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섭·금해변호사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자살을 하면서 메모를 남겼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 등 거물급 인사들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였다. 그런데 성 전 회장이 남긴 이 메모에 증거능력이 있을까. 최근 홍준표 지사는 "성완종 전 회장이 자살하면서 쓴 일방적인 메모는 반대신문권이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죽음과 진실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성 전 회장이 죽어가면서 쓴 메모는 그 상황에 비추어 당연히 진실이고, 증거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메모는 성 전 회장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이고, 개인적 감정에 따라 허위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메모를 그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따져 보아야 할 문제이다.
 
홍준표 지사가 언급한 '반대신문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대신문권은 쉽게 말해 진술자의 말만 듣고 유죄를 인정하여서는 안 되고, 상대방이 진술자에 대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진술권 보장은 형사소송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는 증거능력 판단에도 당연히 적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반대신문권 보장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두 사람이 싸웠는데 그 상황을 보고 있던 사람이 경찰서에서 진술을 하였고, 그 진술서가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제출 된 경우의 예이다. 이럴때 피고인이 목격자의 진술서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그 진술서를 작성한 사람을 직접 법정에 불러 증인신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홍준표 지사의 말은, 성 전 회장은 이미 자살을 하였으므로 이러한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해서 증거능력이 무조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형사소송법에서는 공판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사망한 때에는,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됐을때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이러한 판단은 결국 법원에서 하게 된다. 참조할 만한 대법원 판례 2개를 소개한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피시(PC)방에서 타인의 서버를 임대받아 성인도박 사이트인 메트로 게임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게임이용료 명목의 금품을 지급받는 방법으로 도박장을 개장하고, 영상물등급분류위원회의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게임물을 일반인의 이용에 제공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증거물로 제출된 타인의 성명, 계좌번호 등이 기재된 메모지는 그 작성자 및 작성·보관의 경위, 그리고 그 기재 내용과 공소사실과의 관련성 등이 불분명하여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에 정한 전문증거로서 증거능력 인정을 위한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였다'고 판단한 바 있다.
 
또 하나의 판례는 이렇다. 대법원은 성매매업소에 고용된 여성들이 성매매를 업으로 하면서 영업에 참고하기 위해 성매매 상대방의 아이디와 전화번호 및 성매매 방법 등을 메모지에 적어두었다가 직접 메모리카드에 입력하거나 업주가 고용한 다른 여직원이 그 내용을 입력한 사안에서, '위 메모리카드의 내용은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2호의 영업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로서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하였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성 전 회장 메모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지에 대하여는 주목해 볼 부분이다. 이 메모는 수사를 개시하게 된 단서로서의 의미가 가장 크다. 다른 객관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을 때에 비로소 메모의 독자적인 증거능력을 인정받아 메모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을 지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메모의 증거능력에 대한 논쟁은 이른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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