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당에서, 부처님 머리 위에 작은 집 모형이 달려 있는 걸 본 적이 있는지. 이것을 닫집이라고 한다. '닫'는 '따로'의 옛말이다.
그러니 '닫집'은 집안에 '따로 지어놓은 또 하나의 집'을 말한다. 절의 닫집은 섬세하게 짜인 공포와 화려한 장식, 그리고 허공에 매달린 기둥을 특징으로 한다. 공중에 매달린 화려한 궁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닫집은 아미타경에서 묘사한 극락정토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해에서 닫집을 만들고 있는 소목수 장경호(43) 씨를 만났다.

부산공예고 목칠공예과에서 목공 배워
각종 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하며 두각
1991년 전국대회 가구제작 부문서 1위

1993년 대만 국제대회에 국가대표 출전
시간내 만든 2인에 들고도 장려상 받아
제대 후 닫집 접해 극락세계 제작 심혈


김해에 닫집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장경호 씨를 만나러 가면서 제작중인 닫집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작중인 닫집을 볼 수는 없었다. 장경호의 작업장 '가야공예사'는 삼계동 643-2에 있다. 큰 도로에서 동남정신병원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가, 처음 등장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가야공예사의 마당이 보인다. 쌓아둔 나무와 트럭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50평쯤 되는 널찍한 작업장이 나온다. 금방 나무를 켠 듯 바닥에 톱밥이 내려앉은 기계들을 피해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장경호 씨는 귀 옆에 연필을 꽂고 있었다. 나무에 선을 긋는 연필인데, 마치 처음부터 귀 옆에 달려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장경호는 1973년 부산 남구 문현동에서 위로 누나 둘이 있는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만들기를 잘 했다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래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부산공예고(현 한국조형예술고) 입학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 장경호 씨가 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공예고 목칠공예과에 입학했어요. 그 안에서도 목공, 석공, 칠공예 등 여러분야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목공을 선택했지요.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지요. 제 성격에도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입학할 때부터 기능경기대회에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2학년이 되면 지방기능대회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을 선발해 기능경기를 위한 연습을 집중적으로 시켰는데 저도 뽑혔습니다. 정규수업 외에 나머지 시간은 오직 가구제작 연습만 했어요. 막차가 끊길 때까지 학교에서 연습을 하고, 일요일이나 방학 때도 학교에 나가 연습을 했어요. 열일곱 살의 저는 좀 무던한 성격에 참을성도 많았던가 봅니다. 그러니 그 힘든 시간을 견뎌냈겠죠." 어느 날에는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학교가 있는 동구 초량동에서 문현동까지 걸어가다가 불심검문에 걸린 적도 있었다. "겨우 집으로 돌아갔더니 어머니는 늘 그랬듯이 잠도 안 자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봐 불심검문 이야기는 안했어요," 막내였지만, 장남이나 마찬가지였던 그는 속 깊은 아들이었다.

그렇게 고된 연습을 한 결과, 그는 2학년 때 부산기능경기대회 가구직종에서 3위, 3학년 때 2위를 수상했다. 그리고 3학년 때 26회 전국기능경기대회(1991)에서 가구제작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가구제작 분야에서는 공예고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 수상이었다. 

▲ 작업장 한쪽에 가지런히 정돈된 도구들.

"전국대회에 나갔을 때, 사실상 마음을 비우고 갔어요. 수도권에서 가구제작을 하는 사람들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전국대회는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대회를 진행하는지도 잘 몰랐기 때문이었죠. 24시간동안 '협탁'을 만들라는 과제가 나왔어요. 4일 동안 만드는 거였죠. 마지막 날 채점이 끝난 뒤 다음날 오전에 결과가 발표됐는데, 그 사이에 누가 1등이라더라 하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저도 발표 직전에 언질을 받았죠. 1위, 금메달이라는 발표를 듣자 멍해지고, 기분이 묘하더군요. 진짜 맞나? 하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정수직업훈련원과 수도권의 실력자들이 버티고 있는 서울대회에서 부산공예고 3학년 학생이 거둔 성과는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이야기는 1993년에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준비로 넘어갔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구제작으로 단 한명이 출전합니다. 국가대표인 셈이죠. 저와 1992년 1위 수상자 2명이 평가전을 치렀습니다. 1992년 수상자는 학교 선배였어요. 선배와 둘이 나란히 서서 같은 자재로 심사위원 앞에서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잔인했죠. 떨리기도 많이 떨렸어요. 이제는 제가 그 심사를 하는 사람이 됐지만요. 3차에 이르는 평가는 엄격했어요. 마지막에는 서로 분필을 들고 상대방이 만든 가구의 잘못된 부분을 체크하라고 했어요. 엄격하게 진행된  평가 결과 제가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하게 됐어요."

그가 출전한 제32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1993)는 대만에서 열렸다. 가구제작 분야에는 각국의 내로라 하는 대표선수 30여 명 정도가 출전했다. 과제는 수납장, 책상이 들어가 있는 키 큰 전화박스 같은 복합가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통역도 없었고, 처음 보는 기계도 있었어요. 뭘 물어보고 싶어도 말이 안 통하니, 첫날은 다른 사람들이 기계를 어떻게 사용하나, 어떻게 만드나 살펴보느라 시간을 다 썼어요. 눈치껏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어쨌든 시간 안에 가구를 다 만든 사람은 저와 대만사람 두 명뿐이었어요. 그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어요." 국제대회의 텃세 같은 게 있었던 것일까? 그는 시간 안에 가구를 완성한 최종 2인에 들었지만, 대회장상인 장려상을 받고 귀국했다. 귀국해서는 대통령 포장증과 훈장을 받았다.

군대를 다녀온 뒤 그는 나무 만지는 일을 찾았다. 합판은 만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원목으로 불사를 하는 일과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됐다.

"부산에서 닫집을 만드는 박일규 씨 밑에 들어가 8년 여 함께 일을 했어요. 처음 만나서 일을 시작했을 때, 내가 하는 걸 보더니 바로 도면을 주며 만들어 보라고 하더군요. 만들어내고 나니까,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한 도면을 주었고, 또 만들어냈고 그런 식이었지요."

그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전통기술이 잘 이어지지 않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하며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도면을 보고 혼자 만들어내면서 익혔지요."

그는 그러면서 "도면의 난이도가 점점 어려워질수록 성취감도 커져갔죠. 주위에서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젊은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긴다며 걱정들도 했지요. 하지만 제가 만들어내는 걸 보고는 인정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조금씩 이름도 알려지기 시작했죠. 저를 믿고 일을 맡기는 분들이 많아졌는데, 저는 한 번도 못하겠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어요. 어려울수록 만들고 나면 성취감이 더 컸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25세 때 서울 천태종 관음사의 불사를 맡았다. "400평정도 크기 불당의 한쪽 벽면과 닫집까지, 모두 나무로 불교장식을 제작하는 큰일이었지요.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어요."

다시 닫집 이야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닫집은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정토의 모습이 배경이다. 아미타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극락세계에는 일곱 겹의 난순(欄楯, 欄干)과 타아라나무 기둥이 있고, 방울과 금·은·유리·수정의 네 가지 보물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하늘에서 음악이 들리고 대지는 아름다운 황금색이며, 주야로 세 번씩 천상의 꽃이 떨어진다. 백조·앵무·공작 등이 노래를 부르며, 이는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노래로, 이 노래를 듣는 자들은 모두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를 생각한다. 이 새들은 모두 아미타불에 의해 화작(化作)된 것이다."

글로 읽기만 해도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나무로 조각하고 짜 맞추어서 닫집으로 표현하는 건 얼마나 섬세하고 어려운 작업일까. 장경호는 전통기술의 소중한 가치를 전승하는 마음으로 닫집 만드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가구를 제작하는 일, 가구제작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도 계속 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다 돌아서서 보니 그는 어느새 작업대 위에 잘라둔 나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광의 빛 속에서 그는 마치 한 그루 나무처럼 우뚝 서 있었다.  

≫장경호
1991년 제26회 전국기능경기대회 가구제작 1위, 1993년 제32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장려상, 부산기능경기대회·전국기능경기대회·국가대표선수 선발 평가경기·경남기능경기대회 가구직종 심사위원. 2003년 문화재 보수기능사 자격증, 1993년 2644호 대통령 포장증 및 훈장, 2010년 부산기능경기위원회 표창장, 2010·2013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공로패.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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