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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진술과 더욱 젊어진 문장조명숙 작가 네번째 창작집 '조금씩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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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5.06.17 09:00
  • 호수 227
  • 11면
  • 박현주 기자(phj@gimhaenews.co.kr)

   

 

중단편 9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통해
삶에 휘둘리지 않는 작가 뚝심 엿보여

"달라졌다. 조명숙 작가의 소설이 달라졌다." 조명숙 작가의 네 번째 창작집 <조금씩 도둑>(산지니 펴냄)을 읽고 난 다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그의 소설이 새로 발표될 때마다 읽어왔던 터라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조명숙의 소설은 <조금씩 도둑>과 그 이전의 소설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의 소설이 조금은 다정하고,  정감이 있는 푸근한 소설이었다면 <조금씩 도둑>은 훨씬 담담한 진술방식을 택하고 있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남아있는 수분 같은 걸(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말끔하게 닦아낸 다음 독자에게 내밀고 있다고나 할까. 또 하나는 작가가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젊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작가에게 '담담한 진술' '젊어진 문장의 느낌'이라는 말을 했더니, 작가는 "다행"이라며 웃었다. 작가는 "초창기 작품들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진솔한 의미와 상황을 문장에 담게 됐다. '튀지 않는 진술'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며 "나이가 든 만큼 좀 노련해진 것 같다고나 할까. 젊었을 때처럼 애를 쓰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창작집 <조금씩 도둑>에는 9편의 중단편이 수록됐다. '이치로와 한나절', '점심의 종류', '러닝 맨', '가가의 토요일', '거기 없는 당신', '사월', '나비의 저녁', '조금씩 도둑', '하하네이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매일 매순간의 시간을 '꾸준하게 메워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실 등장인물들은 제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감당하다 못해 쓰러지기 직전이다. 그 삶에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 진술할 수 있는 작가의 뚝심은 이 창작집 책갈피마다 엿보인다.
 
'점심의 종류'는 세월호로 딸을 잃은 여인 영애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 어디에도 세월호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의 몇 페이지가 넘어갈 때까지 지독한 아픔을 견뎌내는 여인의 독백인 줄로만 알았다가 세월호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소설의 배경은 오는 2024년. 가족을 잃은 채 10년을 살고 있는 한 여인의 일상과 기억을 보여준다. 딸 유미를 그만 잊으라고 말하는 동생 영미를 향해 물이 담긴 컵을 던지는 영애. 소설을 통 털어 영애가 보인 격렬한 행동은 이것이 전부이다.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줄까?" 딸을 잃은 채 10년 째 살고 있는 어머니의 존재 이유에는 이런 슬픔이 짙게 배어있었다. 그 어머니의 하루 중 몇 시간을 다룬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가가의 토요일'은 부산 지하철 수영역 입구에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한 남자 가가의 토요일을 그린 소설이다. 태어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 가가는 '가가'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가가는 새벽에 일어나 작은 수레를 끌고 가서 정성을 다해 맛있는 프렌치토스트를 만든다. 성실한 노동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던 가가는 수영로터리를 지나가는 시위대열과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은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렸던 부산의 하루와 가가의 토요일을 담고 있다. 1987년 6월 부산역 광장에서 뻥튀기를 팔던 가가는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과 외침 속에서 귀가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가가는 '가가'를 외치며 그 시위대와 함께 걸었다. 그때가 다시 온 것인가 하면서 가가는 2005년의 토요일에도 시위대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소리들은 다시 사라져버리고 가가는 혼자 낡은 슬레이트 집으로 돌아간다.
 
조명숙 작가는 "전통적인 소설 플롯을 버리고,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팽팽한 긴장으로 계속 이어가는 이런 방식을 '지진성 플롯'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주변의 모든 것이 소설로 보인다. 주위의 힘든 상황, 참아내기 힘든 사람들도 모두 객관화 되어 보인다. 그런 것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잔영만 남았을 때 어느 순간 그 잔영이 문장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하하네이션'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작가의 꿈을 꾸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장차 작가가 되려고 했지만,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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