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직접 그리지 못한다 해도 그림을 좋아하면서 보는 것, 그것도 그림과 함께 하고 있는 겁니다. 제 삶 속에서, 제 생활 안에서 그림이 항상 함께 하길 원합니다.
삶의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천천히 편안하게 끝까지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그것이 제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서양화가 조상이 씨는 작업실 '꿈'에서, 오래오래 그림을 그리는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조상이의 작업실은 내동 사거리 인근 한 건물의 2층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직 짐이 다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휑하게 넓은 작업실이 보였다. 20평 정도의 면적이다. 조상이의 작품 몇 개는 걸려 있지만, 벽면에 기대어 세워 놓은 작품이 더 많다. 60여 개는 되어 보였다. 액자를 여러 개 겹쳐 세워 둔 벽면 앞에 이젤이 두 개 있다. 옆에는 물감들이 있다.

작업실 입구 가까이에 두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작은 소파가 있고, 그 앞에 낮은 탁자가 있다. '텅 빈 공간' 같은 느낌이 드는 작업실이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조상이는 간이의자 두 개 중 하나를 들고 와서 앉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만 남기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갖다 놓지 않았어요."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꿈'의 공간은 오로지 그림을 위한 조상이의 세계라는 것이 실감났다. 

그림 그리기와 문학을 좋아했던 소녀
책을 통해 평생의 보물 마음 속에 간직
"그림에는 철학과 사상이 녹아 있어야"

일상과 주변에서 늘 그림의 주제 발견
추억 속의 집과 마을, 꽃 시리즈 작품화
"예술가의 욕심? 그랬다면 지쳤을테죠"


조상이는 196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당진시이지만 그가 자랄 때는 당진군, 시골이었다.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였고, 어머니는 작은 가게에서 버스 승차권을 팔면서 7남매를 길렀다. 그는 막내딸이었다. 아버지를 많이 닮았는데, 어렸을 때는 꽤 예뻤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를 볼 때마다 '나랑 꼭 닮았구나' 하면서 예뻐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 별명은 '공주'였다.

작업실 창가에는 일본만화 <캔디>의 주인공인 캔디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 "만화 주인공들의 순수함이 좋았어요. 저 그림은 고등학교 때 그린 건데, 줄곧 가지고 있었어요. 아톰도 좋아해요. 제 시계도 아톰시계예요." 그가 손목을 내밀었다. 시계에는 아톰이 장식돼 있었는데, 시계바늘이 잘 안보였다. 시계를 차고 다니는 목적이 시간 때문인지 아톰 때문인지 분간이 안 가는 재미난 시계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미술부에서 활동했다. 초등학교 때는 그냥 편하게 그렸고, 중학교 때 그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림대회에서 상도 더러 받았다. 그런데 친구들이 훨씬 더 잘 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은 그림에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미술부원이었던 조상이는 문예부에서도 활동했다. "책을 무척 좋아했어요. 글 쓰는 것도 좋아했죠. 문학소녀였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데미안>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지요. 책은 시골소녀였던 제게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가르쳐 주었죠."

조상이는 책을 읽으면서 정서적으로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다. 많은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때 읽었던 많은 책들이 지금에 와서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힘이라고 했다. 평생 써먹을 보물을 그 책들을 통해 마음에 숨겨두었던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소녀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평범함에 질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내면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에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철학이 있는 작품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거라고요. '반드시 소질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소질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림에는 철학, 사상 등이 녹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까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이 없더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림이 내가 갈 길이다' 싶더라구요. 고등학생 때 본격적으로 그림에 빠져서 열심히 그렸지요."

조상이는 당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창원의 큰오빠집에 와서 살았다. 큰오빠는 창원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역할을 하던 든든한 오빠였다. 오빠가 '막내는 내가 데리고 있으면서 책임지겠다'고 했다. 방학 때면 늘 오빠 집에서 머물렀기에 창원에 친구도 생겼다.

그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거기서 또 한 번 자신에게 그림에 소질에 없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 미대를 졸업한 후 다시 다른 대학에 입학해 영어를 전공했다. 외도를 한 것이다. "영어를 하다 보니 그때서야 비로소 간절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더군요. '내가 원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면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던 거지요." 그 이후로 그는 삶의 중심에 그림을 두었다.

조상이는 1997년 김해로 이사를 왔다. 2006년에 장유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내동의 작업실에는 일주일에 너댓 번 온다. 오전 10시 30분쯤에는 작업실에 도착해 그림을 그리거나, 가만히 앉아 그림을 생각한다. "이곳은 온전히 저와 그림을 위한 세상이죠. 그날그날 그리고 싶은 걸 그립니다. 물론 하나의 주제를 잡아 작업을 계속 하기도 하죠. '집', '꽃' 등의 주제는 시리즈로 그리기도 했어요."

▲ "그림은 제 생활입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조상이 씨가 그림을 그리다가 뒤돌아보며 웃고 있다.

조상이의 '집' 시리즈는 마을의 집을 그린 그림이다. 자신의 추억 속에 있는 집과 마을들이다. 고향이기도 하고 살고 있는 현실세상이기도 하다. 그는 또 길을 걷다가 꽃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면 그날은 꽃을 그린다. 나무에 눈이 가면 나무를 그린다. 조상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2층의 작업실 창밖으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의 푸른 잎이 보였다.

"인정을 받고 인기가 있는 주제라고 해서 그 그림만 계속 그리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창작활동을 더 해야 하고,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새로운 시도도 하면서 그려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 나이가 좀 더 들면 마지막까지 마음에 남아 있는 하나의 주제를 그리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림의 주제를 늘 주변의 일상에서 발견해요. 먼 곳에서 찾지는 않습니다."

조상이는 최근 학창시절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지난해에 밴드를 통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난 것이다.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 대전, 천안 등지에 살고 있다. 친구들은 서로 연락하고 있었다는데, 그만 김해에 혼자 떨어져 있은 탓에 이제서야 다시 만난 것이다. 친구들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상이야 너는 뭐하니? 그림 그리니?', '너, 그림 그리고 있지 않아?' 라고. 그렇다고 하니 '그럴 줄 알았다'는 게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친구들은 그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사실 그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힘든 일도 많았는데 말이다.

조상이는 그림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한참 키울 때는 그림을 못 그렸습니다. 그때는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서 그림을 사서 보았어요. 그러면서 위안을 삼았고, 또 그리고 싶은 그림을 생각했지요. 그림을 안 그리고 있을 때에도 마음속으로는 늘 어떻게 그릴까 구상했어요. 저 빛의 반사는 어떻게 표현할까, 저 형상은 내 캔버스에 어떻게 옮길까 하구요. 그것도 그림과 함께 사는 거예요."

손으로 그리지 않아도 마음속에 그림이 있다면 그림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조상이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그림과 함께 살아왔고, 살아갈 거라고 했다. 그림을 좋아하면서 보는 것도 그림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림과 삶은 별개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고, 그림이 자신에게는 생활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힘들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렸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예전에는 욕심을 많이 부렸고, 젊었을 때는 뭔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그렇게 예술가가 되겠다고 욕심을 냈더라면 아마 벌써 지쳤을지도 모르죠. 계속해서 제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겁니다. 계속 노력할 거예요. 그것이 나의 길입니다. 훌륭하다고 세상에서 인정받는 그림요? 빨리 하든 늦게 하든 그림을 그리면서 사는 삶도 아름답죠!"

조상이는 편안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림은 제 생활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고 싶고, 그릴 수 있습니다. 천천히, 끝까지, 마지막까지.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그림과 삶이 하나가 되는 시간을 살고 있는 조상이의 호는 '희륜(喜倫)'이다. 기쁜 마음, 밝은 마음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이다. 

≫조상이
한국미협, 김해미협, 김해서양화작가협회, 경남전업작가회, 경남구상작가회 회원. 2013 대동전(김해미협), 2013 뉴페이스인김해전(김해문화의전당), 2013 경남미술품대전(창원 성산아트홀), 우체통을 여는 날(부산갤러리 화인), 그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국립김해박물관), 동서미술의 현재전(마산 3·15 아트센터) 등 개인전과 단체전 다수.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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