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물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샌들용 짧은 양말을 만든 데에서 시작됐다. 지금처럼 뜨개바늘로 뜨는 수편물은 13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돼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양말 짜는 기술이 보급되면서 전해졌다. 편물기계가 발명되면서 편물은 산업의 한 분야로 발전했다. 한 코 두 코 직접 손으로 뜨는 손뜨개는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기법으로 발전했고, 공예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김해의 편물공예가 김기순(51) 씨를 만났다.

▲ 김기순의 작품. 엄마와 딸을 위한 옷과 모자.
고교 때 편물기능대회 학교 대표로 출전
손뜨개 거장 김말임 씨에게 기술 전수
3년 후 전문과정 '보그' 강사자격증 따
손뜨개 관련 서적 자료 보며 계속 연구
인형·생활소품 등 만드는 강좌도 계획

김기순은 수 년 전 친구와 함께 내동에서 운영하던 공방을 닫고 집에서 손뜨개를 하고 있다. 그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현관문을 열자, 손뜨개로 만든 작은 인형이 장식된 콘솔이 눈에 들어왔다. 서랍장, 식탁, 의자 모두 손뜨개 작품으로 장식돼 있었다. 욕실 입구에서 웃고 있는 인형, 싱크대 아래의 발판, 베란다 쪽 작업대 위에도 손뜨개 작품들이 즐비했다. 거실 바닥에는 가늘고 흰 실로 뜬 넓은 레이스 매트가 깔려 있었다. 역시 가는 분홍색 실로 뜬 파라솔은 '저걸 어떻게 들고 다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소파에는 알록알록하게 뜬 쿠션이 놓여 있었다. 그 쿠션을 베고 낮잠을 자면 예쁜 꿈을 꿀 것만 같았다. 

김기순은 1964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평소 뜨개질을 조금씩 했어요. 저는 집 옆에 있는 수예점에 자주 놀러갔어요. 수예점에 가서 스킬자수, 수예, 편물, 매듭 같은 물건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수예점 언니에게 뜨개질을 처음 배웠어요. 아버지는 공부하라고 나무랐지만 저는 손뜨개가 좋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 가정시간에 손뜨개 수업이 있었다. "선생님으로부터 '꼼꼼하게 잘 한다'는 칭찬을 들었어요. 선생님 눈에 들어서 편물기능대회에 나갈 학교대표 2명 중 한 명으로 뽑혔죠. 그런데 막상 대회에 나가서는 긴장한 탓이었던지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대회 체질이 아니었나봐요." 당시의 일을 들려주며 김기순은 소녀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살짝 미소를 지었다. "결과가 안 좋아서 손뜨개를 잠시 놓았어요.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가봐요. 그때 결과가 좋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김기순은 충주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 가정학과 전공이었다. 그때 등공예, 고전매듭, 지점토 등 다양한 분야의 공예를 많이 배웠다. 그는 손으로 만드는 일이 좋았다. 등공예나 종이인형은 자격증까지 땄다. 여기에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보탰다. 하지만 그는 다시 손뜨개로 돌아왔다. 손뜨개를 다시 하고 보니,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좋다고 한다.

대학을 마치고 1986년 충주로 돌아간 그는 부모의 가게가 있는 충주 교현동에서 '꾸밈수공예'를 열었다. 손뜨개와 공예를 함께 가르치고 작품을 팔기도 하는 공방이었다. "그때부터 뜨개질을 본격적으로 했지요. 그런데, 공방 운영은 엉망이었어요. 실을 갖다 놓을 때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몇 가지만 들여놓으면 될 것을 모든 색의 실을 다 갖추는 식이었죠." 그때의 일을 들려주며 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부산에서 대학을 다닐 때 '충주·충북 대학생모임'에서 만난 남편과 1987년 결혼을 했다. 그리고 1990년까지 '꾸밈수공예'를 운영하다가 그해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부산에서 몇 달을 살다 곧바로 김해로 이사를 왔어요. 충주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김해로 올 때도 꾸밈수공예에 있던 실을 그대로 들고 다녔어요. 실이 있었으니 뜨개질은 계속 했지요.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동안에도 습관처럼 뜨고 있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면 뜨개질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실과 바늘을 항상 들고 다닐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부족한 부분을 느꼈어요. 편물제도를 배워야 나만의 창작 작품을 만들 수 있겠구나 싶더군요. 당시에는 부산에도 제도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어요. 서울로 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선생을 찾았지요."

김기순은 서울 인사동의 '김말임 손뜨개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김말임 씨는 우리나라 손뜨개 분야에서 거장으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1976년부터 니트전문점을 운영하면서 일본에서 수편물 강사와 사범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가다. 일본은 유럽에서 시작된 현대편물을 우리보다 먼저 받아들인 덕에 상당히 활성화돼 있다. 그는 일본편물문화협회의 손뜨개 전문 '보그' 과정을 가르칠 수 있는 김말임 선생에게서 정식으로 배웠다. 강사자격증을 따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의상디자인학과 과정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과정은 배울 때 무척 힘들어요. 하지만 기본을 제대로 배워야 창작을 할 수 있지요. 김 선생 스튜디오에는 특이한 손뜨개 관련서적도 많았어요. 그 책을 보면서 사야 할 책은 샀어요. 실도 사고, 무척 바쁘고 재미있는 시간들이었어요."

3년 과정이 끝난 후에도 그의 서울 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 후 2년간은 고급심화과정을 배우며 선생이 여는 워크숍에 다녔다. 김 선생은 새로운 기법을 가장 빨리 접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주로 손뜨개 강사들이 워크숍에 와서 새 기법을 배웠다. 그는 새 기법을 배우는 것이 좋아서 2년간 한 달에 한번 정도 서울에 갔다. 차비, 수강료, 재료비, 책값 등 투자한 것이 많았다.

김기순은 그렇게 2005~2010년 서울을 오가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실력을 쌓았다. 그때 산 책은 지금도 곁에 두고 들여다보며 연구하고 작품을 만들 때 접목도 한다. 일본 등 외국서적에서 국내 여성잡지의 손뜨개 특집 부록까지 그가 간직하고 있는 자료는 다양하다. 그냥 손으로 뜨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가 펼쳐 보여주는 서적 속의 제도를 보니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무늬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어떤 색의 실은 어느 부분부터 시작하는지 전문과정을 배우지 않으면 제도 도면을 보기조차 쉽지 않을 듯했다.

"제도 과정을 배우고 나면 좋은 디자인을 볼 수 있게 되죠. 그 디자인들을 응용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숄 하나를 만들어도 몸판 따로 레이스 따로 하는 식으로 좋은 디자인을 찾아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용용해 만들 수 있어요."

김기순은 제도 작업이 무척 재미있고 그래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손으로 하는 건 다 잘 했어요. 눈썰미가 있다, 일머리가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요. 대신에 저는 속도감이 없어요. 거의 모든 일에서 그런 편이에요. 단점이죠. 하지만 그만큼 꼼꼼하고 또 섬세합니다. 작품을 만들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 풀어 버립니다.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거죠. 남들은 눈에 뜨이지도 않는다고 해도 저는 용납이 안 돼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만 더 크게 보이는 걸요. 중간에 실을 끊어 부분 수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정성과 노력, 모든 마음을 다 쏟았으니 더 소중하지요. 그래야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저는 늘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김기순은 한 번 실을 잡으면 밤샘작업도 많이 한다. 작업에 푹 빠져드는 것이다. 그 안으로 흡수되어 버리는, 빨려드는 느낌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손뜨개로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지 만들 수 있지만 그는 창작활동을 위주로 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해공예협회에서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공간이 생기면 인형, 생활소품 등을 손뜨개로 가르쳐볼 예정입니다. 손뜨개를 퀼트처럼 '실, 바늘, 만드는 방법, 완성품 사진' 등을 넣어 패키지화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어요."

김기순은 인터뷰 도중에 자료를 가져오겠다며 여러 번 자리를 떴다.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 봤더니 베란다 쪽의 작은방이었다. 그 방에는 그가 지금까지 모아둔 손뜨개 관련 자료와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그의 말을 '작은 보물창고'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손뜨개 작품을 만들어 왔는데,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작은 스웨터와 큰 스웨터 두 개를 보여주었다. "작은 것은 지난해 결혼한 딸아이가 너댓 살 무렵에 입었던 옷이에요. 큰 것은 남편 옷인데, 지금도 생각나면 가끔 입지요. 딸아이가 결혼하면서 저 옷을 가져가고 싶다고 했지만 양보하지 않았어요. 제게는 소중한 작품이니까요." 그는 어린 딸이 입었던 스웨터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김기순
김해공예협회 부회장, 한국손뜨개협회 편물기능사, 일본
편물문화협회 강사, 일본편물문화협회 보그과정 이수, 제8회
공예예술대전 입선, 홈플러스 내동점·진영문화의집 전 강사.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r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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