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모습
섬세한 문장과 촘촘한 심리묘사로 담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황선미 글·신지수 그림, 비룡소 펴냄, 118쪽, 9천 원
어린이를 모르면 어린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른 자신의 이야기만 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이가 어른에게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도 있을 것 같다. 어린이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어른이 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에는 어린이가 듣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녹아 있다. 비를 맞으며 낭떠러지에서 구두를 든 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표지 그림. 이 그림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양심'이 아프고 불안해 보인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힘의 논리는 아이들의 동심을 깡그리 무시한 채 양심조차 과열경쟁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져 내리게 한다. 왕따문제는 과열 경쟁을 부추기는 어른들의 문화가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은 왕따문제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학교가 배경인데, 친구들 간의 갈등양상을 통해 성장해 가는 어린이들의 일상을 엿보게 한다. 또 발달단계에 따른 성장, 도덕성, 인격 형성 등 성장 동화로서의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책 속 사건과 비교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전 세계가 사랑하는 동화 작가 황선미의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은 구두 한 짝에 담긴 아릿한 비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열한 살 소녀 주경은 같은 반 같은 학원에 다니는 혜수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괴롭힘을 당한다. 학교에서 반장으로 늘 활발하게 친구들을 이끌고 다니는 혜수에 비해 주경은 조금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다. 주경은 혜수의 보이지 않는 마음 폭력에 끙끙 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주경은 혜수의 말 한마디에 같은 반 전학생 명인이의 구두를 처리하는 일에 가담하게 된다. 그 날 이후 주경이의 마음에는 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지게 된다.
신지수 작가의 그림은 비가 내렸다 개었다 하는 날씨처럼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는 주경이의 마음과 주변 환경을 따뜻하고 세련된 터치로 담아냈다. 한 장이 끝나는 면마다 뒷 이야기가 만화 장면으로 표현된 것은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준다.
왕따는 과열경쟁 속에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진 아이들의 자구책이 만들어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상처를 주는 아이, 받는 아이 모두 힘들다. 이 책은 왕따는 어른들의 변질된 사랑의 결과물이 아닌지를 돌아봐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또래관계가 만들어지는 시기인 초등학교 3~4학년 어린이들은 책 속 등장인물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부당한 일에 당당하게 맞서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성장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자녀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임홍자
영운초등학교 전담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