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넘다 두령에게 끌려간 뒤
 '떠도는 백성을 위한 탄식' 시 읊자
"그대가 어무적, 어 선비 맞소이까"

연산군 재위 6년 1500년 무렵에, 후줄근한 차림의 선비가 문경 새재를 넘고 있었다. 선비가 한양에서 괴산을 지나 새재길로 접어든 것은 한 시진 전이었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얼룩이 진 무명 두루마기를, 벗을 생각을 하지 않고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이 시름을 잔뜩 짊어진 걸음걸이였다. 
 
정수리에 꽂히는 볕이 화살처럼 날카로운 음력 칠월의 한낮이었다. 계곡을 끼고 있는 길은 돌투성이였다. 문득 발아래를 내려다보던 선비는 너덜거리는 짚신에서 비져나온 버선코를 보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몸을 돌려 계곡으로 내려간 선비는 봇짐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두루마기 차림 그대로 물에 뛰어들었다. 빨래를 하는 건지 목욕을 하는 건지 물 속에서 한바탕 법석을 떨더니, 물 밖으로 나와 젖은 옷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었다. 고쟁이 차림으로 편편한 바위에 벌렁 드러누운 선비는 곧 잠이 들어버렸다.
 
대여섯이나 되는 장정들이 계곡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한 식경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바지며 저고리를 입었는지 걸쳤는지 모를 차림에다 봉두난발이고, 칼이며 몽둥이 같은 것을 든 장정들은 하필 선비가 자고 있는 바위로 올라갔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잠들어 있는 선비를 발견한 장정들은 발로 툭툭 건드려 깨우고, 상투를 잡아당겨 강제로 꿇어앉혔다.
 
"왜 이러는 것이냐? 내가 뭘 잘못했기에?"
 
우정 목소리를 높이던 선비는 곧 사태를 파악한 듯 입을 다물었다. 새재에 도적이 있다더니,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겁을 내기는커녕, 턱으로 물가에 던져둔 봇짐을 가리켰다. 도적 하나가 봇짐을 들고 와 펼치더니 뭐라고 투덜거렸다. 봇짐에는 약간의 노잣돈과 종이뭉치밖에 없었다. 도적들은 선비의 궁색한 처지가 한심했던지 몇 마디 더 투덜거리더니, 둘둘 말린 종이를 펼쳤다. 종이에는 한문이 쓰여 있었다.
 
"난 이 시꺼먼 글잔지 뭔지를 볼 때마다 영 신간이 편하질 않아. 글자 쓰는 인간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도적 중 하나가 퉤! 하고 종이에 침을 뱉더니 손아귀에 쥐고 구겨버렸다.
 
"나도 그래. 도대체 뭐라고 쓴 건지 모르는 우리 같은 무지렁이 속여 먹고, 세금 매기고, 공역 매기는 데 쓰는 게 글자지."
 
또다른 도적이 덩달아 침을 뱉었다.   
 
"이봐, 근데, 여기 뭐라고 썼냐? 문경 새재길 삼십 리 무릉도원 가는 길이라고 썼냐, 우리 임금 성군(聖君)이라 태평가를 부르자고 썼냐?"
 
두 도적이 으름장을 놓았다. 도적들의 행태를 지켜보던 선비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문경 새재길이 무릉도원 가는 길도 아니고, 우리 임금이 성군도 아니란 건 그대들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건 그대들에 대해 쓴 것이다."
 
"이런 약아빠진 인사를 봤나. 모가지 달아날까 에지간히 겁이 나는 모양이군. 우리 말이 옳소 하면 그래 그만 가 봐라 하고 금방 놓아줄 줄 알았느냐? 고약한 놈이로다. 근래 우리를 잡으려고 기찰을 풀었다더니, 네 놈이 바로 그 놈이렷다? 묶어라. 큰 놈을 하나 잡았으니 두령에게 끌고 가자."
 
도적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선비를 꽁꽁 묶었다. 그러더니 박달나무 사이로 난 험준한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반은 걸리고 반은 질질 끌다시피해서 도적들은 선비를 깊은 골자까지의 널찍한 곳에 데려갔다. 선비는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살폈다. 마을 하나는 될 만큼 꽤 여러 채의 귀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도적들의 산채가 분명했다. 선비는 놀란 티를 내기는커녕 더욱 침착하게 산채를 둘러보았다. 잠시 머물려고 대충 지은 산채가 아니라 몇 해 살아온 정갈한 귀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도적의 산채가 아니라 어떤 별천지에 들어온 것 같았다.
 

▲ 그림=박점숙 화가

선비가 구경하러 모여드는 부녀자와 노인,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백옥같이 흰 얼굴에 적당히 큰 키, 아담한 몸집을 한 남자가 나타났다. 도적의 두령이라기보다는 부잣집 도령처럼 보이는 젊은이였다. 어쩌다 저처럼 준수한 사람이 산채 두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선비는 속으로 끌끌 혀를 찼다.
 
신분의 차별이 엄격한 사회에서 영리하고 뜻이 크면 고단한 삶을 살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복수심에 가득 찬 젊은 임금은 편협했고, 작은 죄도 신하를 포악하게 다루었다. 양심이 있는 사림파 관료들은 낱낱이 숙청되었고, 임금과 함께 사치와 방종을 일삼는 모리배들이 멋대로 법을 만들고 영(令)을 내리고 있었다. 뱀과 같은 법과 호랑이 같은 영이 날마다 우박과 폭풍처럼 쏟아지니 과중한 세금과 군역을 감당하지 못해 고향을 버리고 유리걸식하다 목숨을 다하거나 무리를 지어 도적이 되는 백성이 부지기수였다. 
 
선비는 도적의 무리 한가운데 있었지만 그들이 두렵지 않았고, 또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도 않았다. 한때 착한 백성으로 살던 사람들이 무리지어 도둑이 되었는데도 임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탄하고 있을 때, 두령이 구겨진 종이를 내보이며 물었다. 두령은 계곡 바위에서 강탈당한 바로 그 종이를 들고 있었다. 말끔히 다림질이 되어 있는 것이 선비가 지니고 있을 때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때 두령이 불쑥 물었다.  
 
"이 시를 아시오?" 
 
선비는 이윽히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다.
 
"알다마다. 내가 쓴 것인데 어찌 모르겠소."
 
꼿꼿한 선비의 말에 두령이 허허 웃으며 다시 말했다.
 
"이처럼 위험한 시를 품고 다니다니, 겁이 없으시군요. 글의 임자라는 말은 믿을 수 없지만, 이 글을 지녔으니 돌려받고 싶으면 몇 구절을 읊어 보시오."
 
선비가 거침없이 읊기 시작했다.
 
"백성들 어렵구나/ 백성들 어렵구나/ 흉년에 그대들은 먹을 것이 없구나/ 나는 그대들을 구제하고 싶지만/ 그대들을 구제할 힘이 없도다/ 백성들 괴롭구나/ 백성들 괴롭구나/ 추위에 그대들은 이불도 없구나/ 저들은 그대들을 구제할 힘이 있으나/ 그대들을 구제할 마음이 없도다…."
 
눈을 지그시 감고 듣고 있던 두령은 고개를 끄떡이더니 직접 선비를 묶은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선비의 옷을 가져오게 했다. 선비는 주섬주섬 무명 바지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챙겨 입었다. 두령은 선비를 산채 깨끗한 곳으로 안내했다.  
 
"문경 새재 두령, 홍길동(洪吉童)이오. 이 시는 '떠도는 백성들을 위한 탄식(流民歎)', 지은이는 어무적(魚無迹)이라 알고 있소이다. 그대가 어무적, 어선비가 맞소이까?"
 
선비는 물 한 사발을 달라 해서 먹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천한 출신이 글로써 이름을 얻은들 무엇 하리오? 지방의 한 벼슬아치가 관비를 탐하여 어물쩍 낳은 자식이 어무적이라 하더이다."
 
홍두령이 선비의 손을 덥썩 잡았다.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어선비가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는 노래(新曆嘆)'에서 천년에 한 번씩 꽃이 피고 질 만큼 세월의 흐름이 지체되어서 시절이 늘 요순이 다스리는 것과 같으면 좋겠다고 읊은 것이 꼭 내 마음과 같았소."
 
기뻐 어쩔 줄 모르던 홍두령은 잠시 뒤 정색을 하고 말했다.
 
"'떠도는 백성들을 위한 탄식'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이 좀 있소이다. 그대는 이 난세를 임금의 성총에 의지하여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오늘 나와 함께 그 이야기를 좀 합시다."
 
청년 하나가 저녁상을 들고 왔다. 어무적은 한사코 사양하고 찬 물로 배를 채웠다.
 
"떠도는 백성들의 탄식이 담긴 밥은 먹을 수 없소이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으니 하룻밤 신세는 지지 않을 수 없구려."
 
광포하고 잔혹한 형벌 일삼던 임금
그리고 산채 사람들의 운명 앞에서
선비는 좀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뜻하지 않게 산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어무적은 갖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아무리 세력이 크다 해도 도적의 무리는 결국 토벌당할 것이고, 엄중한 죄를 받을 것이었다. 가뜩이나 광포하고 잔혹한 형벌을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이삼백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산채 사람들의 운명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글을 배워 세상을 이해하여 그것을 쓴다는 것이 너무 힘들구나. 차라리 일자무식 관노로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무적은 밤새 뒤척였다. 경상도 김해부 영운마을에서 태어난 어무적의 아버지는 사직(司直) 어효량(魚孝良)으로 한양에서 사대문(四大門)의 파수를 맡고 있다가 김해부로 내려왔다. 세조 때 통신사의 종사관을 지낸 어효선(魚孝善)이 이주한 이래 영운마을에는 함종(咸從) 어씨(魚氏)가 많이 살고 있었다. 어효량은 관비(官婢) 여실이 몹시 어여쁘고 현숙한 것을 보고 데리고 살았다. 여실에게서 마치(末迹)와 무치(無迹) 두 아들이 태어났는데, 특히 영특해 어효량이 아끼고 사랑한 무치가 바로 어무적이었다. 
 
관비의 아들은 관노(官奴)로 사는 것이 운명이었다. 여실을 지극히 아끼던 어효량은 종친들과 김해부사의 도움을 받아 여실을 속량시켜 첩으로 삼고 마치, 무치 두 아들을 서자(庶子)로 삼았다. 어무적은 아버지의 배려와 그의 영특함을 알아본 일가친척들의 도움으로 서당에 다니고, 글동무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 천성이 워낙 정직하고 사람에게 진실한 어무적은 열다섯이 되기 전에 이미 고을 시회(詩會)에 참석할 정도로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그러나 속량이 되었다 해도 '서얼금고법'이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을 즈음이라 과거에는 응시할 수 없었다.  
 
어무적의 방랑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무적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처지가 비슷하고 뜻이 맞는 동무를 찾아 자주 방랑했다. 서러움이 가슴에 맺혀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무적은 방랑길에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보잘 것 없는 지위마저 사치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중앙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 지방에서 백성에게 자행되는 관리들의 횡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과도한 세금 포탈로 억울하게 가족과 재산을 잃고 고향을 등진 백성이 속출하고 있었다. 한때 번성했던 마을이 몇 년 뒤에 다시 가 보면 몇 채의 집만 남기고 사라져 있기도 했고, 백 리를 가는 동안  집이라고는 몇 채 뿐이요, 드넓은 땅이 풀밭으로 변해 있기도 했던 것이다.

김해뉴스



조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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