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식 인제대 교수.
올해 가야문화축제 개막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근자에는 자문 요구나 참가 부탁도 없어 가야문화축제란 사이트에 접속해 보았다.
 
제39회 가야문화축제가 오는 29일부터 5월 3일까지 '이천년의 금관가야, 세계 속의 빛으로'라는 주제로 화려하게 펼쳐질 예정이란다. 수로왕이 알로 구지봉에 내린 3월 3일부터 12일이 지나 어린아이로 태어난 3월 14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축제기간을 정하고 있다.
 
보통 축제라면 화려한 놀이판을 먼저 연상하는 게 보통이지만, 수로왕의 탄생과 가락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가야문화축제는 봄에 수로왕을 크게 대접하는 춘향대제가 중심이다. 이 제사는 최대 성씨로 400만 이상 된다는 김해김씨 문중 회원들이 전국에서 대형버스로 대거 참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춘향대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가야문화축제를 아느냐, 축제에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 숙박하면서 관람이나 체험하고 싶은 행사가 있느냐 등의 내용이었다.
 
가야문화축제도 알고 참가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숙박하면서 보고 싶은 행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제사를 마친 뒤에는 타고 왔던 버스를 다시 타고 가락국의 마지막 왕릉으로 믿고 있는 산청의 전 구형왕릉 등으로 황망히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때의 허탈함과 실망감은 지금도 입속에 씁쓸함으로 남아 있다. 시조 할아버지 제사에는 열심이지만 가야문화축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만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가야문화축제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을 김해김씨 일족조차도 잡아둘 수 없었던 우리들의 축제에 문제가 적지 않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가야문화축제라 하지만 원래는 1962년 가을의 가락문화제로 시작된 행사였다. 2005~2006년 명물축제의 양성을 외치며 의욕적으로 개최했던 가야세계문화축전과 합쳐지면서 2007년부터 지금의 이름이 되었던 모양이다.
 
2005년의 일이었던가. 가야세계문화축전 전야제를 마치고 TV 9시 뉴스 경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번 뉴스가 김해의 축제가 아니라, 같은 날에 전야제를 치른 진주의 남강유등축제였다. 20억 원 이상을 들인 김해의 축제가 3억 원에 불과했던 진주의 축제에 밀린 것이다.
 
이후에도 상황이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악화될 뿐이었다. 올해 남강유등축제는 문화관광부 선정 대표축제인 글로벌축제가 되었지만, 가야문화축제는 2등급 정도 아래인 경남도 선정 우수축제에서도 탈락했다. 10년 전에는 7배의 예산을 집행하고도 2번째로 밀렸다. 이후 남강축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었는데, 가야문화축제는 경남을 대표하는 축제에서도 밀려나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선 생각나는 것이 차별성의 문제였다. 가야세계문화축제가 아무리 세계의 민속춤을 선보인다 해도 무대와 관중석이라는 식상한 구도인데 반해, 남강유등축제는 어둠을 바탕으로 화려한 등들이 남강 위를 수놓는 전혀 다른 그림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산속의 적은 깨뜨리기 쉬우나, 마음속의 적은 이기기 어렵다'는 왕양명의 명구가 생각난다.
 
초나라 섭 땅의 심제량이 정치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가까운 데 사람이 기뻐하면 먼 데 사람이 올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모일까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축제기획에서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구절이다. 시내에서 활천고개를 넘으면 축제기간인지조차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수릉원과 대성동고분군 일원만의 행사가 김해 시민의 축제가 될 수 없고, 김해 시민이 즐기지 못하면서 타지에서 보러 올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얘네들 뭘 그리 재미있어 하는데"라며 들여다 보고 싶어 먼 곳에서 사람이 찾아오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고려시대까지도 유천간과 신귀간이 허왕후의 도래를 다투어 알린 것을 기념해 건장한 청년들이 두 패로 나뉘어 배를 젓고 말 달리기로 선두를 다투던 전통축제를 기록하고 있다. 해반천에 물을 담아 다양한 드래곤보트 랠리를 펼치고, 김해 온 마을을 도는 역전경주대회도 아울러 진행한다면 우리 시민이 즐기면서 먼 데서 사람이 오는 축제가 되지 않을까? 20여 년 전 낙동강을 처음 건널 때 생각했던 축제를 아직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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