 위로 젖혀졌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주민들은 아랑곳 않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가 어리둥절해 하자 한 주민은 "10년 넘게 이 소리를 듣다보니 다들 이골이 났다"고 말했다. 비행기의 굉음이 이젠 익숙한 일상이 됐다는 이야기였다.

"동남권 신공항이 밀양에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주민들은 하나같이 반대 목소리를 냈다. 자신들이 지난 10년 간 겪어 온 고통을 김해의 다른 주민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김해뉴스>는 비행기 소음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을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소음측정기를 들고 불암동 일대를 둘러봤다. 이 자리에는 '김해공항소음대책주민협의회' 김기을 김해위원장이 동행했다. 그는 "주민들은 이제 소음에 익숙해져 있고 포기 상태이기 때문에 더이상 기자들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남권 신공항이 밀양에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본 뒤 다들 '이건 아니다'고 하더라. 나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도움이 될까 해서 왔다"고 말했다.

▲ 김해공항소음대책주민협의회 김기을 위원장이 불암동 분도마을회관에서 비행기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 소음측정기에 최고 79.6데시벨이라는 수치가 찍혀 있다.

김 위원장과 함께 분도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이 곳은 김해공항에서 직선거리로 약 5㎞ 정도 떨어진 곳이다. 마을회관 바로 옆 건물 옥상에는 비행기가 운항할 때 발생하는 소음을 측정할 수 있는 자동소음측정망이 설치돼 있었다.

항공기 소음 측정은 항공기가 이·착륙 할 때 발생하는 소음도에 운항 횟수, 시간대, 소음의 최대치 등을 합산해 종합평가한다. 소음 측정 단위도 데시벨(dB)이 아닌 웨클(WECPNL·가중 등가 감각 소음 수준)을 사용한다. 하지만 항공기 소음 측정 방식으로 측정하는 것이 어렵고, 일반 주민들이 느끼는 소음 정도를 알기 쉽게 나타내고자 일반 소음 측정기로 비행기 소음을 측정했다.

소음 때문인지 마을회관은 텅 비어 있었다.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분도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김 위원장은 이 곳에서는 비행기 때문에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마을은 이따금씩 들려오는 화물차 소리 외에는 조용한 편이었다. 그때 김해공항 쪽에서 비행기 한 대가 날아올랐다. 곧바로 비행기를 향해 소음측정기를 들이댔다. 70~75데시벨이었다.

비행기마다 항로가 조금씩 달랐다. 어떤 비행기는 머리 바로 위를 지나갔고, 어떤 비행기는 서쪽으로 치우쳐 회현동 쪽으로 날아갔다. 비행기가 뜨는 간격에도 차이가 있었다. 어떤 때는 비행기 한 대가 뜬 지 5분이 채 안 돼 다른 비행기가 떴고, 어떤 때는 15분이 지나도록 비행기가 뜨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3분마다 비행기가 뜨기도 하고 30분마다 뜨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소음을 측정했다. 1시간 동안 측정한 비행기 소음은 평균 74데시벨 정도였다. 가장 높게 측정된 것은 79데시벨이었다. 귀가 찢어질 듯 날카롭고 시끄러운 소음은 아니었지만, 높은 굉음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도 잘 안 들려 목소리를 높여야만 했다.

소음 피해는 봄, 여름이 되면 더 심해진다고 한다. 한국공항공사 부산지역본부에 따르면, 김해공항의 경우 봄·여름에는 남풍이 있어 항공기 이·착륙 방향이 바뀌면서 체감 소음이 높아질 수 있다. 4월에 특히 비행기 소음이 심하다고 한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소음이 90데시벨을 넘어서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평소 85데시벨 이상의 소음에 8시간 노출되거나 100데시벨 이상의 소음에 15분 이상 노출되면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85데시벨은 보통 교통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소음 수준에 해당한다. 항공기 소음에 대해 항공법에서는 95웨클 이상은 소음피해지역 제1종 구역, 90~95웨클은 제2종 구역, 75~90웨클은 제3종 구역으로 나누고 있다. 3종 구역은 다시 가 지구(85~90웨클), 나 지구(80~85웨클), 다 지구(75~80웨클)로 나눈다. 전국 항공기 소음피해지역은 대부분 제3종구역 다지구에 속하며 불암동도 마찬가지다.

피해지역 중에서는 소음의 강도가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장기간 소음에 노출된 마을 주민들의 피해가 크다. 비행기 소음 지역에 오래 살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다. 자연스레 목소리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커지는 것은 물론 소음 관련 질환 발병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이 곳 주민들은 여기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소음에 익숙한데, 건강 상태는 어떤지 모르겠다.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난청검사를 실시하려 했으나 비용 문제 때문에 무산된 적이 있다"고 전했다.

마을회관 주변에서 만난 40대 주민은 "집에 손님을 초대하면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사느냐'고 한다. 자식들이 어렸을 때부터 겪었을 스트레스나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신 모(40) 씨는 "사무실에 손님들이 찾아와 상담을 할 때 비행기가 뜨면 시끄러워서 서로 말을 못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비행기 소음 때문에 불암동을 떠난 사람들 많다고 설명했다.

밀양에 신공항이 들어서면 불암동과 같은 상황이 한림면과 시산리 등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국토교통부의 '2011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 자료집'과 부산발전연구원의 '2011년 밀양신공항 후보지 피해 학교 현황도'에 따르면, 현재 나온 계획서대로 밀양 신공항을 건설할 경우 비행기 소음에 따른 김해지역의 피해 규모는 최소 1천여 가구, 주민 2만 5천 명으로 추산된다. 한림면 일대가 75~85웨클, 생림면 생림초등학교가 70웨클 수준의 소음피해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이미 김해공항 때문에 불암동은 물론 회현동, 부원동, 활천동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 밀양에 신공항이 들어서면 한림면 진영읍까지 소음 피해를 받는다. 김해의 온 지역이 비행기 소음에 시달리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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