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 생원님이 도방에나 계시난지 팔도 도방을 찾아서 일원산, 이강경이, 삼푸주,
사마산, 오삼랑, 육물금, 칠남장, 팔부산을 구석구석이 찾아도 안기시기로,
행여 색주가에나 계신가 하여, 색주가로 쑥 들어가서 차분주가 하저재요, 월출동령
명월이 집과, 오동부판 거문고에 하고나니 탄금이 집과 주홍당사 별매듭에 차고 나니
금랑이 집과, 지재차산 운심이 사군불견 반월이 집을 구석구석이 댕기도 그게도
아니 기시기로, 헤나 본실에나 기시난지 본댁을 쑥 들어가니, 노샌님이 기십니더."
김해오광대 제3 양반과장에서 말뚝이가 양반을 은근히 비꼬는 장면의 대사이다.
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입말로 장단을 맞춰가며 읊어보면 절로 흥이 난다. 

김해오광대가 최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됐다. 김해오광대보존회는 수년째 매주 목요일 오후 7시가 되면 어김없이 김해문화원 지하 연습실에 모여 오광대 전 과장을 연습한다. 지난 12일 김해오광대의 연습장면을 지켜보았다.

연습시간이 되기 전에 도착해 있던 보존회 회원들은 농복을 갖춰 입었다. 연습실 한쪽에서는 최인규 총무가 연습 순서에 맞추어 탈이며, 소품을 미리 챙기느라 바빴다. 회원들이 개인 준비를 마치는가 싶더니 "한판 놀고 시작하자"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상쇠 박정석 회원이 꽹과리를 치기 시작했다. 연습실 안은 이내 풍물소리로 가득 찼다. 몸짓, 발놀림, 춤사위가 흥겨웠고 신이 났다. '우리는 김해오광대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목요일 오후 7시 김해문화원 연습실
어김없이 모여드는 보존회 회원들
대형 거울 앞 "흥겹게 한 판 놀아보세"

문화재 지정 후 "이제부턴 프로 정신"
탈 쓴 채 뛰고 날고 구르고 연기 구슬땀
"전통연희 발굴 노력 멈추지 않을 것"

풍물놀이가 벌어지는 동안 늦게 도착한 몇 명 회원이 준비를 서둘렀다. 회원들이 한 명씩 놀이판에 들어올 때마다 "얼쑤, 좋다!" 힘이 잔뜩 들어간 추임새가 연습실 천장을 뚫을 기세였다. 놀이판도 점점 커져 연습실 전체를 메웠다. 한동안 그렇게 신나게 놀고 나서 "몸 대충 풀었습니까?" "땀이 슬슬 나기 시작하네!" 말을 주고받는 품이 벌써 오광대 연습에 들어간 듯 장단이 척척 맞아 떨어졌다.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이명식 회장이 회원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자는 이야기를 했다. "김해오광대는 이제 문화재이다. 우리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이다. 이제는 연습 때도 공연복장을 갖추고 소품 하나까지, 공연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 이 회장의 말이 끝나자 회원들은 "얼씨구", "좋다!"로 화답했다.

오광대의 과장을 차례로 연습하는 동안 역할을 맡은 회원들만 연습을 하고, 다른 회원들은 쉬면서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연습하는 동안 상쇠가 이끄는 악사들은 계속 악을 쳤는데, 그 소리에 맞추어 저마다 춤사위를 연습했다. 한 사람도 그냥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전 회원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해 있었다. 연습실 벽면 하나를 모두 차지한 대형 거울 쪽이었다. 오광대 과장 연습을 하는 회원들에게는 거울이 곧 관객이었다. 자신의 몸짓이 관객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점검도 하는 것이었다. 뒤편에서 춤사위를 연습하는 회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연습을 지켜보다가 탈이 얼마나 무거운지 궁금해 마침 옆에 있는 할미 탈을 한번 써보았다. 탈에는 땀 냄새가 배어있었다. 탈을 쓸 때는 탈에 붙어있는 광목천을 당겨 머리 뒤로 묶는다. 그리고 탈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시 흰 끈으로 질끈 동여맨다. 탈을 써보니 시야가 너무 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걸음 내딛기도 조심스러웠다. 이 탈을 쓴 채로 뛰고 날고 구르고, 연기를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슬그머니 탈을 벗는데, 옆에서 허모영 사무국장이 "그 탈을 쓰고 한여름에 뛰면 어떨까요?"라며 빙그레 웃었다. 보나마마 땀범벅이 되겠지. 아니, 한여름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허 사무국장은 "실제로 공연을 한다 생각하고 이렇게 매주 연습을 하고 있다. 문화재 심사가 진행됐던 기간에는 거의 매일 밤늦도록 연습을 했다. 동작 하나, 대사 하나까지 완전히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 계속 연습을 거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인규 총무는 소품을 챙기고, 탈을 살펴보면서도 태평소를 불며 악사들의 연주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의 손도, 눈도, 귀도 바빴다. 전 과장을 연습하는 1시간 30여분 정도 악사들은 계속 풍물을 쳐야 한다. 추임새도 넣어주고, 과장마다 등장인물과 말도 주고받아야 하고, 관객들의 호응도 이끌어내야 한다. 한 과장이 끝나고 자신의 역할을 끝낸 회원들이 물러나면서 탈을 벗을 때 보니까 얼굴이 마치 땀으로 세수를 한 듯 했다.

제6 사자무과장에서 사자머리를 맡은 김동오 회원이 "이거 한 번 들어볼래요? 얼마나 무거운지"라며 말을 건넸다. 사자머리가 크다보니 탈도 무거웠고, 사자가죽도 무거웠다. 김동오 회원은 저걸 들고 사자꼬리를 맡은 이상철 회원과 호흡을 맞추어 사자 흉내를 내며 머리를 흔들고, 위엄에 찬 몸짓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바닥에 뒹굴고, 두 사람이 똑같이 다리를 흔들어야 한다.

상쇠 박정석 회원은 "약 1시간 30분 동안 풍물을 치는 악사들은 연희에 빠져 힘든 줄 모른다. 과장마다 분위기가 다르니 그때마다 장단이 달라진다. 악사들은 전체 분위기를 띄워줘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 거창에 외가가 있는데, 외할아버지가 상쇠로 이름을 날렸다. 외갓집 동네에서 외할아버지가 이끄는 풍물패가 지신밟기를 하는 걸 지켜보며 자랐다"며 "공연이 끝나고 나면 생각이 더 많아진다. 한 과장 넘어갈 때 어떤 장단으로 하면 더 신명이 날까 공부하고 연습도 많이 한다. 그런 다음 공연에 접목도 해본다. 문화재가 되었으니, 젊고 기운찬 사람들을 발굴하고 영입해 보존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활짝 웃었다.

영감과 종가양반 역의 예능보유자인 정용근 부회장은 "내 목소리가 영감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말뚝이 역할부터 시작했다. 젊은 시절 태권도를 한 몸으로 신나게 펄펄 뛰어다녔다. 사자머리도 오랫동안 맡았다. 문화재가 되고 나니 아내가 무척 좋아하더라"며 "김해는 인구가 53만에 이르렀으니 김해오광대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있다. 열심히 활동하면 전국 최고의 오광대가 될 수 있다. 회원 모두가 초심을 잃지 않고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인규 총무는 "태평소를 불면 공연에 활기가 넘친다. 풍물도 더 신바람 나고, 춤사위도 흥겨워진다. 음식에 맛을 더해주는 '깨소금'같은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시르미 탈을 출연하는 아이의 얼굴 크기에 맞추어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 "아이가 출연할 때가 있고. 인형으로 할 때가 있다. 오광대에서 무시르미 역할을 맡은 아이의 얼굴 크기에 맞는 탈을 다시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해 시민들이 가면을 써보기도 하고 놀이판에 들어와 함께 춤도 추며 공연에 직접 참가하는 장면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민속예술보존회 회장이며 김해오광대에서 할미, 어딩이 역을 맡아 열연하는 천승호 회장은 "30년 만에 숙원사업을 이루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선배님들의 몫까지 해서 오광대를 계승 보존하고 더 발전시켜야 한다"며 "문화재가 되었으니 회원들 간에 서로 배려하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여름에 탈을 쓰고 연기할 때는 탈 안의 산소도 부족하고 땀도 많이 흐른다. 탈 관리, 피부 관리도 잘 해야 한다. 탈을 쓰면 시야가 좁아지는데, 충분한 연습이 그것을 극복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 지난 12일 김해문화원 지하 연습실에서 신명난 연습을 한 뒤 한자리에 모인 김해오광대보존회 회원들. 박나래 skfoqkr@

이명식 회장은 "문화재가 되고 나니 류필현 전 김해문화원장이 가장 먼저 생각나더라. 돌아가시기 4일 전에도 밀양에 모시고 가서 좋아하는 막국수를 대접했다. 류 원장님은 스승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김해오광대를 맡긴다. 꼭 문화재로 지정 받으라'는 유언도 남기셨다. 여름이면 기일이 다가오는데, 전 회원이 제사에 참례할 것이다. 전수관이 생기면 동상도 세워야 한다. 최월희 선배님도 노환으로 몸이 안 좋아 걱정이다. 후배들이 할 일이 많다. 전수관이 생기면 연수, 체험, 마당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김해오광대는 노름꾼 과장에서 김해평야가 농한기에 접어들었을 때의 김해풍속, 수로왕만큼 큰 세력이었던 허왕후의 영향을 이어받아 할미가 아니라 영감이 죽는 할미과장 등 김해만의 특징이 있다. 김해오광대를 중심으로 김해의 전통연희를 계속 발굴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2시간 가까이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밤이 이슥해졌다. 바로 옆에서 연습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무릎장단이 저절로 쳐졌고, 어깨도 들썩들썩, '얼쑤, 좋다'는 추임새도 절로 나왔다. 그러나 공연을 위한 준비과정과 땀 흘리는 과정을 직접 보고 나니 "이건 참말로 중노동이구나. 자기가 좋아서 미치지 않고서야 이 힘든 일에 어찌 저리 열정적으로 온 몸과 마음을 내던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목이 마르는 기분, 시원한 막걸리 한잔 마셨으면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바탕 탈놀음과 풍물이 끝나고 나면 막걸리를 벌컥 들이켜고 싶어 하는 광대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김해오광대보존회 회원(배역)
이명식(노름꾼1, 상주선산양반 예능보유자), 정용근(종가양반, 영감 예능 보유자), 천승호(어딩이, 영노, 할미), 최인규(태평소, 탈제작), 박정석(상쇠), 김동오(노장중, 말뚝이, 사자머리), 장창익(노름꾼3, 탈제작), 김봉학(노름꾼2, 모양반, 담비), 김현숙(상좌중), 최덕남(무당), 김찬순(종가양반), 석동호(의원), 신원이(주색), 이상철(노름꾼4, 사자꼬리), 김복이(장구), 김순선(작은이), 김박(징), 오신자(북), 이무선(장구), 안순금(악사) 박일곤(포졸), 배순희(장구), 박재곤(깃발), 김효석(북), 이인태(노장, 모양반, 상두꾼), 이상배(징), 이윤희(북), 이영희(장구), 허모영(사무국장)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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