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은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것을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려낸다.
작곡가는 소리로 표현해낼 수 있도록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린다.
"적절한 낮은 음과 높은 음, 음의 길이와 장단이 어우러지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지요." 작곡가 백승태(56) 씨가 작곡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그는 가야와 김해를 담은 곡을 만들고 있다.
그의 집을 방문해 작곡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석태 작곡가 고교 짝
작곡 함께 배우며 음악 길
고3때 첫 가곡 '들국화'

가야·김해의 이야기 담긴
한시 현대시에 곡 붙여
가야 이야기 주제 발표회 준비


백승태는 삼방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악보와 음악회 팸플릿들로 꽉 채워진 책꽂이가 먼저 보였다. 그 옆으로 피아노가 있는 방이 보였다. 거실에는 그가 보는 책, 시집, 음악이론서 등이 꽂혀져 있는 책꽂이 몇 개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널찍한 좌탁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요즘은 피아노를 치면서 작곡하는 작곡가들이 없어요. 컴퓨터로 해요. 세상이 많이 바뀌었죠?" 백승태가 자리를 권하며 미소지었다.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힘이 느껴지는 음색이었다. 그는 주로 거실의 좌탁에 앉아 곡을 구상한다고 했다. 베란다를 통과한 햇빛이 좌탁까지 가득 들어왔다.

백승태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했다. "전 중학교 때까지도 음악을 잘 몰랐어요. 삼화음이 뭔지도 몰랐는걸요." 음악에 재능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악을 잘 몰랐는데, 중학교 3년 내내 음악교사는 음악시간마다 저한테만 질문을 했죠. '왜 이렇게 나만 괴롭히나' 싶었고 아주 힘들었어요." 그는 훗날 자신이 한 여자중학교에서 음악교사를 했을 때 비로소 그 이유를 이해했다고 말했다. "제가 금정여중에서 1년 정도 음악교사로 근무할 때였어요. 어느 날 한 여학생이 저에게 '선생님은 왜 저만 미워하세요. 왜 저한테만 질문하고 자꾸 괴롭히는 건가요'라고 하소연 하더군요. 저는 제가 그렇게 하고 있는 줄 전혀 의식하지 못했어요. 그때 제가 중학교 시절 겪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음악에 대한 재능이나 본능, 혹은 열정을 가진 사람, 언젠가는 음악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를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끌리게 되는 것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거죠."

장남이었던 그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 부모를 돕고 싶었다. "부모님은 제가 인문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를 바랐어요.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난 뒤 인문계고등학교를 선택했습니다.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처음 두세 달 정도는 음악 시험에서 빵점을 받았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었어요." 그런 그가 음악을 하는 한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제 짝이 음악을 하는 친구였어요. 중학교 때부터 트럼펫을 분 친구였죠. 이 친구가 거의 매일을 '함께 음악하자. 작곡 배우자'고 집요하게 꼬드겼어요. 결국 그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죠. 그 친구가 부산시립합창단에서 작곡과 편곡을 하는 작곡가 최석태입니다."

백승태는 최석태 등과 함께 동래고의 연명희 음악교사에게 작곡을 배웠다. "친구 4명이 수업 후 선생님께 화성학, 대위법 등 음악을 전반적으로 배웠습니다. 음대를 목표로 하고 음악을 따로 집중적으로 배운 거죠." 그는 그때 사용했던 음악노트를 아직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1976년에 사용했던 두꺼운 노트였다. 펼쳐보니 연필로 음표를 그리고, 빨간 볼펜으로 중요한 내용을 따로 적어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음악의 길, 작곡가의 길을 향해 조심스러운 첫 발자국을 떼는 고교생 백승태가 그 노트 안에 있었다.

▲ 백승태가 고등학교 시절 음악공부를 한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1976년 음악노트. 음악의 길을 향해 첫 발자국을 뗀 고교생 박승태가 노트 안에 있다.

"2학년 때 부산시교육청이 주최한 학생예능경진대회 작곡부문에서 상을 받았어요. 주제 2마디를 주면, 형식에 맞추어 2도막형식, 3도막형식으로 작곡해서 내는 대회였습니다. 작은 상이었지만 어쨌든 교육감으로부터 상을 받은 것이라 기뻤습니다. 음악으로 받은 첫 상이었습니다. 이 상이 마약(?)이었는지, 음악을 그만둘 수가 없었지요." 2학년 2학기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로 올라가 공부를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대학입시 실패 후 2년간 쉬고 부산 동의대학교 음악학과 1기로 입학했다. "수석일 때만 입학하려 했어요. 제가 2등이더라구요. 그런데 1기라서 그랬는지, 2등도 입학등록금이 전액 면제되더군요. 그래서 입학해 대학을 다녔지요."

백승태는 대학 시절 시간만 나면 혼자서 양산 천성산의 내원사 계곡을 찾아갔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천일고속 버스를 타고 석계에서 내려,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가야 했어요. 그래도 그다지 멀지는 않았고, 그날 돌아올 수 있었죠. 전 조용한 장소를 찾아갔던 겁니다. 주중에 가면 인적이 드물어 고즈넉했지요. 일주일에 두 어 번은 갔습니다. 아마 100번도 넘게 갔을 겁니다. 내원사까지 이어지는 계곡길을 따라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그 자리에 몇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바위에 부딪히는 계곡물의 물방울만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고, 나뭇잎만 볼 때도 있었고,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도 있었죠. 계곡은 조용했지만, 자연의 움직임이 있었고, 그 안에는 또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저는 그 속에 가만히 앉아 머물렀던 겁니다." 그는 "계곡길 끝에는 내원사가 있었지만, 10번 가면 1번 정도 내원사에 도착했다. 늘 계곡 길 중간에 어딘가에 마음을 빼앗겨 도중에 앉곤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시도 좋아했다. 시를 쓰기도 했다. 그래서 대학가곡제를 준비할 때는 동의대 국문학과 교수였던 김창근, 이문걸 두 시인을 찾아가 시를 받아 가곡도 작곡했다. "제가 가곡을 처음 작곡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대연중학교를 졸업했는데, 우연히 그 교지를 뒤적이다가 시 한편을 발견했지요. 주건돈 시인의 '들국화'였어요. 그 시가 좋아 작곡을 했습니다. " '들국화'는 백승태가 2003년에 첫 번째 가곡집 <들국화>를 발간할 때 대표제목이 됐다.

▲ 작곡가 백승태의 첫 가곡집 <들국화>와 두 번째 가곡집 <산의 마음 어머님>.
그에게 "음악에서 작곡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는 "작곡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작이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생각한 모든 것을 조합해서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글, 잘 쓴 글을 보면 적확한 단어가 정확한 위치에 있죠? 단어가 문장 안에서 제 자리에 있을 때 그 글은 잘 쓴 아름다운 글이고, 또 좋은 글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의 높낮이를 어느 시점에서 잘 줬을 때, 적절한 낮은 음과 높은 음을 잘 나열했을 때, 그 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죠. 음의 높낮이, 음의 길이와 장단이 어우러져 음악이 되는 겁니다." '훌륭한 곡' '유명한 음악'이라는 말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이라는 설명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음악이 어떤 것인지 마음에 잘 와 닿는 설명이었다.

그는 작곡의 세계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도 말했다 "'새 것', '신상품'을 싫어하는 것은 현재 이 세상에서 아마 순수창작음악의 세계밖에 없을 겁니다. 관객도 없고, 투자도 없어요. 그래서 작곡가들이 힘들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어디선가 명곡으로 찬사 받으며 연주되고 있을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곡도 발표 당시에는 신상품이었을 거란 말입니다. 21세기인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순수창작음악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투자가 없는 상황이라 안타까워요. 특히 더 아쉬운 건 우리 음악, 우리 가곡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1999년부터 김해에서 살고 있는 그는 김해의 역사와, 풍경, 정서를 담은 가곡을 많이 작사했다. "송은복 시장이 재직할 때였어요. 우연히 김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옛 한시 몇 편을 보았어요. 그 시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송 시장을 직접 찾아가 이런 시를 김해의 가곡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의했어요. 시의 지원을 받아 동료 작곡가, 선배들께 부탁해 함께 작곡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야 그 혼의 소리-가야의 노래>라는 합창곡집이 나올 수 있었죠. "

그는 옛 한시 뿐 아니라 선용, 전기수, 장정임 등 김해 출신 혹은 김해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드는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그의 김해사랑에 감동한 동료작곡가들도 여러 곡을 작곡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창작곡 발표회 '아름다운 김해로'를 공연하기도 했다. 그는 김해 출신의 아동문학가 선용과 함께 곡을 만들고 있다. "선용 선생님은 동래고 선배님입니다. 김해라는 공통점이 하나 더 생겼지요." 그는 "김해에 와서 가야를 알게 됐다. 아무래도 '가야'가 나를 붙들고 있는 것 같다. 가야 이야기를 작곡 중이다. 올해 11월에는 개인작곡 발표회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김해는 보물이 많은 곳입니다. 그 아름다운 보물을 우리 가곡으로 만드는 일은 계속 됩니다. 그 노래를 다 함께 부르는 꿈을 꿉니다."

≫백승태
작곡가. 한국작곡가회 상임이사. 서울 작곡가포럼 부회장. 을숙도 창작음악축제 집행위원장. 한국음악협회 김해지부 지부장. 국립창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외래교수. 가곡집 <들국화>, <산의 마음 어머님> 발간. 개인작곡발표회 6회.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