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이날을 부부의 날로 정한 것은 5월이 가정의 달이고 21일은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미 있는 택일인 것 같다.
 
그런데 필자는 평소 분에 넘치게 부부사랑을 무척 강조한다. 그래서 일찍이 '부부사랑, 그 지혜로운 행복' 등 부부사랑을 강조한 책을 낸 일도 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사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했고, 결혼해서는 줄곧 함께 살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살고 있으니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 같은데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단히 많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이혼하는 경우조차 있는가 하면 설사 이혼은 하지 않더라도 부부싸움을 일과처럼 하면서 마지못해 사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왜 그럴까? 부부가 잘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가 잘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부부가 되었으니 잘 살겠거니" 하고 대충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랑은 노력의 결실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그런데 부부가 잘 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서 부부사랑의 본질을 잘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부사랑의 본질은 두 사람이 만나 한 몸 한 마음 곧 일심동체(一心同體)를 이룬다는 것이다. 부부사랑의 이러한 성격은 종교가 잘 밝혀주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사랑(자비)을 불이(不二) 곧 '둘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밝혔고, 기독교에서는 부부사랑을 아주 직접적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합하여 한 몸이 될지니 이제 둘이 아니요 하나이니,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설파했다. 사랑 내지 부부사랑의 본질을 극명하게 밝힌 것이 아닐 수 없다. 부부사랑의 이러한 성격을 사랑의 합일성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만나 한 몸 한 마음을 이룬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롭고 오묘한 일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 곧 천생연분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음으로 부부사랑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나 합리적 판단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둘이 하나 되는 신비롭고 오묘한 합일성에서 나오는 필연적 귀결이다. 사랑의 주체는 인간이지만 그 사랑은 인간을 초월하게 된다. 사랑의 이러한 성격은 사랑의 초월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혹 부부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 옳고 그름을 합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해결해야 한다. 따지면 따질수록 부부사이의 골만 더 깊어질 뿐이다. 사랑이 담긴 손을 꼭 잡거나 사랑이 담긴 몸을 꼭 껴안는 것으로 일거에 해결해야 한다.
 
다음으로 부부사랑은 이러한 합일성과 초월성에 기초함으로써 무한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데, 사랑의 무한성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창시자들은 대체로 신통력을 발휘하는데,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다고 하는데, 하느님은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 보통사람도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 엄청난 지혜와 권능을 갖게 될 것이다.
 
결혼해서 살아가다 보면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한다. 지식이 필요할 때도 있고 기술이 필요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완력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 어떤 능력보다 부부사랑이 더 큰 능력을 발휘함을 알아야 하겠다. 부부가 진실로 서로 사랑하면 이 세상에서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부부사랑이 돈독하면 무슨 일이든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평생 살아가며 어째야 행복할까
부부가 잘사는게 행복의 열쇠라네
그토록 소중한사랑 노력해야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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