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손을 사용하는 존재입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것, 그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 아닐까요.
저는 청소년들과 만들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짚풀공예와 매듭공예를 가르쳐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요. 손으로 물건을 만들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동안 그 아이들이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매듭·짚풀공예가 최혜자(50) 씨는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전통공예를 통해 청소년들과 만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의 작업공간을 방문했다.

최혜자는 아파트의 베란다 쪽 작은 방을 작업공간으로 꾸몄다. 이름도 그냥 '작은 공방'이라고 소박하게 붙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매듭실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채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여러 가지 색, 여러 굵기의 실이 어울려 있으니 화려한 꽃밭을 보는 듯 했다. 다른쪽 벽에는 짚풀공예품이 가득한 장식장이 자리 잡았다. 작업대는 베란다 쪽으로 난 문 옆에 놓았다. 작업대 위로 햇빛이 가득 비쳐 환했다. 최혜자는 이 작업대에서 짚풀과 매듭으로 세상을 엮어가고 있다.

▲ 최혜자 씨가 만든 짚풀공예품.
손재주 좋으면 팔자가 세다던 어머니
남편도 말렸지만 이것이 나의 길
비즈·매듭 배우다 서정희 짚풀 명인 만나
기법 원숙해지고 강사 자격증도 따
국립민속박물관에 민속 공예품 납품

만들기에 집중하면 긍정적으로 변해
전통공예청소년상담사 꼭 해보고 싶어


최혜자는 경남 사천 서포면의 바닷가 농어촌 마을에서 1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손재주가 많았어요. 조각보를 잘 만들었는데, 명절 때면 예쁜 주머니도 만들어주곤 했죠. 어머니가 만든 주름치마, 멜빵치마를 입고 학교에 가면 다들 예쁘다며 부러워했어요. 어머니의 손재주를 딸들이 고루 물려받았는데, 손재주를 이어가며 사는 건 저뿐이에요."

그는 어머니, 큰어머니가 함께 베를 짜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어머니는 딸이 짚풀과 매듭공예를 시작했을 때 반대했다.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으면 팔자가 세다고 하셨어요. 편하게 살지, 고생스럽게 왜 그런 걸 하느냐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전 어려서부터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게 좋았어요. 남편도 처음에는 반대했는데, 요즘은 제 작품에 필요한 목공예 장식을 직접 짜줄 정도로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최혜자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중학생이었던 언니가 뜨개질을 하고 있기에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언니는 '나중에 중학교 가서 배워라'면서 안 가르쳐 주더라구요. 언니가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직접 목도리를 떠서 완성했어요. 그 목도리를 매고 밖에 나갔더니 마을 어른들이 '언니가 예쁜 목도리를 떠 줬구나'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죠." 옛 추억을 말하는 그는 마치 초등학교 4학년의 그날로 돌아간 듯 활짝 미소를 지었다.

서포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고등학교는 진주에서 다녔다. "학교 다닐 때 그림은 잘 못 그렸어요. 만들기는 정말 좋아했지요. 자수, 한복 만들기를 할 때 친구들 중에는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경우도 많았는데, 저는 직접 만들어서 늘 좋은 점수를 받았어요."

최혜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 동래 광혜병원 약국에서 5년간 일했다. 결혼하고 김해로 왔을 때는 1990년이었다. 몇 년 후 다시 부산에서 잠깐 살다가 2002년 김해로 돌아왔다. 그 무렵,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조금 여유로워져 뭔가를 배워보고 싶었다. 정보기기 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뭐 더 배울 것 없나 하면서 정보를 찾던 중 동사무소에서 김해문화원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그는 김해문화원에서 짚풀공예가 윤귀숙으로부터 1년 정도 짚풀공예를 배웠다. 보조강사도 했다. "농어촌 마을에서 자랐으니 짚이 낯설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잘 안되더군요. 짚은 고집이 있어요. 원하는 방향으로 엮어 가려면 뻗어가는 짚의 성질을 잘 다뤄야 한답니다."

▲ 국화매듭으로 부채 선추를 만들고 있는 최 씨의 손. 전통매듭실이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고 있다.

짚풀공예를 배우던 중 '쾌걸춘향'이라는 TV드라마에서 비즈공예를 접했다. 원래 관심이 있던 차에 드라마를 통해 보니 관심이 더 커졌다. "비즈는 부산 동주대학교 교수에게 1대1로 직접 배웠어요. 비즈를 배우면서 전통매듭과 접목하면 멋진 작품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혜자는 다시 김해의 매듭공예가 홍서현에게서 특수매듭까지 배웠다. 그리고 혼자서 매듭과 관련한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전통매듭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연구했어요. 일본에 여행 갔을 때도 일본 전통매듭 책을 사러 다니고…. 전시회도 다니고, 인터넷에서 새로운 기법 등에 관한 정보도 검색하고, 매듭공예 장인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 방송도 찾아봅니다. 전통매듭의 역사, 장인, 기법을 알 수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정보를 꾸준히 접하다 보니, 그 모든 분들이 제게 매듭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공부는 계속 되고 있는 거죠."

비즈와 매듭에 빠져 있는 2008년 어느 날 의령의 짚풀명인 서정희 씨를 만났다. 서 씨는 2009년 '대한명인'으로 선정됐다. 

"서정희 명인을 만나면서 짚풀공예 기법이 더 원숙해졌습니다. 짚풀공예강사 자격증도 땄죠. 2009년부터 강사로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전통매듭과 공예를 본격적으로, 함께 하게 됐습니다." 그는 2013년부터 가야대 평생교육원에 전통매듭강사로도 나가기 시작했다.

최혜자에게 짚풀과 매듭의 매력을 물어보았다. "짚풀은 사용하지 않고 그냥 두면 버려지는 쓰레기이죠. 하지만 잘 다듬고 수공을 조금만 들이면 멋진 작품이 됩니다. 조상들은 짚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물건을 만들어 썼어요. 일상소품을 만들어 쓰던 것이 이제는 공예가 된 것이죠. 저는 짚의 색이 좋아요. 물을 반복해 적시면 색이 짙어진답니다. 짙고 연한 색의 조절이 가능하죠. 서정희 명인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국립민속박물관에 보내고 있답니다. 복조리, 패랭이, 똬리도 만들고요. 핸드폰걸이 복조리, 미니 삼태기 등 판매용 기념품도 만들어 보냅니다." 그는 짚풀공예품을 장식으로 집에 두면 전자파 차단에도 도움이 되고, 겨울에 분무기로 물을 살짝 뿜어주면 가습기 역할도 한다고 일러주었다.

"전통매듭이라고 하면 노리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의 모든 장신구에 매듭이 다 쓰인다고 보면 됩니다. 한복 단추인 연봉매듭처럼 옷에 쓰이는 기법에서 전통악기 장식용, 부채 선추 등에도 매듭이 필요합니다. 조각보에도 매듭이 꼭 있어야 해요. 매듭의 쓰임은 아주 다양해요. 매듭이 없으면 전통복식과 생활양식, 전통장신구 등이 완성이 안 되는 겁니다. 어디든지 잘 어울리는 매듭은 응용하기에 따라 쓰임새가 아주 많습니다."

매듭에는 답비, 송곳, 손가위가 필요하다. 세 가지 도구를 옆에 놓고 실을 엮어가는 최혜자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엄지손톱 옆 힘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팔꿈치도 아프단다. "매듭을 배울 때 처음에는 힘들어요. 그 시기만 지나면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저는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기초단계에서도 작품을 하나씩 완성하게 하면서 가르칩니다. 그러면 성취감도 느끼고 재미있어 하면서 배울 수 있거든요." 그는 서도미 씨의 한국전통자수공예연구실에서 일주일에 한번 매듭을 가르치고 있다.

최혜자는 짚풀·매듭공예도 경험이 쌓여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부채 선추를 만들던 그가 매듭을 장식할 가락지를 꺼냈다. 매듭실에 끼워 장식도 하고, 작품 끝 부문 마감도 하고, 염주를 만들기도 한다. "매듭 가락지는 색상별로 굵기별로 미리 많이 만들어둬요. 미용실에 갈 때 답비와 실만 가지고 가서 기다리는 동안 수십개씩 만들기도 하지요." 여러 개의 칸으로 나뉜 작은 박스 안에 가득 들어있는 매듭 가락지는 보석처럼 예뻤다.

최혜자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멋진 작품을 만들겠다. 전통공예 명인이 되겠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아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전통공예를 통해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청소년복지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대안학교, 아동센터 등에 봉사를 많이 나갔어요. 짚풀공예를 해보자고 하면 아이들은 처음에는 거부해요. 그러다가 손을 움직여 만들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어요. 어느 순간 눈빛도 달라지죠. 아이들을 보면서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좋은 건지 알게 됐어요. 함께 만들기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마음을 나눌 수 있었죠."

▲ 매듭·짚풀공예가 최혜자 씨가 매듭실을 고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최혜자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중에서도 청소년복지가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인제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니는 중이다. 주변에서 왜 어려운 청소년복지 분야에 뛰어들려고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는 전통공예를 가르치면서 청소년들의 마음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만들기에 집중하면서 마음의 응어리나 상처를 잊고, 작품을 완성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칭찬도 받고 그러면서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도 생기고, 그렇게 자기 안의 열정을 발견하고,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걷기 시작하는 거지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혜자는 짚풀과 전통매듭 공예를 설명할 때 이런 말을 했다. "실도, 짚도 고집이 있다. 전체가 어우러져 엮여야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러자면 엉뚱한 방향으로만 뻗치는 실과 짚을 잘 다루어야 한다." 그는 이제 전통공예를 하면서 마음을 터놓고 청소년들을 만나는 꿈을 꾸고 있다. 손으로 무언가를 함께 만들며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주는 따뜻한 마음이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꿈. 최혜자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에는 '전통공예 청소년상담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최혜자/김해공예협회 회원. 창원 대우갤러리(2011), 마산 소담갤러리(2013), 의령예술촌(2015), 김해공예협회전 등 전시회 다수. 제42회 경남공예품대전 입선. 제7회 전국문화예술축제 금상. 가야대학교 평생교육원 외 출강 다수. 경남아동청소년 상담교육센터 위촉장·감사장 등 청소년상담 교육분야의 수상 다수.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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