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하성자 김해여성자치회 회장

초등학교 시절 공공연히 나를 괴롭히던 친구가 있었다, 참다못해 '널 미워해 버려야지'라고 마음을 정했다. 그것이 더 힘들어 도서실을 겸한 교실의 많은 책들로 위로 받던 때 <장발장의 일생>을 만났다.

자신을 괴롭히던 자베르를 위기에서 구해주기까지 하는 장발장이 너무나 숭고해 보였다. 미리엘 주교나 장발장처럼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린 마음에도 '우선 나를 괴롭히는 미움을 털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속이 후련해졌다. 먼저 그 친구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갔다. 친구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기 말 즈음, 우리는 방학 동안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동동거리는 단짝이 되어 있었다.

그 때의 경험은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알게 해 주었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스스로 실천한다고 자부했지만, 몇 년 전 누군가와  소원한 관계가 되고 말았는데, 나의 오만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 아팠다. 때마침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뮤지컬 대신 책이라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 완역본 <레 미제라블>을 구해 읽게 되었다.

어릴 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갈등은 스스로 문제라고 인식할 때만 생겨난다는 것을 새로이 깨달았다. '그래, 그 사람에게 벽이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나의 벽은 없어야 하리.' 나는 벽 철거에 돌입했다. 그러나 다른 일로 그의 벽이 나를 가로막으면서 내 마음 속 벽의 구조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장발장을 떠올리며 '나의 벽을 창호지로 하고 싶다'고 소망하였다. 마음에 고요가 깃들면서 미움이 사라졌고 지금껏 나의 창호지 마음은 유지되고 있다. 벽의 불편함을 익히 알기에, 스스로 만든 이기적인 마음법이라 해도 괜찮다. 드나들 마음들을 햇빛과 바람처럼 알맞게 걸러 주는 창호지 마음,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갈등 속에 휘둘리며 후회와 반성을 거듭하는 실수투성이 내 인생에서 어린 시절에 이어 성인이 된 뒤에도 삶을 포용으로 이끌어주는 문호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하성자/시인, 수필가, <한비문학> 편집위원, 김해여성자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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