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는 목포에서 해상으로 220㎞ 떨어져 있어 배로 가려면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2012년부터 보건지소에 공중보건의가 배치돼 있지만 검사장비와 수술인력을 갖추지 못해 응급수술환자가 발생하면 육지의 큰 병원으로 이송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 날 가거도의 공중보건의사는 복통을 호소하는 7세 소아를 급성충수염으로 진단했다. 소아의 급성충수염은 외과적 수술 치료를 필요로 하는 복부 질환이다.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할 경우 곪은 충수돌기가 터지고 복막염, 복강내 농양 등의 여러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가거도 보건지소 측은 최대한 이른 시간에 환자를 이송해 검사를 한 뒤 치료를 받게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해경은 악천후에도 헬기 출동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섬이나 해상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할 때 '육지와 도서 간, 육지와 큰 선박 간의 원격진료 시스템이 절실할까, 아니면 응급환자 이송체계가 더 필요할까'라는 의문을 가져 봤다.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막대한 예산을 들여 농·어촌과 섬지역 등 의료 취약지역 주민들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명분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동안 시행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주로 고혈압·당뇨 등의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 중 재진환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의 혈압·혈당 등을 자가측정해 주기적으로 의료기관에 전송하면, 의사가 이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컴퓨터·스마트폰을 통해 원격 상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원격의료 시스템은 응급환자 발생 때나 환자의 상태가 급변할 경우에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처럼 급성충수염이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하거나 심혈관질환이 의심되는 환자가 생기면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섬 지역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는 의사들의 의견도 수술이 필요하거나 응급검사가 필요한 위급환자가 생기면 육지의 큰 병원으로 신속하게 옮길 수 있는 환자이송 체계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성인은 물론 영·유아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해경에 협조를 구하면 응급헬기가 출동하하지만, 헬기는 기상 조건에 따라 출동에 많은 제한을 받기 때문에 난감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같은 예산으로 정책을 추진할 경우, 도서지역에 정말로 필요한 건 원격의료 시스템이 아니라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제대로 정비하는 것이다. 섬 주민들 중 만성질환자의 건강 관리는 원격의료가 아니라 전화 상담만으로도 가능하다. 실제 원격화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한 도서지역의 공중보건의사는 "원격의료 이용 주민들은 대부분 만성질환자다. 증상이 조금만 다를 경우 육지의 큰 병원으로 나가야 하는 불편함은 그대로다. 대면진료를 하고 검사를 해야 정확한 환자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원격의료를 통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응급환자의 원격의료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다음달부터 취약지역 병원 응급실과 대도시 거점병원 응급실 사이의 원격협진 네트워크 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 군 장병과 원양선박 선원을 위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확대 실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그러나 원격의료 서비스보다는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응급의료 시설과 인력 확충이 더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의료계에서는 일명 '날아다니는 응급실'로 불리는 닥터헬기의 추가 도입을 권유한다. 이동형 초음파 진단기, 혈액화학 검사기, 심장효소 검사기, 자동흉부압박장치, 이동형 기도흡인기 등 응급상황에서 꼭 필요한 장비들을 장착한 닥터헬기는 응급환자를 골든타임 안에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이송하는 데 효과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4대가 배치돼 있다. 2011년 도입 후 2천여 명의 응급환자를 이송했다. 2013년 닥터헬기를 도입한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의 경우 다른 이동수단(사망률 27.6 %)과 비교할 때 중증 외상환자의 사망률(14.7%)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