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역사·밥의 과학·다양한 조리법 등
시 한편씩과 어울린 총 5부의 밥 이야기

밥의 인문학/정혜경 지음/따비/359쪽/1만 6천 원

'여름 쌀밥은 꿈에서만 봐도 살찐다', '이밥을 먹으니까 생일인 줄 안다'는 속담이 있다. 하얀 쌀밥을 먹고 싶어하는 이 땅 백성들의 힘든 삶이 밴 속담이다. '남의 집 이밥보다 제집 보리밥이 낫다'는 속담에는 마음 편하게 먹는 밥 한 끼가 제일이라는 심정이 담겨 있다. '찬 밥 더운 밥 다 먹어봤다'는 속담은 이 신세 저 신세 다 겪어본 것을 말한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은 정치, 경제, 사회 등 안 쓰이는 곳이 없다. '밥'이라는 단어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의미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일까.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가 <밥의 인문학>을 펴냈다. 한국인의 역사, 문화, 정서와 함께해 온 밥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우리 민족은 신석기 시대에 벼농사를 시작했고, 5천년 이상 쌀밥을 주식으로 먹어 왔다. 당시의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처럼 쌀로 밥을 지어 먹지는 않았다. 벼를 대충 갈아서 대형 토기에 끓인 다음 걸쭉한 죽 형태로 먹거나 쪄서 먹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시대적 고찰도 흥미롭지만,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우리 민족의 역사 구석구석까지 '밥'이 얼마나 철저하게 배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에 있다. 쌀의 역사적 뿌리,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연대기별로 살펴본 밥의 문화사, 밥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 밥의 과학, 밥의 다양한 조리법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은 책이다.
 
5부로 구성된 책은 각 부마다 시 한 편으로 시작한다. 김지하의 '밥은 하늘입니다', 이성복의 '밥에 대하여', 안도현의 '찬밥', 정호승의 '밥 먹는 밥', 엄재국의 '꽃밥'. 제목만 읽어도 어쩐지 뭉클해지는 기분이다. 어찌 밥에 대한 시가 이 5편뿐일까. 어쩌면 밥을 먹고 사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저마다 밥을 주제로 한 시 한 편쯤 간직돼 있을지도 모른다.
 

책에는 '문학작품으로 만나는 우리 밥'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소설 <토지>에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일본의 식민지 경제정책의 변화에 따른 조선인들의 식생활상의 변화가 등장인물의 일상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드러난다. 이 때문에 <토지>는 우리 민족의 밥의 변천사를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한다. 여인의 삶을 노래한 최명희의 <혼불>, 개성의 음식문화를 보여주는 박완서의 <미망>, 벽초 임명희의 소설 <임꺽정> 속 밥의 표현, 이상과 심훈을 통해 본 근대사 속의 밥, 추사 김정희의 <완당집> 속 밥상도 다루었다. '대장금'을 비롯한 드라마와 만화 <식객> 등 대중매체 속의 밥 이야기도 있다. '대장금'과 <식객>은 밥을 주제로 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시와 소설에서도 밥과 쌀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문학 속의 삶이 현실의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신화와 역사 속의 밥, 고문헌과 문학작품 및 영상매체에 나타난 밥을 다룬 이 책은 한국인의 문화와 소망에 밥이 얼마나 절절하게 배어 있는지 말해준다. 한국인의 역사는 곧 밥의 역사임을 주장하는 저자는 책 말미에 이런 글을 썼다. "(쌀 시장 개방에 대한)농민들의 저항은 거세다. 나는 우리 민족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우리 쌀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쌀에 대한 그 강한 애정만큼 이 현실을 잘 타개하리라고 생각하고, 이 책이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면서 세상에 내보낸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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