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눈이 맞았다'라고 표현합니다. 왜 하필 눈일까요. 손일 수도 있고 입술일 수도 있는데 그저 쳐다보기만 하는 눈에 어떤 마력이 있어서 사랑의 첫 순간을 감지하는 것일까요.
 
미국의 정신과 의사 어빈 얄롬의 소설 <폴라와의 여행>(2006년 이해성 역)을 보면 '남자를 유혹하기란 너무 쉽다. 명석한 두뇌도 필요 없고 멋진 몸매도 필요 없고 그다지 뛰어난 미모가 아니더라도 된다. 그저 남자가 여자를 쳐다보는 것보다 단지 몇 초만 더 그 남자의 눈을 지긋이 응시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빛에는 너무나 많은 말이 있습니다. 말없이 말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도구가 바로 눈인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상대의 눈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응시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의 눈을 얼마나 쳐다보았는지,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는 남편의 눈을, 그리고 아내의 눈을 얼마나 들여다보았는지 한번 되새겨 봅시다.
 
코끝과 발끝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향하게 하고 상대를 향해 몸을 약간 기울인 뒤 그 사람의 눈을 응시하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게다가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응" "그랬어?" "저런" "그랬구나" 같은 추임새를 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상대는 아마 그날 있었던 어떤 힘든 일도 반쯤은 해결이 된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로 이야기를 듣는다 해도 내 마음 속에 상대에 대한 판단과 생각이 이미 들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경청이 아닙니다. 마음 속의 생각은 내려놓고 진심으로 듣고자 한다면 나도 모르게 궁금한 것들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있었다는 좋은 반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럿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는데도 마음 속 어디선가 공허함이 밀려오는 경험을 다들 한두 번은 해 보았을 것입니다. 분명 다 같이 웃고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들은 이야기도 한 이야기도 없는 것 같은 이상한 허전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리에 분명 있기는 하였지만 누구의 이야기도 진심으로 듣지 않았고 누구도 나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들어주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눈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남편, 아내, 자녀, 부모일 때 가장 큰 위안을 얻게 됩니다. 흔히 대화를 하자고 해 놓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충고, 훈계, 교육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쓴소리를 해 주겠어'라는 착각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세상에서 알게 모르게 남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들로부터 이해와 지지를 받고 다음날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고 끊임없이 판단과 비판, 충고, 지시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상대를 위한 일이라고 믿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서로 사랑한다면 서로의 이야기를 귀로 듣지 말고 눈으로 들어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바깥세상의 불안, 걱정, 좌절, 우울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내 옆에 있어 주는 가족이라는 내 편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김해뉴스

박미현
한국통합TA연구소 관계심리클리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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