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성심원 어르신 9인과의 시 모임
인제대 김성리 교수, 작품 모아 펴내

장단 없어도 우린 광대처럼 춤을 추었다 / 김성리 엮음 알렙/1만 원

반세기 한세상!/ 성심원은 마당놀이 한마당/ 퇴락된 두발(頭髮)/ 꺼져버린 안공(眼孔)/ 낙인찍힌 수지(手指) 오지(五指)/ 바람결 없이도/ 흔들흔들!/ 우린 광대처럼 춤을 추었다.'(노충진의 '우리들의 무도장(舞蹈場)' 중에서)
 
투병과 외로움으로 한 평생을 살아온 한센인 어르신들이 시집을 냈다. <장단 없어도 우린 광대처럼 춤을 추었다>(김성리 엮음, 알렙, 1만 원)는 경남 산청 성심원에 사는 한센인 어르신 9명의 시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을 엮은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김성리 연구교수는 한센인 할머니의 삶을 담아낸 <꽃보다 붉은 울음>(알렙, 1만4천 원)을 2013년 펴낸 바 있다.
 
김 교수가 처음 성심원을 방문한 것은 2013년 10월이다. 김 교수는 "성심원의 오상선 신부는 어르신들에게 인문학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2014년 2월부터 어르신들 몇 명이 모여 모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어르신 10여 명 정도가 한 달에 두 번 모였다. 시를 가르친 적은 없다. 한스럽고 답답할 때 시를 써본 적이 있는 어르신이 2명, 나머지는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었다. 기성시인의 시와 짧은 수필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모임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마침 한국연구재단에서는 '2014 인문도시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에서는 성심원 어르신 시모임을 신청했고 소외계층 인문학 사업으로 선정됐다. 덕분에 모임은 잘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어르신들이 "나도 시 한 번 써 봤다"며 시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자료를 준비하지 않고 어르신들의 시만으로도 진행했다. 지난 1월 무렵에는 어느새 60여 편의 시가 모였다.
 

▲ 한 할머니가 출판기념회 때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위 사진). 어르신들이 종이에 또박또박 쓴 시들. 사진제공=김성리 교수
시집 발간 배경도 감동적이다. 출판 의뢰를 받은 알렙에서는 "의미 있는 책의 출판에 동참하겠다. 출판 비용은 걱정하지 말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성심원에서도 출판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시집의 표지날개에 '이 시집은 성심원의 후원으로 출판이 가능하게 됐다. 책 판매에 따른 수익은 모두 성심원에 기부되어 한센인 및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의료 등에 사용한다'는 아름다운 약속이 새겨지게 된 배경이다.
 
김 교수는 "어르신들은 모임이 진행될수록 '나도 시를 쓸 수 있다, 써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시비평 모임을 방불케 할 정도"라고 말했다.
 
양추자(76) 씨는 "시는 생각하는 대로 나오는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가 된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 내가 살아온 역사가 시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썼다. 그는 연필을 쥘 수 없다. 그래서 할머니가 시를 불러 주면 김 교수가 받아써서 읽어준 뒤 고치고 다시 받아 쓰는 방식으로 시가 태어났다. 김 교수는 "시집이 발간된 뒤 양 할머니는 '세상에 홀로 남은 나는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시를 남기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말을 했다. 한 명은 '친구들하고 연을 끊다시피 하고 살았다. 친구들에게 이제야 내가 여기 있음을 밝히면서 세상에 다시 나가게 됐다. 시를 쓸 수 있다는 게 벅차다'고 했다"고 말했다. 성심원 어르신들의 시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김 교수와 어른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 모두 시인이 될 자격이 있다." 어르신들은 이제 시인이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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