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년 건강보험 재정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 흑자가 4조 6천억 원에 이르며 누적 흑자는 약 13조 원 규모이다. 해마다 건강보험료가 인상돼 왔고 건강보험 지출도 증가 추세인 것을 감안하면, 건강보험 재정 흑자는 빠져나가는 돈보다 가입자로부터 걷는 수입이 그만큼 더 많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몇 가지 이유에 의한 건강보험 지출 감소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첫째, 2010년 이후 경기침체가 이어지며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실제 가계소득이 늘어도 의료 이용을 줄인다는 것이다. 둘째, 과거에 비해 무분별하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던 수요가 적정화되면서 의료 이용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셋째, 건강 검진율의 증가로 암 발생률이나 B형 간염 유병률이 줄면서 진료비 지출이 감소했다고 한다. 넷째, 음주율이나 흡연률이 떨어지는 등 국민의 건강행태가 과거와 비교해 개선됐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발표대로라면 첫 번째 이유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건강보험 재정 흑자의 또 다른 이유는 해마다 건강보험료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률(전체 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은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8년 62.6%, 2012년 62.5%, 2013년 62.5%이다. 건강보험 재정의 흑자에도 불구하고 보장률은 제자리 걸음이다. 다시 말해 국민 부담은 해마다 늘지만, 보건의료 서비스는 제대로 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62%였지만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74.9%보다 훨씬 낮았다. 입원진료 때의 경우 OECD 평균 보장률은 85.8%이지만 우리나라는 59.8%에 그쳤다. 외래 진료는 OECD 평균이 76.7%이지만 우리나라는 57.7%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여기서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먼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입원환자의 본인 부담금을 낮추거나(현행 20%에서 10%로 낮추는 데 연간 1조 5천억 원 정도 소요),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의료사각지대는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거나 고액의 의료비를 발생시키는 암, 심장병,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셋째, 병원 진료나 입원 때 의료비보다 더 많은 경제적 부담을 가져다주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를 건강보험 급여항목으로 전환해야 한다. 끝으로 연령에 따른 생애주기별 핵심 건강문제를 중심으로 필수의료에 대한 맞춤형 건강검진 및 의료보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또 현재 많은 논란을 빚고 있는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도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2014년 2월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은 대한민국 복지정책의 사각지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단독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월세 50만 원을 내며 살던 세 모녀는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직할 수 없었고, 어머니는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팔을 다쳤다. 큰 딸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공단은 월세 50만 원을 전세로 환산해 이들 가족에게 매월 5만 원의 건강보험료를 부과했다. 반면 서울 강남구에 아파트, 다른 지역에 토지를 보유한 사람은 직장에 다니는 부인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료 부과 기준은 공정성과 합리성 측면에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하우스 푸어'와 조기 퇴직자의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상태에서 급증하는 노인의료비는 국가 복지정책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비록 증세 논의와 연말정산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더라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 논의를 피해가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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