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하지 못한 대화 나눌 때의 찌꺼기
편안하고 친밀감 있게 상대를 대해야

"야, 김진! 너 빨리 안 일어나?"
 
아침이 시끄럽습니다. 엄마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오늘도 역시 진이는 일어날 기미가 없습니다. 그간 단단히 별러 왔던 엄마는 방문을 벌컥 열어 제치고 소리를 지르면서 아들의 다리와 엉덩이를 찰싹 때립니다.
 
"너 그간 엄마가 두고 봤어. 매일 아침에 이렇게 깨워야만 일어나니? 오늘은 혼 좀 나 봐라. 더는 못 봐줘."
 
아침부터 두들겨 맞은 아들은 벌떡 일어나 앉아 소리를 지릅니다. "내가 언제 안 일어났다고 그래?" 그때부터 아침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간 아침마다 깨우면서 쌓아놓은 감정에 학원 빼먹은 것과 떨어진 성적까지 얹어서 끝없는 잔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엄마는 아들에게 '너 딱 걸렸어'라는 게임을 먼저 걸면서 하루를 엽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모으고 있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게임이지요.
 
그때 아빠가 게임에 동참을 합니다. "아침마다 이래야 돼? 애를 가르치려면 좀 조용하게 하든지, 그간 못 가르쳤으면 내버려 두든지…."
 
가만히 있을 엄마가 아니지요. "아니, 당신은 맨날 늦게 들어와서 애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갑자기 왜 그래? 그렇게 잘 알면 당신이 좀 해보든가…."
 
진이 아빠의 '당신 때문이야' 게임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집에서 놀면서 애 하나 감당 못하고 뭐하는 거야!"
 
이 게임은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아내에게 떠넘기고 있다가 자녀가 잘못되거나 뭔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아내에게 비난을 퍼붓는 남편들이 자주 사용하는 게임입니다.
 
이렇게 요란한 아침시간을 보내고 식구들은 잔뜩 화가 난 채 뿔뿔이 흩어집니다. 엄마는 커피나 한잔 하자며 아래층 친구 집에 갑니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그이만 아니었으면' 게임을 시작합니다. 이 게임은 말이 잘 통하는 여자 친구들끼리 주로 하는 게임이지요. "진이 아빠가 회사를 그만 두라고 그렇게 난리치지만 않았으면 난 절대 그만두지 않았을 거야. 차라리 돈을 벌며 큰소리치는 게 낫지." 이렇게 시작한 불평은 끝이 없습니다.
 
잘 들어주던 친구가 "얘, 그래도 진이 아빠만한 사람도 없다. 성실하잖니"라고 말합니다. "그래, 성실하기야 하지. 그래도 융통성이 없잖아.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해서…."
 
이제는 '맞아-그러나(yes-but)'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한쪽은 남편의 결점을 들추고, 다른 쪽은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고, 정 힘들면 이렇게 해보면 어때'라고 충고를 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태도는 일관되게 '그래, 네 말도 맞는데, 그러나'입니다. 듣는 척 하면서 초지일관 자기 말만 하는 게임입니다.
 
'교류분석'이라는 심리학 이론의 주창자 에릭 번은 그의 유명한 저서 <심리 게임>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매일 같이 행하는 수십 가지 게임의 예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주위 환경과 반응하면서 결정한 인생 태도를 유지하려는 심리에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이러한 게임으로 타인과 교류할 때 우리 마음 속에는 음식 찌꺼기 같은 앙금이 남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게임은 나의 마음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다른 메시지를 감추고 대화를 할 때 주로 생깁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한 뒤에 마음이 불편하고 찝찝한 감정이 남는다면 그건 상대가 게임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나는 얼마나 겉과 속이 같은 대화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이 일어나지 않는 관계 안에서는 우리는 편안함, 안전함, 친밀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결국 진이 엄마는 하루를 게임으로 보내고 잠든 남편 옆에 피곤한 몸을 누이면서 인생이 왜 이렇게 고달프고 우울한지 한숨으로 뒤척거리느라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도 한번 생각해 볼까요? 나는 주로 무슨 게임을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요?


김해뉴스

박미현
한국통합TA연구소 관계심리클리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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