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의 예술적 감각이 빛나는 돈까스공업사 실내.

"뭘 먹을까요? 돈까스 어때요?"
화가 김혜련 씨의 목소리가 새봄처럼 밝고 활기찼다. 화가로, 또 갤러리 카페 '재미난 쌀롱'의 쌀롱언니로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그는 언제나 밝고 쾌활하다. 얼마 전 부산의 '갤러리 마레'에서 개인전을 마친 그를 '돈까스공업사'에서 만났다. 전시회의 성공을 축하한다고 했더니 "친구들과 지인들의 얼굴을 그렸다. 모두 자기 얼굴그림을 샀다. 사실상 팔린(?) 작품을 전시한 셈이다. 그래서 전시회 제목도 '강매이빨전'이었다. 부산에서 쌈수다를 진행하는 김상화 선생이 와서 보고 '재미있는 전시회이다. 그런데 이건 강탈전'이라고 하더라. 그림을 그릴 때도, 전시하는 동안에도 너무 행복했다"고 근황을 들려주었다.

▲ 돈까스공업사를 연 아들 구문조(왼쪽) 사진작가에게 유명한 중국집 요리사였던 부친 구점태 씨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사진=김병찬 기자 kbc@
'돈까스공업사'의 주인은 사진작가 구문조 씨. 입구에 '나사와 못은 팔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써 놨다. 설마 그런 사람들이 있을라고? 작은 마당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다. 마당 한쪽에 대기석 같은 작은 테이블이 또 있다. 마치 친구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인데, 식당으로 들어서기 전에 널찍한 주방부터 먼저 보인다. 주방을 보고 나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실내로 들어설 수 있다. 실내장식이 독특하다. 아니 재미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을 수 있는 좌탁과 식탁을 함께 배치했다. 작은 다락방도 있다. 벽면은 그림과 사진들로 장식돼 있다. 주인이 오래 간직하고 있는 비디오테이프도 수십 개 있다. 그 중 보고 싶은 영화를 틀어달라고 하면 기꺼이 틀어준다.
 
돈까스 본래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그냥 돈까스', 매운 맛을 좋아하면 '매운 돈까스', 그리고 뭔가 독특하고 근사한 기분을 내고 싶다면 이 집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까르보나라 돈까스'를 시키면 된다. 세 개 다 맛보기로 했다. '그냥 돈까스'와 '매운 돈까스'는 외양상 똑같아 보였다. '매운 돈까스'라는 걸 알리기 위해 소스를 만드는 땡초를 하나 예쁘게 올려놓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번쩍 튀어나왔다. '재미난'을 주제로 자주 의기투합하는 김혜련 씨와 구문조 씨가 함께 있으니, 이런 아이디어는 일상적으로 튀어나온다.
 
사진작가인 구문조 씨가 겁도 없이 덜컥 돈까스 전문 식당을 연 것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부친 구점태 씨가 안동에서 유명했던 중국집 '영빈관'을 운영했던 요리사였다. 부친은 '돈까스공업사'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게다가 구문조 씨는 20대부터 요리사로 일해 온 친구에게서 소스 만드는 방법을 전수 받았다. "내가 돈까스집을 연다고 하니까 친구가 어느 날 '짠'하고 나타나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정말 고맙더라고요."
 
▲ 그냥 돈까스, 매운 돈까스, 까르보나라 돈까스(순서대로).

세 개의 돈까스 접시가 앞에 놓였다. 세 개를 번갈아 맛보기로 했다. "돈까스는 소스가 제일 중요해요. 저희 집에서는 소스를 배로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김해문화의전당에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공연했는데, 그 공연팀이 왔었어요. 그 중 한 분이 예민한 식감을 가지고 있더군요. '돈까스 소스에 와인을 넣었습니까?'라고 묻더라구요. 실제로 와인이 들어갑니다." 구 사장의 말끝에 김 화가는 "그 와인을 하우스 와인으로 팔아보라"고 권했다. 구 사장이 "그래볼까요?"하고 관심을 보였다. 맛집 취재가 아니라 마치 품평회에 온 것 같은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구 사장은 "좋은 베이스소스, 우스터소스의 배합비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매운 돈까스 소스를 만드는 것은 힘들었다. "매운 맛을 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가장 쉽게 매운맛을 내려면 켑사이신 소스를 사용하는 건데, 우리 가게는 그 방법을 쓰지 않고 땡초를 사용합니다. 텁텁한 맛없이 깔끔한 매운맛을 내고 싶었거든요. 땡초만 쓰니 매운맛이 덜해서 월남고추도 함께 사용해요. 그래서 단맛이 살짝 느껴지는 매운맛이 나요. 매운 걸 좋아하는 손님들은 매운맛의 정도를 따로 주문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고추들이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제품이 아니라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니, 매운 정도가 늘 일정한 게 아니라서요. 어떤 때는 매운 맛이 잘 안 나올 때도 있죠. 그게 고민입니다." 구 사장이 솔직하게 말하니 "그렇겠다. 같은 줄기에서 자라도 매운 맛의 차이가 있지 않겠냐. 어쩌지?"하고 이번에는 다함께 의논하는 자리가 됐다. 정말이지 흥미진진한 맛집 취재였다.
 
▲ "사진 그만 찍고 돈까스 먹어봐요!" 김혜련 화가가 매운 돈까스를 잘라 내밀고 있다.
까르보나라 돈까스는 한 입 맛보는 순간, 미소가 머금어질 만큼 고소했고 식감이 부드러웠다. 바삭하게 잘 튀겨진 돈까스는 소스와 어울렸고 느끼함은 없었다. "여자 손님들이 특히 좋아하는 메뉴이지요. 까르보나라 소스를 돈까스에 사용하는 식당은 드물죠. 있다고 해도 국물처럼 흥건하니 돈까스에 잘 묻지도 않고, 소스 특유의 맛도 느낄 수 없죠. 하지만 돈까스공업사의 까르보나라 돈까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걸쭉하죠? 소스의 맛도 느껴지고, 돈까스도 잘 감싸고 있고요. 사실 이 소스의 비법은 혜련 누나에게서 전수받았습니다." 구 사장이 또 하나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김 화가는 "이탈리아에 유학 갔던 테너가수가 그 곳 요리사에게서 직접 배운 것을 내가 전수받아 구 사장에게 다시 가르쳤다"고 말했다. '재미난'을 중심에 놓고 모인 사람들이니 '돈까스공업사'를 열기 전에 얼마나 재미있게 소스 연구를 했을지 짐작이 되는 대목이었다.
 돈까스 이야기를 하다가 김 화가는 구 사장에게 "시락국을 좀 더 진하게 끓였으면 좋겠다. 맛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 사장은 "사람들마다 입맛이 다 다르더라. 진한 게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오는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시락국밥을 말아주고, 자신은 돈까스를 먹으면서 좋아하던데…." 그는 시락국을 어떻게 끓일 것인지 궁리를 많이 하고 있었다. 그는 "돈까스는 기름에 튀기는 음식이다. 그렇지만 손님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내놓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돈까스에 곁들여져 나오는 샐러드에 끼얹는 드레싱에는 밀양 얼음골 사과즙이 들어간다. 흑미밥, 제철 과일 몇 쪽, 작은 시락국 한 그릇이 함께 나온다. "요리 관련 공부를 계속 더 해야죠." 구 사장은 연구와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다녀간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돈까스공업사'. 앞으로도 재미난 변화가 일어날 테니, 기대해도 좋을 듯.  


▶돈까스공업사
김해문화의전당 인근 창원지방법원 김해등기소 옆 골목. '재미난 쌀롱'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재미난 사진관'이 있고, 그 안쪽에 '돈까스공업사'가
있다. 그냥 돈까스 6천500원, 매운 돈까스 6천 900원, 까르보나라
돈까스 6천 900원, 시락국밥 3천 500원 △전화/055-909-9232.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