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면 신천리 망천마을에 요즘 소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4개 업체가 신천리 산 117번지 일원에 민간개발 방식으로 신천일반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있는데, 300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잘려 나갈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은행나무 두 그루는 마을의 보물이다. 나무 밑에 드러누워서라도 벌목되는 걸 막겠다"며 반발(김해뉴스 5월 13일자 5면 보도)하고 있다.

며칠 전 아침 일찍 망천마을의 한 주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산단 건설업체가 은행나무가 있는 땅 주인으로부터 땅을 매입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주인이 땅을 업체에 팔아버리면 마을사람들은 더 이상 은행나무를 지켜낼 수 없게 된다. 주민들은 이날 아침 일찍부터 산업단지 건설현장 사무소를 찾아가 계약이 이뤄지지 못하게 방해했다.

망천마을은 대대로 김해허씨 가문이 뿌리를 내린 집성촌이었다. 은행나무가 있는 땅의 주인은 허씨가문의 자손인 허 모 씨였다. 은행나무 인근에는 옛날 허씨가문이 운영하던 서당이 있었다. 조선시대 때 관료를 두 명이나 배출했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학자들이 숨어 학문을 닦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날 주민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허 씨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자신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터전을 잃고 싶지 않아 지난해부터 토지매매 계약을 미뤄왔던 처지였다. "망천마을이 산업단지로 망가져 가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면서 은행나무가 잘리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김해뉴스>에 제보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허 씨가 땅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다. 그가 팔지 않을 경우 업체 측에서 강제수용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민간업체가 돈을 벌려고 산업단지를 건설하는데, 개인 땅을 어떻게 강제수용할 수 있다는 것일까.

문제는 법에 있었다. 바로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이하 산단특례법)'이 문제였다. 이 법은 '국민의 사유재산 보호'보다는 '산업단지 건설의 편리'를 돕는 데에만 치중한 법이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산업단지 개발사업자가 땅 주인과 땅값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느라 사업을 제때 못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땅 주인들의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해당 부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누구라도 산업단지를 만들고 싶으면 멀쩡한 남의 땅에 줄을 그어놓고 행정기관의 허가만 받으면 자신이 원하는 가격에 강제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종전에는 수 년이 걸리던 산업단지 조성 허가 관련 행정처리 기간이 대폭 줄어 6개월 만에 산업단지 조성 밑그림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허 씨도 이 법 때문에 은행나무가 있는 땅을 협상으로 팔든지, 아니면 강제수용을 당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는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평생 얼굴을 맞대고 살아 온 마을 어르신들의 원망을 듣지 않으려면 땅을 팔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조만간 산업단지 개발업체 측이 협상가보다 낮은 토지감정가를 내세워 땅값을 지불하고 땅을 강제수용해 버린다. 그로서는 손해가 클 수밖에 없다.

허 씨는 업체 측에 계약 날짜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의 답답한 심정을 듣기 위해 수 차례 연락을 하고 문자메시지까지 보냈지만 그는 통화를 거부했다. 허 씨가 처한 이 답답한 상황.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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