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느질은 물론이고, 매듭, 염색 등 전통공예의 여러 분야를 고루 알아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최규리 규방공예가가 매듭실을 만지며 규방공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척부인(자), 교두각시(가위), 세요각시(바늘), 청홍각시(실). 감투할미(골무). 인화낭자(인두), 울낭자(다리미). 작자·연대 미상의 가전체 작품으로 전해지는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의 등장인물들이다. 옛날 주 부인이 바느질을 하다가 낮잠이 들었다. 그 사이 규중칠우, 즉 바느질에 쓰이는 도구들이 각기 자기가 없으면 어떻게 옷을 짓겠느냐면서 서로의 공을 다툰다는 내용이다. 선비들의 사랑방에 문방사우가 있다면 여인들의 규방에는 규중칠우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규중칠우와 더불어 전통바느질의 세계를 이어가는 규방공예가 최규리(53) 씨의 '소연공방'을 찾아가보았다.

산업·시각디자인 전공에 사진도 배워
미술 가르치다 규방공예에 점차 관심
"바느질과 미술은 공통점 많은 분야"
2013년 말 김해 첫 규방공예 개인전
"염색 같이 하는 어머니 최고의 후원자"

소연공방은 외동 분성로 48번길 한신아파트 옆 한신상가 3층에 있다. '소연'은 최규리의 호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매듭실, 옷감, 실, 인두, 다리미 그리고 전통 바느질로 만든 소품, 옷, 액자 작품 등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16평 남짓한 공방은 그 많은 물건들로 가득했다. 붉고 노랗고 푸른 색감들이 눈으로 확 달려드는 것 같았다. 은은한 색은 은은한 대로, 화려한 색은 화려한 대로 제 자리에서 각자 빛을 내고 있는 하나의 세계라고나 할까. 크고 작고 화려하고 소박한 작품들이 특별히 튀는 법 없이 잘 어울리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구성하기로 한 것처럼. 책꽂이에는 미술책과 함께 규방공예, 자수, 홈패션 등 바느질 관련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최규리는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났다. 부산진초등학교 2학년 때 김해로 이사를 왔다. 활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김해중앙여중에 다니다가 다시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를 갔다. 부친의 직장을 따라 이사를 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난 뒤인 1987년 남편 직장이 있는 김해로 다시 왔다. "아무래도 김해와 깊은 인연이 있나 봅니다. 저는 김해사람입니다." 최규리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는 김해에 온 뒤 경남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7, 1988년 두 아들을 연이어 낳아 정신없이 키우고 나자, 무언가 배우면서 사회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는 1990년 인제대학교 평생교육과정에서 작고한 사진예술가 최민식 선생에게서 사진을 배웠다. 그즈음 현재 소연공방이 있는 자리에서 미술학원을 하던 친구에게서 학원을 이어받았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치는데, 만들기 과정이 많았다. "아이들과 만들기 수업을 계속 하다 보니 공예에 점점 흥미가 생기더군요. 그렇게 서서히 규방공예 쪽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진 거죠."

미술을 하던 그가 규방공예가가 된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가 염색을 해요. 취미로 하는 것이지만, 깊이 있게 공부를 하죠. 저도 염색을 할 때는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어머니가 직접 염색을 해주기도 하고요."

수원에 살고 있는 어머니는 "서울 인사동에서 전통규방공예 전시회가 열리더라", "전시회가 좋아서 도록을 챙겨뒀다", "좋은 작품이 있더라" 등 딸에게 알려줘야 할 소식을 빠뜨리지 않고 전해준다고 한다. 중요한 소식, 각종 정보들을 모아 블로그를 운영할 정도로 '감각 있는' 어머니 덕에 그는 김해의 공방에 앉아 바느질을 하면서도 수도권에서 열리고 있는 규방공예 관련 소식을 접하고 있다. 어머니는 늘 든든한 그의 후원자인 셈이다.

▲ '꿈을 담는 주머니1'.
최규리가 2013년 12월 김해에서는 처음 규방공예 개인전을 열었을 때도 어머니는 도록 인쇄비를 아낌없이 후원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가 가까이 살고 있으면 함께 전시회를 보러 다니거나 옷감을 뜨러 다니면서 더 많은 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고 말했다. 그에게 어머니는 조언자이며 동반자이고 또 선배인 셈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부업으로 편물을 짜는 것도 보았어요. 이모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렸죠. 제가 어머니와 이모의 재능을 조금 물려받았나 봐요. 우리 형제는 딸 셋에 아들이 하나인데, 부모님은 한 번도 딸, 아들을 차별하지 않고 키웠어요. 언제나 '네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해보라'라고 지지해줬어요. 그 믿음이 저희들을 키운 거지요. 77세인 어머니는 요즘 문인화를 배우러 다니고, 82세인 아버지는 중국어를 배운답니다. 부모님을 보면서 저도 배움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신뢰와 그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가 늘 자신을 깨우쳐준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최규리는 창원여성인력센터에서 한복공예를 공부하면서 전통바느질의 세계와 본격적으로 만났다. 어느 날 주머니를 다 만들고 나서 주문해두었던 매듭을 달려고 보았더니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매듭공예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창원의 매듭공예가 임미숙 선생을 찾아가 배우기도 했다.

"바느질, 매듭, 염색 등 모든 과정을 알아야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따로따로가 아니라 다 연결돼 있는 거죠. 옛날 여인들은 혼인을 하기 전에 골무를 100개 만들어 시댁 어른들에게 먼저 선보임으로써 바느질 솜씨를 알렸다고 하더라구요. 그들은 가족의 의복 일체를 모두 다 만들 수 있었던 거죠. 요즘은 반짇고리가 없는 집도 많고 단추 하나가 떨어져도 세탁소로 보낸다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지요?" 그는 말끝에 미소를 지었다.

▲ '골무이야기'. 위 사진은 '100조각보'.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수차례 단체전에 참가하며 화가로도 활동했던 그가 전통바느질에 뛰어들자 미술과 규방공예가 접목됐다. "바느질과 미술은 동떨어져 있는 세계가 아니에요. 공통점이 많지요. 바느질한 조각보, 그림으로 그린 조각보를 보면 둘 다 색감을 중시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결국 표현하고자 하는 건 같은 것이에요. 아름다움이죠. 배웠던 많은 것이 현재 작업에 도움이 됩니다. 대학 시절 산소용접기를 직접 들고 금속공예 작품을 만들어 상을 받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금속공예도 알고 있어요. 요즘은 목공예를 직접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전통공예의 각 분야는 모두 연결돼 있으니까 다 알고 싶어요."

최규리가 만들어내는 규방공예 작품은 누비한복, 주머니, 조각보, 다포, 골무, 족두리, 노리개, 반지와 브로치 등 의복에서부터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골무와 베틀의 북을 이용해 만든 작품은 그의 예술적 감각을 활용해 만든 조형작품이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갑, 주머니, 받침대 등은 앙증맞다.

"퀼트에 비해 전통바느질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퀼트는 면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지만, 명주나 모시 등 전통옷감에 바느질을 하는 규방공예는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저는 실용성을 보완하는 작품을 만들려고 궁리를 많이 합니다." 그가 믹스커피를 담아두는 그릇형태의 작은 소품 하나를 보여주었다. 작은 그릇 형태의 소품에 믹스커피를 담아놓으니 그냥 상자에 들어있는 것 보다 훨씬 운치가 있어 보였다.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해둔 옷감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니, 그는 바느질 하는 틈틈이 맞춤한 옷감을 사러 부산진시장이나 서울 종로·동대문시장에도 자주 간다고 말했다. "옷감만 보면 사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렇죠. 처음에는 전시회에 가면 살짝 만져보곤 했어요. 지금은 보는 것만으로도 알지만요. 염색한 옷감은 따로 어두운 곳에 보관합니다. 형광등 아래서도 색이 바래거든요"

최규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김해자 선생의 제자인 이태선 선생에게서 3년간 바느질을 배웠다. 지난달부터는 경주의 김해자 선생을 찾아가 바느질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바느질은 혼자서 놀 수 있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일이에요.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도 좋구요, 한참 바느질에 빠져 있을 때 전화가 오면 짜증이 날 때도 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공방으로 와요. 특별한 볼일이 없으면 종일 여기서 바느질을 하지요. 바느질을 하면 그야말로 무념무상에 빠집니다."

우리 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규방공예와 일상에서 쓰이는 실용적인 작품이 태어나는 소연공방. 그의 손끝에서 또 어떤 작품이 만들어질지 궁금했다.  

≫최규리
소연공방 운영. 한복기능사, 한국미술협회 전통공예분과 회원, 김해미술협회 회원, 김해공예협회 회원, 김해규방문화연구회 회장, 국제미술교류회 회장, 전통생활문화대학 2기 회장. 김해시여성센터 출강. 1985~1986년 대학산업디자인전 입선, 제17회 전국대학미전 특선, 경남미술대전 입선 등 미술대회 수상 다수. 제8회 김해공예품대전 은상, 제4회 대한민국 황실대전 입선, 제16회 경남공예품대전 특선 등 공예대회 수상 다수. 개인전 '소연공방나들이전', 대한민국 전통공예협회창립전, 김해공예협회 회원전 등 전시회 다수.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