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하면서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흙 만지는 걸 좋아해 도예가가 된 임용택(46), 이미진(39) 두 사람은 동료이자 연인이며, 평생의 벗이다. 각자의 개성대로 작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 부부의 꿈은 하나다. 흙을 빚어서 쓸모가 있는 아름다운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흙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 된 임용택, 이미진 부부도예가의 '예인요'를 방문했다.

흙 만지는 걸 좋아했던 남편과 아내
부산에서 처음 만나 진례에 함께 둥지
물레와 핀칭으로 작업 방식 달라도
쓸모있는 아름다운 그릇 열정 천생연분

예인요는 진례면 담안리 담안마을에 있다. 고모로 442번길 26-39. 예인요에 도착하면 장작가마가 먼저 눈에 뜨인다. 가마를 돌아 마당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작업장이 있고, 맞은편에 아담한 집이 있다. 마당을 향해 큰 통유리가 설치 돼 있는데 그 앞에 작은 화분들이 몇 단으로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이미진이 만든 작은 화분마다에서 예쁜 꽃들이 자라나고 있다. 마당 곳곳에는 이미진의 조형작품들이 배치돼 있다. 임용택은 자신의 작품은 아랑곳 않고 이미진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더 열심이다. 얼마 전에 가마에 불을 땠기 때문에 작업장에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저 작업장이 작품들로 가득차면 또 다시 장작가마에 불이 지펴질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두 사람이 만든 차 주전자, 찻잔, 그릇들이 또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다.

임용택은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김해에서 살고 있으니, 신라에서 가야로 온 셈인가요? 4세 때 부산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경주에서의 기억은 별로 없어요. 부산이 고향이고, 김해가 제2의 고향이지요."

그는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점토로 주병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주병을 만들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친구들은 탱크 같은 걸 만들었는데 저는 주병을 만들었어요. 선생님한테서 잘 만들었다는 칭찬을 들었지요. 중학교에서도 미술대회에 나가면 만들기로 상을 받곤 했어요. 부모님께서는 공예고등학교 가는 걸 반대하셨어요. 인문계고를 가서 공부를 하거나, 공고에서 기술을 배우거나, 상고를 졸업해 직장생활을 하거나, 장래의 진로를 생각해서 진학하기를 원하셨지요. 흙을 빚어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지요. 고입원서를 쓸 때 아버님 도장을 슬쩍 가지고 가서 제가 원서를 썼어요. 나중에 합격하고 난 뒤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는 공예고 도자공예과에 입학했다. 그가 2학년이 될 때까지도 부모님은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3학년 초에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부산시 대표로 나가게 됐을 때 부모님은 처음으로 관심으로 가졌다. "대회? 기능? 하면서 관심을 가지시더군요. 저도 학생 신분으로 전국의 큰 대회에 나가 사회에서 활동 중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고, 방과 후에도 늦게 남아서 실력을 쌓기 위해 많은 연습을 했어요."

그는 전문대 디자인과에서 도자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 부산의 도자업체에서 8개월 정도 일하다가 군대를 다녀왔다. 제대 후에는 그 업체에 다시 들어가 6개월 여 일했다. 그는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서 수영에 공방 '예인도예'를 열었다. "예술과 사람을 이해하자, 예술하는 사람이 되자 그런 의미로 지은 이름입니다. 동기들이 직장생활을 할 때 저는 공방을 열었어요. 잘 안될 때는 문을 닫기도 하고, 남의 요에 가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예인도예를 계속 끌어온 거지요."

임용택은 수영의 예인도예에서 아내가 될 이미진을 만났다. 이미진은 경남 통영 출신이다. 7세 때 부산 사직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림 그리고, 글씨 쓰는 걸 좋아했어요. 잘한다기보다도 좋아했고, 하고 싶었어요. 미술학원을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중3때 그림에 소질이 있는 친구가 공예고 가는 걸 부러워하면서 바라보기만 했지요. 부모님 뜻에 따라 이사벨여고에 입학했어요." 하고 싶었던 것을 못하게 된 이미진은 의욕을 잃었고, 공부에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꿈을 한 번도 놓았던 적은 없어요."

▲ 왼쪽 두 개는 이미진 씨의 작품, 오른쪽 두 개는 임용택 씨의 작품이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각자의 개성을 보여준다.

이미진은 당시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꿈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무엇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정보도 없어서 막막하기만 했지요. 2학년 때 흙을 만지는 일을 하고 싶다,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아버지는 힘든 일 안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미진은 다시 한 번 꿈을 접었다. "3학년이 되어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데, 공부를 안했기 때문에 제 성적에 맞추어 전문대 원서를 살펴보았죠. 그 중 한 학교 입시홍보물에서 '산업디자인' 이라는 학과를 보았어요. 근데 도자기도 배울 수 있는 거예요. 그 두 단어만 보고 지원해 합격했어요. 대학을 다니면서도 1학년 때까지는 부모님께 도자 전공이라는 말씀을 못 드렸어요. 2학년이 되어서야 부모님께 도자 전공이라는 고백을 했답니다."

이미진은 졸업을 앞두고 계속 공부를 더하기 위해 편입을 할까, 취직을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부산의 한 공방에서 신입사원을 구한다는 의뢰가 들어왔다. 평소에 성실했던 이미진을 눈여겨 본 교수들의 추천으로 그는 부산의 명공방에 입사해 3년 정도 일했다.

"성형에서 정형까지 다양한 분야가 있었어요. 저는 성형된 기물에 장식을 하거나 세심한 표현을 하는 정형, 컬러링 작업을 했습니다. 학교보다 공방이 훨씬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돈을 주고 배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매달 월급까지 받고…." 그는 옛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열심일 수밖에 없었어요. 계속 묻고, 배우는 저를 보면서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묻어가지 왜 튀느냐'고 눈치를 주는 분들도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흙을 만지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이미진은 퇴근 후에 물레작업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명공방에 다니고 있던 임용택의 친구가 이미진을 데리고 예인도예로 온 것이 1996년이었다.

그래서, 임용택에게 물레작업을 많이 배웠냐고 물었다. "아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첫날은 '조금 할 줄 안다고 하니 한번 해보라'고 하더군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더라구요. 둘째날은 특별히 뭘 가르쳐 주지는 않고 그냥 물레작업을 하라고 했어요. 세 번째 갔을 때는 아예 공방에 없더군요. 그날은 공방에 있는 친구 분이 가르쳐 줬어요." 그러던 중 임용택과 그의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함께 하며 친해졌다. 임용택은 그 때의 일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공방에 들어서는 아내를 처음 보았을 때, 나와 평생 갈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용택은 1998년 친구와 진례에서 공방을 열어 동업을 시작했다. 이미진도 명공방을 그만두고 합류했다. 이듬해 임용택과 이미진 두 사람의 예인도예가 출발했고, 2000년에 결혼했다. 2001년에 현재의 담안리로 왔다. 2008년에 장작가마를 만들면서 이름을 '예인요'로 다시 지었다.

임용택은 물레작업을 하는데, 이미진은 핀칭작업을 한다. 그동안 물레작업을 여러 번 보았기에 핀칭작업이 더 궁금했다. "'핀치(Pinch)'는 꼬집는다는 뜻입니다. 핀칭작업은 점토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꼬집듯이 해서 성형하는 기법이죠. 주먹만 한 작은 흙덩어리를 손가락의 힘만으로 집어올려가며 작품을 완성합니다. 손 안에서 작품이 빚어진다는 게 좋아요. 흙을 만지고 싶다는 제 마음에 꼭 맞는 작업이지요. 하지만 오래 작업하고 나면 젓가락질도 힘들어요." 이미진의 설명을 들었지만 보기에는 물레작업을 한 작품과 비슷해보였다. 이미진은 손으로 한번 쓸어보라고 했다. 손으로 쓸어보니 물레작업을 한 것은 매끈한데, 핀칭작업을 한 것은 분명히 달랐다. 아주 미세하지만 손가락으로 꼭, 꼭 집은 느낌이 전해져 왔다.

▲ 흙에 대한 열정과 꿈을 함께 빚어가는 부부 도예가 이미진(왼쪽), 임용택 씨가 자신들이 만든 차 주전자를 들어 보이며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두 사람이 만든 차주전자를 놓고 대조를 해보았다. 두 사람의 작품은 모두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적 아름다움을 살려낸 것이었지만, 이미진의 것이 조금 더 자유롭고 색감도 풍부해 보였다. 비슷하게 닮았다 싶으면 다른 모습이고, 서로 다른 세계인가 하면 또 같은 모습. 도예가 부부도 그러했다. 

≫임용택
예인도에. 김해도예협회. 한국미술협회. 김해미술협회공예분과위원장. 경남공예조합 이사. 예얼도예가회. 대구회화대상전 은상, 성산미술대전 입선, 김해시 공예품경진대회 동상·은상, 백자공모전 장려, 문경찻사발공모대전 입상, 경남공예품경진대회 은상, 대한민국공예품대전 특선, 국제다도구공모전 입선.
 

≫이미진
김해미술협회 회원. 경남차사발초대공모전 으뜸차사발 작가. 성산미술대전 입선, 문경찻사발공모대전 입선, 김해미술대전 입선, 국제다도구공모전 입선, 분청공모전 은상·동상·입선.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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