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식·인제대교수
근년에 김해에선 '원도심 재생'이 화두로 등장했다. 몇몇 선각자와 시민단체의 외침이 김해시의 정책적 관심으로 이어지고, 인제대학교도 손을 빌려 주겠다고 나섰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인제대가 구성한 재생위원회의 면면이나 시 당국의 몇 차례 언급에 비치는 문제의식이나 정책방향을 보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금할 수 없다.
 
"가야문화는 회현동의 자랑이면서 동시에 족쇄입니다." 몇 년 전 <김해뉴스>가 당시 회현동장에게 보존과 개발에 대해 물었을 때 그가 대답한 첫마디였다. 원도심재생사업의 중심이 될 회현동지구나 동상동지구가 봉황동유적이나 수로왕릉 등 국가사적과 김해향교나 서상동지석묘 등 경상남도기념물의 보호를 위한 개발제한 때문에 침체된 마을이란 사실은 주민들의 상식이다.
 
그런데 정작 처방전을 내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구성이나 생각을 보면 법적 규제를 완화하고 담벼락에 그림을 그린다거나, 외국이나 다른 도시의 성공사례를 참고하면 된다는 정도의 발상인 모양이다. 법적규제를 완화해서 3층까지였던 것을 4층으로 허가한다든지 집들과 담장을 색칠하고 골목길을 정비한다든지 해서 마을이 재생될 것으로 믿는다면,  원도심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통찰이 결여되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결자해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화재 때문에 생긴 문제라면 문화재에 대한 논의를 중심에 앉혀 직접 대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해의 원도심 재생은 문화유적을 피해서는 단 한 발도 진척될 수 없음을 자각해야 한다. 원래 원도심 재생사업이란 과거의 시간이 이룬 궤적을 따라 그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지속가능한 삶의 장소가 되게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우리 김해시와 김해시의 원도심인 회현동지구나 동상동지구가 바로 그런 동네다.
 
지금까지 김해시는 개발제한을 염려해 고도지정 신청을 한 적도 없고, 경주·부여·공주·익산이 추진해 왔던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고도육성법)'의 제정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19일 자로 제정된 고도육성법으로 어느 정도의 예산이 배당될지는 이제부터의 문제겠지만, 4조 원이나 되는 예산이 배당될 전망이라는 뉴스를 접한 적도 있다. 김해시가 고도로 지정된다고 시 전역의 개발이 제한되는 것도 아니고, 문화유적이 산재한 원도심지역에 대한 제한은 원래의 문화재보호법이 규정하는 내용과 전혀 달라질 것이 없다.
 
수년 전 김해시는 회현동지구에 가야왕궁 복원을 목표로 1년간 49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적이 있지만, 그 결과로 남은 것은 가락종친회관 등 몇 채의 건물이 철거되고 남은 빈터뿐이다. 위와 같은 예산이라면 국민 누구나가 아는 수로왕과 허왕후의 멋진 궁궐이 복원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회현동지구는 왕궁마을이 되어 전시관, 갤러리, 기념품점, 레스토랑 등이 늘어서는 경제력 있고 품격 있는 마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런던 도심의 화력발전소가 유명 미술관 테이트모던으로, 파리의 기차역 오르세가 인상파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계대공항 이후의 뉴욕은 박물관·미술관·갤러리의 유치를 통해 도시재생을 이루었다. 근년에 도시철도를 재생한 '하이라인파크'와 함께 작은 공장과 창고가 난무하던 웨스트첼시 지구가 미술관·갤러리·스튜디오 등의 입주를 통해 상점과 레스토랑이 성업을 이루었다. 
 
경제적 진흥은 물론 문화적 비전이 포함되는 원도심재생사업이 되어야 한다. 가야왕궁복원으로 회현동지구가 일본 교토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아래의 히가시야마(東山) 역사지구와 같은 마을로 변신하고, 동상동지구가 인도네시아·우즈베키스탄 같은 다문화가족과 함께 이스탄불의 바자르 같은 마을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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