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이 등장하는 가장 이른 기록은 '삼국사기'다. 가실왕이 12현금을 제작하였는데, 이는 12월의 율을 본받은 것이고 우륵에게 명해 곡을 짓게 하였다. 이 악기의 이름이 가야금이다. 김해에 전해지는 가야금의 유래는 가락국 2대 거등왕과도 관련이 있다. 왕이 칠점산(현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 사는 선인을 초청했다. 선인은 금을 안고 배를 타고 와서 바둑도 두고 노래하며 즐겁게 놀았다. 그곳이 초현대, 지금의 초선대이다. 안동 초선대의 암벽에 얕은 선각으로 새겨진 마애불(도유형문화재 제78호)을 중심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로, 조선 중종 때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겨진 '가야 땅에서의 탄금' 기록이다.

1998년 창단 … 국내 유일
전통·현대음악과 기악·성악곡 등 다양하고 정제된 음악세계 선사

지난 17일 제25회 정기연주회 관람객들 "김해의 자랑거리"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이하 연주단) 존재의 까닭은 이렇게 아득한 고대로 이어진다. 가야금 앙상블이나 사단체는 여럿 있지만, 시립연주단으로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발전하려는 꿈을 세워 1998년 4월 16일에 창단되었고, 일 년에 두 번의 정기연주회를 비롯하여 '찾아가는 음악회' '가야세계문화축제' 등에서 연주회도 가진다. 전통음악에서 현대음악, 기악곡에서 성악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정제된 한국음악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연주단은 김해를 문화의 도시로 알리는 데 폭넓은 기여를 하고 있다.
 

▲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이 유명 광고 음악을 편곡한 '休&樂'을 연주하고 있다.

지난 17일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25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해설자 황의종(부산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악기 가야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김해시의 의지로 창단된,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단체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공연을 보러온 청중들로 마루홀은 가득 찼다.
 
연주회의 첫 곡 '태평가'는 음악감독 문재숙 단장(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이 가야금을 울리면서 시작되었다. 현을 감치고 튕겨내어 만들어진 음이 울림통을 지나 청중들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왔다. 영송당 조순자(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가곡 예능보유자) 선생이 반주에 맞추어 '가곡'을 불렀다. 가곡은 우리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시에 곡을 붙여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전통음악으로 지난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가장 오래된 성악곡이자 정교한 관현악을 동반한 고급예술이며, 느림의 미학을 음악으로 증명하는 슬로 뮤직의 대명사이다. 연주에서 해금의 소리를 내는 악기는 첼로였다. 이런 형식의 공연 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라 한다.
 
가야금 병창 '수궁가'는 대형 스크린에 비친 소박한 화면으로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귀에 익은 광고음악을 25현 가야금곡으로 경쾌하게 편곡한 '休&樂' 연주에는 객석에서 박수로 장단을 맞추었다. 가야금과 첼로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이슬의 춤'은 동양과 서양의 조화가 느껴졌다. 멕시코의 로렌스 발세라타 작곡의 'Maria Ellena'는 이 곡을 주제음악으로 사용했던 영화 '아비정전'의 장면을 보며 감상했다.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의 'Honey Honey' 'Mamma mia'가 연주될 때는 공연장이 열기로 터져나갈 듯했다. 2002년 아시안 게임 공식 지정곡 'Frontier'도 태평소와 가야금으로 들을 수 있었다. 앵콜곡 'Mamma mia'에 맞추어 문재숙 단장이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는 박수소리와 가야금소리가 어우러져 또 하나의 음악이 탄생했다.
 
▲ 가야금 현을 감치고 튕겨내는 손길이 아름답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가야금은 12현인줄 알았는데 25현도 있다. 황정숙 음악 부감독은 25현 가야금이 가장 최근에 제작되었고, 지금까지 개량된 가야금 중에 가장 많은 개수의 현을 지니고 있어 동서양 현악기 가운데 상당히 넓은 음역을 지니고 있는 악기라고 설명한다. "전통가야금과는 다른 폭넓은 음역으로 서양의 하프와 같은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하면서도 우리 음악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인 농현을 가미해서 동서양의 조화를 이룹니다. 세계민요와 팝송, 광고음악, 대중음악 등 음악적 국경과 장르를 넘나들며 아름답고 격조있는 음악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였다. 'Maria Ellena' 'Honey honey' 'Mamma mia'를 가야금 연주로 들을 수 있다는 건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엄마 아빠 손을 붙잡고 온 어린이들도 좌석에 앉아 공연에 푹 빠져 들었고, 외국인들도 흥이 나서 가야금의 매력에 젖어들었다.
 
이런 변화는 단원들도 느끼고 있다. 창단 초기, 전통음악 위주의 공연만으로는 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통음악과 가야금을 알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고, 연주단은 퓨전을 시도했다.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으로 다가서자 시민들이 조금씩 관심을 가져 주었고, 관객 수도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연장을 찾은 시민들은 다시 전통음악을 이해했다.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이 조화를 이루어 공존하게 되면서, 전통은 전통대로 빛을 발하고 현대음악은 더욱 더 다양해졌다. "언제부터인가 정기연주회를 하면 서로 앞좌석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는 시민들을 보면서 변화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가야금이 어느새 시민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 저희들도 굉장히 기쁩니다." 황정숙 음악 부감독은 김해시민들이 가야금을 받아들이는 변화를 전해준다. 정기연주회를 4번째 찾아 온 최영일 씨(구산동·41) 씨도 "전통음악과 새로운 음악의 조화가 너무 멋있어요. 김해의 자랑거리에요"라며 기자를 붙잡고 자랑이 늘어진다.
 
청중이 빠져나간 극장에 가야금 소리가 다시 울릴 듯했다. 꽃잎이 흩날리는, 봄비가 나뭇잎에 듣는, 폭포수가 직선으로 내려 꽂히는, 바람이 우수수 불어오는, 그 모든 소리가 가야금 현 위에서 탄생하여 세상 속으로 흩어져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쯤에서 다시 김훈의 문학적 상상력에 기대어 보자. 왕은 우륵에게 가야금의 소리를 이렇게 만들 것을 명했다. "들어라. 금이 갖추어지면, 여러 고을의 소리를 따로따로 만들어라. 고을의 말이 다르고 산천과 비바람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러니 어찌 세상의 소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할 수 있겠느냐. 고을마다 고을의 소리로 살아가게 하여라."
 
아득한 시절 왕의 명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가야금이 태어났다. 그 가야금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만나고, 동양과 서양이 교류하고, 성악과 기악이 섞이고, 음악과 사람이 어우러진다. 소통과 조화의 세상이다. 고대의 제국 가야에서 만들어진 가야금이 21세기 김해에서 만들어가는 세상은 꿈처럼 신비롭고 봄처럼 아름답다.


형언할 수 없는 우아함, 판타스틱! 뷰티풀!
<가야금에 반한 영국 청년 데이브 클랩워시>

"판타스틱! 뷰티풀!"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의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루홀 로비를 떠나지 않고 있던 외국인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영국 청년 데이브 클랩워시(28·사진).
 
런던 북부의, 김해만큼이나 유서가 깊은 고장에서 김해로 온 지는 8개월. 그는 삼계중학교와 김해여중의 원어민 영어교사이다. 공연이 훌륭했다고 말하는 그는 가야금이 김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야금이 어떤 악기인지 인터넷에서 미리 알아보고, 소리도 들어보고 공연장을 방문했단다. 실제로 공연을 보면서 가야금의 우아함을 충분히 느꼈고, 퓨전 연주에서는 다른 관객과 함께 박수를 치며 즐겁게 감상했다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미리 공부한 것과 가야금에 대한 관심에 대해 감사하다고 했더니, "영국의 어머니는 내가 있는 도시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며, 가야 역사에 대한 책을 다 읽고 지금은 신라 역사를 읽고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클랩워시의 어머니는 오는 7월 김해를 방문할 예정이다.

한국 음식이 너무 맛있는데 영국에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는 그는 막걸리를 좋아하고 삼겹살, 갈비를 즐긴다. 학교를 오가며 매일 수로왕릉을 본다는 그는 "나에게 김해는 퍼텍트한 도시!"라고 만족한다.
산도 있고, 강도 있고, 부산도 가깝고, KTX로 서울도 가깝단다. 클랩워시는 영국에서는 전국지보다 지역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지역신문을 살리기 위해 기부금을 내는 일도 있다면서 <김해뉴스>에 화이팅을 외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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