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넝쿨단 정미숙 회장이 쌀국수 포의 면을 들어 올리며 먹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돼지고기·닭고기·생선 등 속재료 다양
향신료 고수와 어울려 고소하고 바삭
사골 육수 진한 쌀국수 '포' 상큼 매콤
달콤한 사탕수수 주스 입안 가득 행복

넝쿨단(<김해뉴스> 1월 28일자 18면 보도)은 중국, 베트남, 태국 등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20여 명으로 이뤄진 봉사동아리다. 기자와 밥을 먹기로 한 날, 넝쿨단 정미숙(응원티옘프엉·35·여) 회장은 화려한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차려입고 나왔다. 그는 고국 베트남과 '고향의 냄새'가 그리울 때면 '사이공'에 간다고 했다. 그는 얼른 고향 음식을 소개해주고 싶다면서 아오자이 자락을 펄럭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아오자이가 낯설고 신기했던지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정 회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정 회장은 "서울에 사는 베트남 사람들은 아오자이를 자주 입는다. 김해에서는 처음에 아오자이를 입고 거리를 돌아다녔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요즘은 버스 기사아저씨 뿐만 아니라 행인들도 '참 이쁘다'고 칭찬해준다"며 아오자이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사이공은 다양한 외국음식점이 밀집해 있는 서상동에 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서 오세요." 또박또박 한국말로 사이공의 한성영(투엔·32·여) 사장이 인사를 했다. 그도 베트남 출신이다.
 
정 회장이 한 사장에게 베트남말로 음식을 주문했다. 한 사장은 3년 전 친정어머니와 함께 사이공을 차렸다. 사이공은 김해에 거주하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동상동 전통시장에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와 주스를 파는 사이공 2호점을 열었다.
 
"2005년 6월 10일이었습니다."
 
정 회장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1남 4녀 중 셋째 딸이었던 그는 형제들 중 부모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했다. 통역 일을 하던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6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는데, 한국에 오기 위해서는 부모를 수십 번 설득해야 했다고 했다. 정 회장은 "어릴 적부터 나이가 많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남편과 20세 차이가 난다.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국제결혼이다 보니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했지만 타향살이는 쉽지 않았다. 그는 "아이가 늦게 생긴 덕에 한국에 온 뒤 2~3년 간은 한국어 공부에 매달릴 수 있었다. 시댁 식구들의 배려와 사랑으로 한국어 실력도 쑥쑥 늘어났다. 하지만 아이 교육 문제는 무척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 팃'은 양념돼지고기, 당근, 무 등이 들어 있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정 회장이 한국 정착기를 설명하는 사이 바게트 빵에 채소와 돼지고기 등을 넣은 샌드위치가 나왔다.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먹는 음식이에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베트남 음식이라면 쌀국수 '포'를 떠올리죠. 하지만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도 베트남에서는 포만큼이나 대중적인 음식입니다."
 
돼지고기, 달걀, 닭고기, 생선 등 반미에 들어가는 속 재료는 다양하다. 어떤 재료가 들어갔느냐에 따라 붙여지는 이름도 다르다. 이날 정 회장이 주문한 샌드위치는 '반미 팃'. 팃은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뜻한다고 한다. 정어리 살을 발라 넣으면 '반미 자', 닭고기가 들어가면 '반미 가'다. 취향에 따라 샌드위치를 선택할 수 있다.
 
반미는 보통의 샌드위치보다 맛이 좋았다. 당근과 무를 양념에 무쳐 넣었는데, 씹을수록 아삭하고 달큰했다. 반미에 들어간 양념돼지고기 팃 누옹에서는 바비큐 맛이 났다. 반미에는 중국, 베트남, 태국 등에서 주로 쓰이는 향신료인 고수가 들어가 있다. 고수 향에 거부감이 드는 사람은 주문을 할 때 고수를 빼달라고 하면 된다. 물론 제대로 된 베트남 식 샌드위치를 즐기고 싶다면 고수를 첨가하는 것이 좋다. 정어리 살이 들어간 반미 자는 참치 샌드위치 같았다. 하지만 맛은 참치 샌드위치보다 더 고소했다.
 
정 회장은 다시 한국 정착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자녀의 언어습득 속도가 느려 많이 힘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댁 식구 외에는 딱히 의지할 데가 없었던 정 회장에게 큰 힘이 된 것은 2008년 김해여성자치회의 '친정 맺기 사업'을 통해 만난 '한국의 친정엄마'들이었다. 정 회장은 "친정 맺기 사업 덕에 한국의 친정엄마들과 인연을 맺었다. 오미숙, 허미경, 류재숙 어머니는 항상 '너도 한국 엄마처럼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줬다. 덕분에 아이의 언어능력이 호전됐고, 그 인연으로 넝쿨단 활동에도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베트남식 쌀국수에 소고기를 넣은 '포 보'. 쌀국수에 넣어 먹는 숙주, 상추 등 채소.
 
이번에는 쌀국수 포가 식탁에 올라왔다. 정 회장은 소고기가 들어간 포 보를 시켰다. 포와 함께 숙주, 레몬, 상추, 부추 등 각종 채소가 나왔다. 정 회장은 포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설명했다. '포 위에 레몬을 뿌리고, 면을 들어 그 밑에 숙주와 상추, 부추 등을 넣는다. 거기에 칠리소스와 마늘고추절임을 넣어 준다.'
 
▲ 첨가물을 넣지 않고 만든 사탕수수 주스.
먼저 육수부터 한 숟가락 떴다. 첫 맛은 상큼하고 감칠 듯한 느낌이었다. 칠리소스가 들어가서 그런지 끝맛은 살짝 매콤했다. 면과 숙주, 소고기 한 점을 함께 먹었다. 숙주의 아삭함이 면과 잘 어울렸다. 한 사장은 "족발과 사골 국물에 양파와 생강을 구워 넣고 계피와 고수를 첨가한다. 이를 24시간 동안 냄비 뚜껑을 덮지 않고 끓여 포 육수를 낸다"고 설명했다. 포의 육수에서는 설렁탕이나 곰탕과는 전혀 다른 맛이 났다. 그 이유는 육수의 재료에 있었다. 한 사장은 "모든 재료는 동상동시장에서 구입한다.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시장인 만큼 베트남에서 쓰는 현지 양념 등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이공은 영국인, 캄보디아인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포 한 그릇을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자, 한 사장이 사탕수수 주스를 후식으로 들고 왔다. 설탕 한 스푼 넣지 않고 즙만 짜내 만든 주스였다. 정말 달콤해서 자꾸만 손이 갔다.
 
정 회장은 "베트남 사람들이 포와 반미만큼 자주 찾는 음식이 또 있다. 바로 반세오다. 쌀가루 반죽에 각종 채소, 해산물 등을 얹은 뒤 반달 모양으로 접어서 부쳐낸 음식이다. 다음에 꼭 먹으러 오자"고 제안했다. 반가웠다.

▶사이공 1호점
분성로 335번길 9-1(서상동 91-1번지). 055-337-2322. 쌀국수·포 7천 원. 반미 6천 원, 월남쌈 1만 5천 원. 사이공 2호점은 동상동전통시장 내 서울이불 인근. 2호점에서는 반미와 주스만 판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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