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승호 독자·구산동
주말에 부산으로 나갈 일이 있었다. 어두운 색으로 칠한 현수막을 몇 개 지나쳤다. 현수막이란 눈에 잘 띄는 밝은 계통의 색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검정에 가까운 색을 보고 의아했다. 현수막과 가까워졌을 때 의문은 풀렸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애도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운전을 하던 중 차 안에서 라디오로 현장 상황을 전해 듣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단다.
 
재작년 여름 어느날이 떠올랐다. 그 날 장인이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나 가족이 모였다. 장인의 제사를 지내던 중 눈물을 닦아내는 가족들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쉽게 잦아드는 건 아니다'는 생각을 했다. 제사를 지내고 헤어질 때에는 다들 얼굴이 조금이나마 편해져 건네는 인사에 웃음이 섞이기도 했다.
 
우리는 장인을 그리워하면서도, 때로는 웃음을 지으며 1년을 보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 혹은 아내와 부모 등 가족을 잃은 이들의 1년은 조각웃음도 비집고 들 틈이 없다. 
 
우리 가족의 슬픔이 그들보다 덜하기 때문에 우린 웃을 수 있고, 그들은 웃을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 그들은 여전히 울고 있을까. 아마 온전하게 슬퍼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슬퍼해야 할 시간에 분노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았기에 제대로 슬퍼하지 못해 남은 슬픔을 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들이 온전히 슬퍼만 할 수 있도록 그들이 묻는 물음들에 대한 대답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웃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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