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촌면 망덕리에서 고대 국제 교역의 중심지로서 김해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규모 유구와 유물이 발굴됐다. 망덕리에서 출토된 유구·유물들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를 아우르는 것이다." (2011년 6월 14일자) "장유 무계동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마을 유적이 발굴됐다. 김해가 가야시대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에도 중요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유적이다." (2015년 2월 12일자) <김해뉴스>가 내보낸 김해의 유적 발굴에 대한 기사들이다. 이 발굴조사를 한 곳은 (재)동서문물연구원이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 밑에는 무엇이 있을까. 수천 년 동안 사람이 살고 있는 이 땅 밑에는 역사적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지 않을까. 현재의 우리도 흔적을 남기며 살고 있으니. 가야의 옛 고도 김해에서 오래 살아 온 토박이들은 "겁나서 마당도 못 파보겠다. 깨진 접시라도 나오면 우째야 할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 고구마 밭에서 토기 파편을 많이 봤다"며 추억을 털어놓기도 한다.

지금은 '미래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과학문명은 얼마나 더 발전할까, 얼마나 더 편리한 물건이 나올까'를 생각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오랜 과거를 더듬어 인류문명의 궤적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의 증거가 되는 유적을 발굴하고, 유물을 복원해 과거의 인류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 동서문물연구원을 찾아가보았다.

▲ 유물 파편을 실측하는 한 직원.
땅속을 더듬어 오랜 과거를 찾는 일부터
녹슨 쇳덩이·토기 파편 등 일일이 맞춰
그리고 메우고 붙이는 작업 통해 복원
"전국 어디든 '오래된 미래'만 있다면 …"

2005년 설립된 동서문물연구원은 문화재 조사연구기관이다. 문화재 보존, 보호, 조사, 관리 및 그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곳이다. 장유 104번길 66에 위치해 있다. 설립 당시에는 창원에 있었는데, 2008년에 장유로 이전했다. 김해에 있지만, 부산·울산·경남은 물론이고 전국 어느 곳이든 발굴조사를 다닌다. 예전에 동아대에서 만든 '김해문화재분포지도'를 다시 펴내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중복, 혼용 등을 바로잡는 기본조사를 다 마친 상태이다. 최신판 지도가 발간되면 김해의 문화재 분포가 한눈에 보이겠다.

연구원은 3층 건물이다. 유적조사실, 자료정리실, 수장고, 역사연구실, 사무국 등을 갖추고 있다. 3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은 모두 관련학과를 전공한 전문가들이다. 절반 남짓 직원들이 발굴현장에 나갔고, 유물을 복원하거나 보고서를 만들고 있는 직원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철기유물을 복원 처리하는 직원 옆에 다가가 보았다. 이게 철기유물이라고? 그냥 시커멓게 녹이 슨 쇳덩어리처럼 보였다. 그것을 복원해야 한다. 파편 형태로 발견되면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야 한다. 흡사 퍼즐 맞추기와 다름없다.

입체형태의 토기를 다시 맞추어내는 작업 과정이 궁금했다. 김 원장은 "토기는 크게 세부분이다. 항아리라고 할 때, 입구 주변은 가장 굴곡이 심하다. 몸통 쪽은 굴곡이 완만하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평평해진다. 그렇게 굴곡형태에 따라 세 부분으로 구분해놓고 맞추는 것이다. 몸통부에 무늬가 있다면 작업은 좀 더 수월하다"고 말했다. 그게 요령(?)이었다.

유물의 파편을 모눈종이 위에 갖다 대었다 떼었다 하는 직원은 실측을 하고 똑같이 그려내는 중이었다. 종이 위에 놓고 윤곽선을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크기를 재어 똑같이 그리는 것이다. 높이, 깊이, 길이, 폭, 틈새의 크기를. 성격 급한 사람은 못 할 일로 보였다.

유물마다 등록번호도 붙인다. 언제 발굴했는지, 어느 지역인지, 어떤 유적지인지, 몇 번째 유물인지 등을 식별하는 번호이다. 아무리 작은 유물이라도 모두 번호가 있다. 사람으로 치면 호적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한 직원은 일차적으로 그려진 발굴 당시 유적의 형태, 유물의 위치 등을 표시한 그림 위에 다시 표시를 하고 있었다. 보고서를 위한 작업이었다. 그 작업은 세심하기 이를 데 없는데, 모니터에는 크고 작은 이지러진 동그라미들이 가득했다. 보물지도를 그리는 기분일까? 작업 중인 직원의 표정을 보니 그저 '정확하게!' 라고 얼굴에 써놓은 것 같았다. 무념무상.

▲ 주촌면 망덕리에서 출토된 유물들.
수장고 안에는 동서문물연구원이 발굴한 유물들이 담긴 박스들이 지역별로 잘 정리돼 있었다. 큰 항아리도 가지런히 줄지어 놓여져 있었다. 문외한인 기자는 혹시나 작업에 방해될까봐, 뭐라도 건드리게 될까봐 가까이 다가서기조차 조심스러웠다.

보고서를 편집하는 직원은 편집디자인 전문가이다. 그의 손끝에서 정리된 보고서는 수차례의 교정을 거친 다음에 가제본을 한다. 그런 다음에야 PDF파일로 인쇄소로 전달돼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 원장의 책상 위에도 교정 중인 보고서들이 수북했다. 보고서를 쓴 사람이 수차례 교정을 보았다고 해도, 김 원장은 몇 번 더 살펴본다.

한 페이지를 펼쳐봤다. 출토된 토기에 관한 페이지였다. 먼저 사진이 있었다. 그 다음은 실측해서 그린 그림이었다. 그 아래에는 다시 설명글이 있었다. 사진으로 다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은 그림을 그리고, 그림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은 다시 글로 쓰는 것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세상에 드러난 유물은 이렇게 후대 사람들에 의해 철저하게 증명되고 있었다. 다시 모방해 만들 수도 있을 만큼. 보고서의 사진과 그림과 설명은 이토록 치밀한 과정을 거치고 난 다음에야 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김 원장에게 수십 년간 유적발굴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창원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군대 다녀와서 경주에서 굴불사지 발굴조사에 참여했는데, 대칼로 흙을 조금씩 똑 똑 파내다가 금동불상을 발굴했다. 하늘이 노래지더라.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고'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옛 일을 들려주었다. 김 원장은 고분을 발굴할 때 무덤 주인의 얼굴 위치를 아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인골이 완전히 삭아 흙이 되었을 때 머리가 어느 쪽이었는지는 출토된 의복 장신구와 부장품으로 알 수 있죠. 묻힐 당시 착용하고 있었던 머리장식이나 관, 목걸이나 귀걸이, 허리띠, 신발, 칼자루의 방향. 이런 것들이 말해주지요."

출토된 유물만으로 역사의 증거를 복원해내는 일이란 어떤 의미일까. 김 원장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아주 근사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3D 업종이래요." 김 원장이 껄껄 웃었다. "서울대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하는 현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명색이 최고 학부를 졸업한 전문가들이죠. 그들이 쪼그리고 앉아 작은 삽으로 유물이 묻혀있는 땅을 조심스레 파고 있는데, 어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옆으로 지나가더랍니다. 유적발굴이 뭔지 몰랐던지 어머니는 아이에게 '너도 공부 안하고 놀기만 하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땅이나 파면서 살게 돼'라고 말하더랍니다."

언젠가 대성동고분군 발굴 현장에서 넓은 붓으로 땅바닥을 차분하게 쓸면서 흙을 조심스럽게 모으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했더니, 김 원장은 대번에 "목걸이 줄이 끊어져 흩어진 채 출토되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만 해도 발굴현장을 오갈 때 지게에 바지게를 얹고 그 안에 흙을 퍼 나르기도 했다. 요즘은 장비가 많이 좋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힘들다"고 말했다.

기자가 보기에도 힘들어보였다. 유적현장에서 공사업체 사람들을 만나 끝도 없는 설명을 하는 일도 힘들 테고, 유물을 출토하고 복원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일도 모두 어려워보였다. 최첨단 문명을 향해 달려가기만을 원하는, 나날이 허물고 새로 짓기만을 바라는 이 세상에서 땅 속 수 천 년 전의 과거를 더듬어 가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현재가 아득한 과거로부터 왔기에 그 역사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또한 역사는 반복된다. 그들이 하는 일은 어쩌면 '오래된 미래'를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 동서문물연구원 직원들이 애지중지하며 정리하는 유물들 사이에 모였다. 발굴현장에 나간 직원들은 함께 하지 못했다.

≫동서문물연구원 사람들이 말하는 '나에게 유물이란!'
"땅속을 더듬어 발굴을 하는 마음은 어떤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는 말에 김 원장은 "유물이 안 나와도 걱정, 많이 나와도 걱정"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동서문물연구원들에게 '나에게 유물이란?' 질문을 던져보았다.

△강미정/어렵다 △노은정/힘들지만 뿌듯하다 △신원하/우리의 삶이다 △서순이/신기하다 △강민정/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박경란/선인들의 지혜를 알 수 있는 역사서이다 △박현주/미완성에서 완성으로 가는 과정이다 △정세림/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어렵다 △박진현/삶의 일부이다 △문백성/보물이다 △배상현/사료이다 △정혜정/옛사람의 자취다 △황지은/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이다 △정민기/사람이 쓰던 물건 △손병국/사람이 쓰고 들고 다닐 수 있는 물건 △임대기/문화유산이다 △정해민/옛사람의 책이다 △하용인/사람이 쓰던 물건이다 △임동재/인간 발자취이다 △권영호/보고서의 꽃이다 △천신우/후대에 남겨줘야 할 중요한 자산 △김민경/보물이다 △이경혜/역사의 흔적이다 △최다윤/우리의 어제이다 △추상아/우리의 미래이다 △김형곤 원장/나의 첫사랑이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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