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맞은 표정의 호랑이 핸드폰꽂이, 고양이 화병, 부엉이 향초꽂이, 악당로봇 다관, 깡통로봇 컵, 파랑새 부리 모양의 차 주전자….
이런저런 도자기들을 보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이렇게 재미있는 도자기라면 전통을 고루하다 여기는 젊은 사람들의 시선도 얼마든지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대로 세월이 가면 젊은 사람들은 도자기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릴지도 몰라요. 재미있는 도자기라면 그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는 손현진 도예가의 '도연도예'를 방문했다.

어릴 때부터 만화 좋아해 그림에 소질
산업디자인과 졸업 후 애니메이션 공부
동물과 사물 주제 전통과 현대 접목

2005년 어머니 이름 따 '도연도예' 설립
첫손님 왔을 때 "더 열심히 할 것" 다짐
진례의 흙으로 세련된 분청 제작 꿈


도연도예는 진례면 송정리 445-4에 있다. 진례성당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송정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공장이 한 곳 보이긴 하지만 옛 모습을 크게 잃지 않은 마을이 보인다. 도연도예는 마을 안으로 쑥 들어가 길이 끝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도연도예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른편으로 작업장이 보였다. 왼편에는 전시장 겸 손님을 맞는 공간이 있었고, 안쪽에는 2층집이 있었다. 1층은 생활공간이고, 2층은 작품을 보관하는 곳.

▲ "재미있는 도자기를 보면 어린이나 젊은 사람들이 도자기를 친숙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디자인을 전공한 손현진 씨가 자신이 만든 여러가지 모양의 도자기들 사이에서 활짝 웃고 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빈곳이 보이지 않을 만큼 식기, 다기세트, 화병, 그리고 재미난 도자기 작품이 가득했다. "작업을 정말 열심히 많이 한 것 같다"고 하자 손현진은 "팔리지 않아서 그렇다"며 웃었다.

손현진은 1974년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4세 때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그림을 무척 좋아했어요. 정밀묘사 그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따라 그리곤 했죠. 만화도 잘 그렸고요."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 이도연 씨는 "현진이는 어렸을 적부터 종이에 연필만 댔다 하면 용도 그리고 호랑이도 뚝딱 그려냈다. 그걸 보면서 이 아이가 그림에 소질이 있나 보다 생각을 했다"고 옛일을 들려주었다.

그림을 좋아했던 손현진은 부산공예고등학교(현재 한국조형예술고)로 진학했다. 도예과가 아니라 목칠공예과였다. 그는 석공예를 전공했다. 도예 전공이 아니라니 조금 의외였다. 손현진은 도예가가 되기까지 다양한 경험과 수행기간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손현진은 부산공예고를 졸업한 뒤 부산전문대 산업디자인과로 진학했다. 1학년을 마치고 고교 동기 배성관(거목도예 대표)의 소개로 경북 영양에 있는 방위산업체인 청자요업에서 3년간 일했다. 그릇을 만드는 사업을 만난 것이었다. "도예과 동기들을 한 명씩 만나 친구가 됐죠. 배성관은 앞으로 도예가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죠. 전 그때까지도 제가 도예가가 될 줄은 몰랐어요."

손현진은 방위산업체 근무를 마친 뒤 산업디자인과로 복학했다. 팬시 디자인을 배웠는데, 밀양 청봉요의 장기덕 선생이 강사였다. 어느 날 '하나의 주제로 응용패턴 10가지를 만들어오라'는 과제가 나왔다. 고교 시절 친구들과 밴드부를 만들어 활동했을 만큼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했던 손현진은 기타를 주제로 과제를 수행했다. "장 선생이 제 과제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어요. 강의시간에 '과제를 하려면 현진이처럼 하라'고 칭찬을 했어요. 전 열심히 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게 계기가 되어 장 선생의 본래 작업인 도자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손현진이 도자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도예가였던 조명상 교수가 그를 눈여겨 보았다. "조명상 교수는 학교 실습실의 작업장에서 언제든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어요. 방학 때도 사용할 수 있게 해줘서, 저만의 작업장처럼 활용했죠. 조 교수는 1 대 1로 가르쳐 주면서 기술 전수를 한 게 아니었어요. 도자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분이었지요."

졸업을 앞둔 손현진은 역시 도예가였던 이덕규 교수의 양산 산인요에서 취업 연수를 했다. 양산의 도예촌에는 산인요 외에도 다른 요장들이 많았다. 그는 약 2개월 간 산인요에서 일하면서 도예가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도예가들이 모여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는 자리에 끼어 도자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요. 그분들의 작업과 생활을 보면서 도예가가 되면 좋겠다,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손현진은 졸업 후 김해의 한 요장에 취직했다. 그런데 도자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곳이어서 그가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없어 한 달 후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때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창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애니메이션 붐이 일어났죠. 만화를 좋아했던 터라 부산의 학원에서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1년간 배웠어요. 서울의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해 3년 정도 일했죠. 그런데 서울에서 생활하는 중에도 늘 도자기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지내는 것도 좀 힘들었고요. 제가 힘들어하니까 어머니가 '차 한 대 사 줄 테니 내려오라'고 하더라고요. 못 이기는 척 내려왔지요. 1999년이었어요. 도자기를 만드는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서 도자기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손현진은 그때부터 도예가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갔다. 양산의 도예체험장에서 보조 강사를 9개월 정도 했다. 친구 이경철(고도산방 대표)과 함께 일하며 보조도 하고 물레도 배웠다. 영훈도예, 송화도예, 다송도예 등 여러 요장에서 일하며 배웠다. 그는 다송도예 송영복 씨를 자신의 도자기 스승이라고 말했다. "다송도예에서 일을 시작한 어느 날 하동에 흙을 캐러 가자고 하더군요. 흙을 캐러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좋은 흙을 찾아다니고, 그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궁금했어요. '도자기가 뭐지?'라는 진지한 질문을 자신에게 하게 된 겁니다. 다송도예에서 흙, 유약, 기능과 기술의 차이 등 처음으로 도자기에 대해 전반적인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좋은 작품도 보여주고, 일본의 도예전문잡지도 보여주고,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회나 박람회에도 같이 다녔어요. 많이 배웠지요. 저도 정말로 좋은 도자기가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런 그를 도와준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계속 남의 집에서 일만 하다가 세월 다 가겠다. 실패하더라도 자기 요장에서 작업을 해야 자신만의 기술을 쌓을 수 있다'며 작업장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렇게 2005년 도연도예가 설립됐다. 요장의 이름은 어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정했다. "어머니에게 해드린 건 하나도 없고 받기만 했습니다. 제가 열심히 일하면 어머니 이름이 빛나겠지요?" 손현진과 어머니가 마주보며 활짝 웃었다.

2008년 어머니는 부산의 집을 팔아 진례에 있는 현재의 집을 사서 도연도예를 넓혔다. 작업장, 전시장, 보관실을 갖춘 손현진의 도연도예에는 어머니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있다.


"처음 도연도예를 열었을 때 제겐 완벽한 기술이 없었어요. 2년 정도는 기술을 가다듬는 숙려기간이었고,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었지요. 첫 손님이 와서 제가 만든 도자기를 살펴보았을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더 열심히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한 번 낙선을 경험한 다음, 2007년 김해시공예품대전에서 입선 소식이 전해졌어요. 드디어 인정받았구나, 나를 알아주는구나, 하는 기분에 기뻤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공모전에 출품할 때마다 수상 소식이 왔어요. 상복이 있나봐요. 지금까지 공모전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어왔고,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음 공모전 작품을 구상합니다."

손현진은 재미있는 도자기, 보는 사람이 웃을 수 있는 도자기도 만들고 있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도자기에 동물, 사물, 주위의 모든 것을 적용해보고 있습니다. 호랑이, 고양이, 부엉이, 개, 닭, 집 등. 다른 도예가들이나 고객들은 특이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어린 시절 만화를 그렸던 경험, 산업디자인과 애니메이션을 배웠던 다양한 경험들이 지금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에 전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이렇게 재미있는 도자기를 만들다 보면 젊은 사람들도 도자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그는 그러면서 "진례의 흙은 도자기를 만들기에 좋은 흙입니다. 진례의 흙으로 세련된 분청, 젊은 도자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좋아하는 재미있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어요. 재미있는 도자기를 보면 도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손현진
김해도예협회 회원, 경남공예협회 회원, 예얼도예가회 회원. 경남공예품대전 대상(2014), 김해시공예품대전 금상(2013), 김해시관광기념품공모전 은상(2013), 대한민국 국가상징 디자인 공모전 중소기업청장상(2013), 목포 전국 도자기 공모전 특선(2013), 국제다도구 공모전 특별상(2013). 대한민국 공예대전 장려(2011), 경남관광기념품공모전 은상(2010) 외 수상 다수.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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