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크기만한 작은 슬리퍼, 손가락 절반 크기의 워커. 아무리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밑창, 굽, 신발 끈, 장식까지.
딱 이 디자인, 이 색상의 신발이 있다면 당장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에 쏙 든다. 작은 가방도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몸이 작아진다면 저 신발을 신고, 저 가방을 들고 토끼를 쫓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고 앙증맞은 미니어처를 만드는 공예가 마복기(44) 씨의 공방을 찾아가보았다.
마복기의 공방 '마쌤이랑'은 수로왕릉 앞에 있다. 수로왕릉을 돌아보고 나와 담장을 따라 오른쪽 길로 가다 보면 광장이 끝나는 지점에 세워진 첫 번째 건물의 1층에 있다.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공방은 금방 눈에 띈다. 멀리서 보면 작은 찻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복기의 작품들과 각종 공예 재료들로 가득한 공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가죽공예, 냅킨공예, 석고공예 등 다양한 공예작품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죽으로 만든 미니어처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수로왕릉을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한 상품도 있고,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공예 재료들도 있다.
IMF로 복직 길 막히자 현지서 대학편입
샌프란시스코 쇼핑명소 '피어39'에서
풍선공예 하고 있는 삐에로 처음 본 뒤
방학 때 한국 들어와 배우며 공예 관심
인연 있는 김해로 학비 벌기 위해 온 뒤
지역 공예가들 만나며 "이게 내 적성"
바느질과 미니어처 분야 가장 좋아해
빈티지 가죽공예 분야도 새롭게 시작
마복기는 첫 인사말을 이렇게 건넸다. "<김해뉴스>의 '공간'을 많이 읽어봤어요. 김해의 공예가 선생님들 이야기들은 안 빼놓고 봤어요. 그 분들에 비하면 저는 아직 모자란데 어쩌지요? 아직 제가 공예가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부끄러운데요."
마복기는 경남 밀양 수산에서 태어났다. 초·중·고등학교를 밀양에서 다녔다. 이름이 본명이 맞느냐는 질문을 먼저 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름이 특이하죠? 어렸을 때는 제 이름이 무척 신경 쓰였어요."
그의 어릴 적 별명은 떡볶이. 마복기와 떡볶이를 나란히 써놓으면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개구쟁이들은 발음이 비슷하다고 그런 별명을 지어 주었나보다. "요즘은 이름 덕을 많이 봅니다. 한번 들으면 쉽게 잊기 힘든 이름이니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긴 그렇다. 기자 역시 그의 이름을 한번 들은 후 오래 기억에 남아 공방까지 찾아갔던 터다.
마복기는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린다거나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미술에는 관심도 없었고 소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루 종일 손을 놀려야 하는 공예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그는 일찌감치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안했어요. 빨리 취직해서 사회인이 되고 싶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취직했어요. 막상 직장생활을 시작하니까 대학에 가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대학을 다니다 보니 이번에는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졌어요."
마복기는 휴직계를 내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런데 그만 IMF 사태가 터지고 말았죠. 복직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요. 복직을 포기하고 미국의 전문대에서 비즈니스 과정을 전공하고 4년제 대학으로 편입했어요. 라스베이거스 주에 있는 대학에서 엔터테인먼트 컨벤션 과정을 시작했지요. 전문대와 달리 공부가 무척 어렵더라구요. 전문대에 다닐 때에는 마켓이나 일식당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도 벌었는데, 대학에 가니까 공부가 어려워 아르바이트는 꿈도 못 꾸겠더군요. 공부할 시간도 모자랐어요. 모든 것이 힘들었지요."
그 즈음 그는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의 이름난 명소인 '피어 39'를 방문했다. 피어 39는 쇼핑센터이자 관광복합시설로 관광객들이 붐비는 장소이다. 그는 그곳에서 풍선공예를 하고 있는 삐에로를 우연히 보았다. 삐에로 앞에는 모자가 놓여 있었고, 관광객들은 갖가지 모양으로 만든 풍선을 받으며 즐거운 표정으로 모자에 돈을 넣고 있었다. "한동안 그 장면을 지켜보았어요. 그 당시에 제가 1시간 땀 흘려 일해서 버는 돈이 6달러 정도였는데, 삐에로의 모자에는 30분도 안돼서 40달러 가까운 돈이 모이더라구요. 저걸 배우면 학비와 생활비를 벌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복기는 무작정 삐에로에게 다가가 풍선공예를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삐에로의 본업은 카니발이 열리는 축제장,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행사장에서 풍선공예를 하는 것이었다. 길거리에서는 자투리 시간을 내어 연습도 하고 부수입도 올리고 있었다. 아무튼 삐에로는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이 일로 풍선공예에 관심이 생긴 마복기는 풍선공예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풍선공예를 배울 수 있더라고요. 2003년 11월 겨울방학 때 한국에 와서 풍선공예를 배웠어요. 그 즈음 장유의 한 병원 원장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어요. 1996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저를 치료해준 원장입니다. 그때 장유가 엄청나게 발전한 것을 보았지요. 젊은 어머니들과 아이들도 많았고요. 김해의 도시 개발도 놀라웠어요. 저는 그 때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학비를 충분히 벌어서 미국에 다시 들어가고 싶었어요. 김해에는 풍선공예가 아직 낯설 때였어요. 한 2년 정도 열심히 일해서 학비를 벌자는 마음을 먹고 서울에서 김해로 내려왔어요."
마복기는 여러 공예 분야를 배웠다. "8년 전 쯤 각 공예의 기초과정을 조금씩 맛보았다고나 할까요? 호기심도 많았고, 공예는 여러분야가 다 맞물려 있으니까요. 그렇게 배우다가 제 적성에 맞는 건 좀 더 깊이 있게 배웠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바느질과 미니어처 공예입니다. 요즘은 빈티지 가죽공예를 하고 있어요. 오래 사용한 듯한 느낌, 소중한 사람에게 물려받은 듯한 물건, 그런 가죽제품이 제 마음을 끌어당겼지요." 그는 새로운 분야의 공예, 새로운 기법이 나오면 어서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복기는 2004년 어방동에서 첫 공방을 열었고, 2006년 현재의 자리에 공방을 다시 열었다. 그동안 이름도 세 번 바뀌었다. 사람들과 함께 함께 하고 싶어서 '파티세상'으로 했다가 다음에는 '마쌤의 행복한 공간'으로 바꾸었고, 지금은 '마쌤이랑'이다.
"사람들이 공예체험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게 좋아요. 공예박람회나 축제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겁습니다. 그곳에서 공예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영업도 합니다. 공예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되죠. 서울에도 가끔씩 가고 해외 사이트도 보면서 '새로운 게 뭐 없나' 늘 정보를 구하고 있어요."
미술에 소질이 없었던 친구, 직장을 떠나 미국에 공부를 하러 갔던 친구가 김해에서 공방을 열고 있는 걸 보는 옛 친구나 직장동료들은 "네가 이걸 왜?"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는 어쩌면 먼 길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마복기는, 자신이 공예를 하게 된 계기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던 것,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우연히 풍선공예부터 시작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6년 정도 지내면서 한국에는 열 번 정도 나왔어요. 그러는 동안 저는 미국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던 겁니다. 집과 직장을 오가던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일종의 마음의 자유를 얻었던 것 같아요. 생각도 넓어졌고요. 그리고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때나 지금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그때와는 달라졌어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살았는데, 지금의 어려움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지요. 낯설고 새로운 상황과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좋아요."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작은 카드꽂이에 줄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을 내는 작업을 했다. 땅, 땅, 망치질을 할 때마다 작고 동그란 구멍이 반듯하게 났다. 그리고 미니어처 작품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그는 작은 신발을 가지런히 다시 놓았다. "미니어처를 만들 때는 복잡한 머릿속이 깨끗하게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작은 신발과 가방 앞에 서 있는 그를 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공간의 불이 꺼지는 캄캄한 밤, 어딘가에 숨어있던 동화 속 난장이들이 나와서 저 신발을 신을 것 같다는.
≫ 마복기 / 김해공예협회 회원. (사)국제파티&벌룬협회 김해·밀양지부장, (사)신풍선문화협회 김해·밀양지부장, 동광초·김해생명과학고 외 다수 방과후 교사.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