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시의회 이정화 의원이 '옛날 보리밥'에서 보리밥을 맛있게 먹고 있다.

1960~1970년대 가난의 상징에서
웰빙 건강식으로 대접받으니 격세지감

구수한 숭늉과 식전 음식 호박죽 일품
보리와 쌀 2:1 비율로 고슬고슬 윤기
된장찌개와 각종 나물 쓱쓱 비벼 한입

고소하고 단맛 입안 가득 퍼져나가
어린 시절 기억나고 기분마저 좋아져

그 옛날,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쌀이 귀했던 1960~1970년대에 가난한 집 아이들은 보리밥으로 배를 채웠고, 쌀밥은 잔치가 있거나 특별한 날에만 구경할 수 있었다. 당시 나라에서는 보리와 쌀을 섞어먹는 혼식을 장려했고, 학교에서는 보리밥을 싸오도록 한 뒤 도시락 검사를 했다. 그 천덕꾸러기 보리쌀이 요즘에는 쌀보다 귀해져 오히려 '웰빙 건강식'으로 대접받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안 들 수 없다.
 
김해시의회 이정화 의원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메뉴를 묻기에 '집밥'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이 의원은 기자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장유 부곡동 주석초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옛날 보리밥'이었다. 기자는 흔히 가정식 백반으로 통하는 '집밥'을 말했는데, 이 의원은 그 옛날의 보리밥을 퍼뜩 떠올렸던 모양이었다.
 
식당은 장유농협 부곡지점 건물 2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오가 지나 오후 1시가 다 되었는데도 식당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고, 신발장도 다음 손님의 신발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여기 뭐하는 뎁니까…보리밥집에 웬 손님이 이렇게 많아요?", "허허, 장유에서는 밥맛 좋기로 소문난 집입니다. 김 기자는 처음인가요? 매년 어버이날에는 어르신들을 위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 와 본 식당이기도 하거니와 보리밥이 이토록 인기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금방 식사가 끝난 듯한 상 앞에 이 의원과 마주앉았더니 종업원이 빈 그릇을 치우고 상 위를 정리했다. "나는 '집밥'이라고 하면 보리밥이 떠올라요. 어릴 때 넌더리가 나도록 보리밥을 먹었는데도 종종 생각이 납니다. 먹다보면 어머니 생각도 나고 어린 시절도 떠오르고. 먹고 나면 기분도 참 좋아져요."
 
이 의원이 보리밥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동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숭늉 항아리가 먼저 상에 올랐다. 보리밥으로 끓인 숭늉이라 그런지 평소 먹는 숭늉보다 구수한 냄새가 더욱 진했다. 겨울에는 보리밥 숭늉과 함께 호박죽이 식전 음식으로 나온다고 한다. 나무국자로 자그마한 종지에 옮겨 담아 호호 불어가며 마셨더니 텁텁했던 입안이 깔끔해졌다. "이 보리밥집은 생긴 지 7년이나 됐어요. 신도시인 장유에서는 오래된 식당에 속하지요. 장유출장소 공무원들이나 이 인근 학교 교사들이 많이 찾습니다. 나도 여기에 종종 오는데 올 때마다 여기 보리밥과 반찬이 참 맛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드디어 음식이 상에 올랐다. 먼저 오목한 사기그릇에 푸짐하게 담긴 보리밥이 반가웠다. 보리와 쌀을 2대 1 비율로 섞어 밥을 지었다고 하는데, 고슬고슬한 밥의 윤기가 볼만 했다. 반찬도 하나하나 살펴봤다. 메주콩이 동동 떠 있는 된장찌개와 대파를 크게 썰어 고추장양념에 조린 꽁치조림이 상 중앙에 놓였고 콩나물, 고사리, 취나물, 무생채, 미역줄기 등의 나물반찬이 상 가장자리에 놓였다. 뒤이어 버섯호박볶음과 부추겉절이, 쌈 채소와 열무물김치까지 상에 오르니 시골에서나 만날 법한 옛날 밥상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비빔밥을 만들려다가 나물을 하나하나 맛을 봤다. 참기름과 들기름을 머금고 있어서 촉촉하면서도 간이 딱딱 맞는 게 이 식당 주인장의 손맛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집 된장을 넣어 빡빡하게 끓인 된장찌개도 짜지 않고 구수했다.
 
▲ 꽁치조림, 콩나물, 고사리 등으로 한상 가득 차려진 보리밥 정식. 보리밥에 나물 반찬을 넣어 고추장과 비벼 먹으면 별미다.

이 의원이 나물반찬을 보리밥 위에 얹고 고추장을 한 숟가락 넣더니 쓱쓱 비볐다. 밥을 비비면서 몇 번이나 침을 꼴딱 꼴딱 삼키는 모습에 마주앉은 사람의 기분까지 좋아졌다. "초선의원이라 그런지 사실 의회 일이 쉽지는 않아요. 골치 아픈 일도 있고 여기저기 오라는 데도 많은데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허기진 줄도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무작정 이 식당을 찾아요. 밥을 비비다보면 복잡한 일도 왠지 술술 풀릴 것 같단 말이지.(웃음)"
 
이 의원을 따라 보리비빔밥을 만들어 한 숟가락 입에 크게 넣었다. 고추장을 넣었는데도 맵기는커녕 고소한 맛과 단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알알이 씹히는 보리쌀과 저마다 다른 나물의 식감이 씹는 재미를 더했다. 손바닥 위에 다시마나 머위를 깔고 비빔밥을 한 숟가락 올린 뒤 멸치젓갈을 얹어 쌈을 싸먹었더니 그야 말로 꿀맛이었다.
 
이 의원은 반찬들 중에서도 꽁치조림이 가장 맛있었던 모양이었다. 꽁치조림을 더 줄 수 없겠느냐고 식당 주인장 허영숙 씨에게 물었다. 허 씨에게 꽁치조림의 비법을 물었다. "멸치를 우려낸 육수에 고추장, 고춧가루, 물엿을 넣고 진득하게 끓여서 조림양념을 만드는데, 이 양념이 꽁치에 잘 배도록 조리했지요. 쌈을 쌀 때 된장이나 멸치젓갈 대신 꽁치조림 양념을 얹으면 더 맛있답니다."
 
양이 좀 많지 않나 생각했던 보리밥이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배가 그득하게 불렀지만 소화가 잘 될 거라 생각하니 부담이 덜했다. 만족스런 표정을 짓던 이 의원이 밥맛이 어땠냐고 물었다. "참 맛있네요. 제가 기대했던 '집밥' 바로 그 맛이었어요." 


▶옛날 보리밥/월산로 111-61 부곡프라자 2층, 055-331-3291, 보리밥 정식 6천 원, 손두부 5천 원, 파전, 김치찌개 6천 원, 돼지두루치기, 낙지볶음 1만 5천 원. 건물 지하 주차장.

김해뉴스 /김명규 기자 kmk@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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