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와 해학으로 노인 문제 파헤쳐
자식과 부모 관계에 진지한 고민 던져

택배 왔어요/이미경/다른/152쪽/1만 원

엘리베이터에서 택배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어색한 공기를 풀어 보려고 말을 건넸다. "요즘 힘드시죠?" 아저씨는 성격 좋게 웃으며 말했다. "전화만 받아 주면 괜찮아요." 택배를 받을 사람과 통화만 되면 별 탈 없이 배달이 진행된다는 말이었다.
 
나는 택배를 자주 받는다. 내용물은 대부분 책이다. 급하게 필요한 책은 그때마다 한 권씩 주문하지만, 은행 잔고가 넉넉할 때는 대여섯 권씩 주문해 택배로 받는다.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혀 전화벨이 울리면 긴장하며 받게 되는데 거의 "택뱁니다"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네. 집에 있어요"라고 대답하면 말없이 툭 끊기는 전화. 전화 받을 때의 내 긴장감도 함께 툭하고 끊긴다. '몇 시쯤 도착하는지 물어 볼걸.' 일단 택배알림 전화를 받고 나면 새 책을 볼 기대에 차서 어떤 일에도 집중을 못한 채 택배만 기다리기 일쑤다.
 
이미경 작가의 <택배 왔어요>는 이런 일상적인 택배와는 전혀 다른 택배 이야기이다. 승일 씨는 둘째 아들이다. 장남이 잘되어야 집이 잘된다는 엄마의 말을 가훈처럼 여기고 자랐다. 형만 잘되면 자신에게도 순서가 올 거라고 믿었다. 아버지 사망 보험금도 모두 형 승수에게 돌아갔다. 섭섭했지만 그래도 엄마를 모시는 형의 몫이다 생각하며 마음을 접었다. 형은 캐나다에 두 아이를 유학 시키며 좁은 고시원에서 혼자 살았다. 아토피로 힘들어하는 형을 위해 엄마는 집을 팔아 그 돈까지 형에게 주었다.
 
건축업을 하는 승일 씨는 제때에 자금이 돌지 않아 힘든 상황이다.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빚이 쌓이고 있다. 큰아들 지후의 필리핀 유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한겨울에 난방조차 틀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런데 새벽에 택배가 왔다. 분실노인센터에서 보내온 택배였다. 택배 상자 안에는 승일의 어머니가 들어 있었다. 택배로 배달된 어머니와 큰아들 지후를 납치했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 상황은 교묘하게 얽힌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승일 씨의 모습은 그의 어머니 이길화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내 눈에는 승일 씨의 멀지 않은 미래가 보였다. 아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승일 씨, 아들이 반송하는 택배상자에 든 승일 씨, 아들 집 앞에서 "택배 왔습니다! 택배요! 택배 왔어요!"를 외치는 승일 씨의 영혼이 아른거렸다.
 
책의 뒤표지에는 '현대판 고려장, 위트와 해학으로 노인문제를 신랄하게 파헤친 수작'이라는 문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내가 정승일이고, 미래의 내가 택배 상자에 들어있는 이길화다'라고 바꾸어 주고 싶다.
 

나에게도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인 두 아들이 있다. 나는 두 어머니의 현실적 생활을 위해 최소한의 비용을, 두 아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최고의 비용을 마다하지 않는다. 승일 씨와 똑같은 모습이다.
 
둘째 아들은 평소에 엄마의 노후는 자신이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넉살좋게 말한다. 둘째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러나 나는 둘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내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남편을 보면 더욱 그렇다.
 
남편도 한때는 어머님의 사랑스러운 막내아들이자 자랑이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와 아이들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변한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늙은 어미의 노후보다 어린 제 새끼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이 마음을 쓰는 것은 이렇게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늙음이란 화살을 비껴갈 수 없다. 이제 눈앞에 노인들만 가득한 나라가 성큼 다가와 있다. 당신은 어떤 택배 상자를 고를 것인가?
 

 

김해뉴스

어영수
북스타트 코리아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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